사랑을 얻는 순간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원수 집안 소년의 사랑통이 당신의 가슴을 온통 할퀸다!
『사랑, 장마로 오다』는 장마를 타고 벼락처럼 찾아온 첫사랑을 위해 온갖 갈등을 이겨내며 스스로를 놓지 않았던 한 남자의 마음을 인간 본연의 그리움으로 녹여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지나간 조상들의 아픔까지 거슬러 말하고 있으나, 결코 반목의 시절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어느 순간 맞닥뜨렸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며,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의 또 다른 치유법이다.
첫사랑 앞에 가로막힌 보이지 않는 갈등과 그리움의 길.
사랑의 계단은 한없이 멀고 높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 가슴을 파고든 첫사랑의 감정을 그리움과 순수함으로 이겨낸 한 남자가 있다. 사랑의 감정을 품은 뒤 속속 밝혀지는 고조할아버지부터 맺어졌던 굴곡의 대물림, 식민지를 함께했던 할아버지들의 신의, 징용과 동란에 휩쓸려 치열했던 아버지들, 결국에는 지주와 피해자의 자손인 그녀와 머슴과 가해자의 자손으로 밝혀진 나!
너무도 엄청난 두 집안의 과거사에 맞닥뜨려야 했던 혹독하고 모진 사랑,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나날을 감내하며 사랑을 구걸하다시피 한 구애의 발자국,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겪어야 했던 치열한 사랑의 여정…….
당신은 가슴 시린 사랑의 치열함을 간직하고 있는가. 마음껏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어 인생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찬란했던 시절이 있는가.
굴곡 많은 시대의 빛바랬지만 결코 무시해버릴 수 없는 뼈아픈 추억,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세월 속에 묻어두었던 이들의 애환, 격랑의 시대를 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흩어져버린 무수한 인생의 모습,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의 삶이 아닌 것이 있었을까.
이 작품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순간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한 남자의 마음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애달픈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또한 누구도 비껴갈 수 없었던 아픈 첫사랑의 세월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보게 하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기억까지 아련하게 더듬어보게 한다.
■ 작가의 말
나에게 늦은 소설쓰기란 추억을 꿰매는 초라한 출발에서 시작되었다. 거울을 통하여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었고, 내면의 얼룩진 상처와 부서진 조각을 치유하며 극복하는 작업이었다. 첫 장편소설 『끝섬-사랑하기 전에 이미 그리움』이 꿈을 기억해야 하는 자조의 할큄이었다면, 『사랑, 장마로 오다』는 자각을 실현하고자 하는 치유의 거울이었다. 또한 상처가 다시 덧나도 좋고, 딱지가 떨어져 지혈되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나만이 볼 수 있는 굴절된 양심을 어루만지고 싶은 작업들이었다.
무릇 중년에 반추하는 유년의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만이 착상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잊도록 진화된 인간의 뇌 어느 한구석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무례하게 스스로의 거울을 비추어보며 오랜 세월 봉합해놓았던 상처를 끄집어내는 작업에 집착했다. 기억은 점점 더 명료해졌고, 아픔은 점점 더 가까이에서 돋았다. 기억 속의 아픔은 타인의 아픔이기 이전에 나의 아픔이었고, 어쩌면 내가 치유해야 할 아픔이라고 보아야 옳았다. 상처는 더욱 깊어졌고, 누군가에게 울고 거듭나기를 소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울고 거듭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들, 감히 또 다른 치유를 구실로 긁적거리려니 내 추억들은 비로소 두려움으로 아우성이다. 아우성치는 미지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나는 참으로 나약하고, 심장의 깊이는 속절없이 야위어 있다. 더불어 담겨져 있는 그릇의 크기는 보잘것없고, 뜨거운 열정이나 모험도 턱없다. 필부의 가야 할 걸음에 보이지 않는 길은 멀고, 끝은 자욱한 이유이다.
그래서 오늘, 용기를 북돋는 두 번째 장편소설의 채찍에 더없이 작고 초라하게 움츠려진다. 민망함을 위장하려는 부끄러운 마음조차도 기둥 뒤로 빠끔히 숨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과분한 축복인가 싶다. 어디에 숨고, 어디로 도망하여 잠수라도 해야 하는가, 곰곰한 생각이 나를 또 불현듯 일으켜 세우기를 외람되게 갈망해본다. 그 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라도 가야 하고, 가서 행복한, 또 다른 담금질 같은 운명의 길이기에…….
두려움에 나약하고, 심장이 야위었고, 그릇이 보잘것없고, 열정이나 모험도 턱없는 나에게…… 늘 용기를 주는 분들, 세상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고마운 분들, 그리고 아내와 아들과 가족들에게, 여전히 졸필인 이 책을 바친다.
■ 본문 중에서
탈진한 그녀가 중심을 잡으려 비틀거렸다. 하지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결국 몇 걸음을 내딛다가 내 앞에서 풀썩 무릎을 꿇었다. 나는 엉겁결에 등 뒤에서 양쪽 팔을 잡았다. 그러나 손바닥은 엉뚱하게도 겨드랑이가 아닌 가슴을 움켜쥐고 말았다. 나는 주인에게 들켜버린 도둑놈처럼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참으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짧은 인생의 절반을 그토록 혹독하게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녀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평생 그리움으로 남겨야 할 숙제이다. 그리워서 더 그립고, 아득해서 더 아득한, 극의 끝에서 극을 바라볼 수만 있어도 행복으로 여겨야 할 과제이다. 그녀를 사랑함으로 행복했다. 그녀와 같은 세상에 있어서 아름다웠다. 우주 속을 떠도는 작은 지구, 지구 속에 머물다 가는 아주 작은 그녀와 나의 존재, 그 티끌 같은 가능성에서 이미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겠는가. 후회는 하지 말자. 끝까지 소유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