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에 지치고 찌든 현대인들에게
따뜻하고도 시원한 위안의 손길을 건네는 에세이
『내 안의 풍경』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 한쪽을 따뜻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던 청호 스님의 새 수필집 『바람그물』이 2014 갑오년 새해를 맞아 출간되었다.
청호 스님은 주변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항상 세심하게 관조하고 기어이 아름다운 깨달음 한 조각으로 완성해 낸다. 자연물 속에서나, 스님을 찾아오는 많은 인연들의 이야기 속에서나, 동화·영화 한 편 속에서나 아름다움을 찾아 따뜻하게 그리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시원하게 전해 준다. 어린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에도 자존심 상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우리가 무엇을 한 번 보고 그때 떠오르는 잠깐의 감정만을 느끼고 넘겨버릴 때, 청호 스님은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끌어 온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시선에 동화되어 마음 한쪽부터 따스해져 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청호 스님의 『바람그물』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풍경소리’에서는 충주 산자락의 암자에서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과 절의 한 가족이 되는 다람쥐를 보고, 여름에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가을에는 날리는 식물의 결실을 보고, 겨울에는 곱게 쌓인 눈을 본다. 그리고 그 자연물 속에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를 전한다.
‘삶의 푸른 잎’에서는 우리네 일상 속에서 보고 듣는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되는 이치와 자신에 대한 성찰의 내용을 담아 공감을 이끌어 낸다. 또 스님을 찾는 보살님들의 이야기들과 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본다.
‘인어공주의 길’에서는 다양한 소재들, 동화나 영화 그리고 주변 인연들 속에서 얻은 깨달음에서 이어지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선물’에서는 반성에서 그치지 않고 수행과 깨달음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고민과 다짐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공감하고 배울 만한 내용을 불교 경전처럼 어렵게 담아내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화 속에서 풀어내는 깨달음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깨달음이기에 쉽게 이해되고 따뜻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세속에 찌든 우리네 땀 한 줄기를 시원하게 닦아주는 미풍의 손길, 『바람그물』을 통해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 본문 중에서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하려 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노력이었다. 인어공주가 영혼을 가지려 한 것처럼 나는 깨달음을 바랐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통해 영혼을 얻으려 하듯, 나도 깨달음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방법이 스승이나 경전, 어느 때는 무엇인가에 대한 배움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인어공주처럼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버리고 바늘을 딛는 것 같은 고통의 걸음을 선택한 것은 중생심을 버리려는 수행이었다. 공기의 요정이 되는 것은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조차 버린다는 뜻이다.
조사스님들은 깨달음은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도 버릴 때 바른 길에 들어선다고 간곡하게 당부한다. 출가하는 것으로 세속의 생활을 버렸지만, 성불하고자 함은 버릴 줄 몰랐다. 흔히 욕심을 버린다고 하지만 버렸다는 생각도 버렸을 때 진정한 버림이 된다. 마음 씀이 물감을 칠하려 해도 칠할 수 없고, 칼로 베려 하여도 벨 수 없는 허공과 같이 되는 것이 진정한 버림이다.
나 역시 출가했다 하여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동화와 같이 내가 가야 할 모습을 본다.
-「인어공주의 길」 중
나는 자동차 앞 유리에 낀 성에도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은 호수가 있어 봄가을 오전에는 특히 안개가 많다. 삼월 초순에도 바깥에 세워 둔 차 유리에 성에가 덮여 있는 날이 많다. 이른 아침 외출을 할 때, 긁어내야 하는 성에 때문에 마음이 바쁘기도 하다. 그러나 차를 달리다 보면 앞 유리 귀퉁이에 남아있던 성에가 물이 되어 흐르면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육각의 결정에서, 긁어내는 번거로움과는 비할 바가 아닌 아름다움을 본다. 곧 녹아 사라질 무상(無常)의 꽃이다.
물이 안개가 되었다가 얼어서 성에가 되고 다시 녹았다가 눈이 되기도 하는 윤회. 영원히 같은 모습은 없고 그래서 오히려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얼음꽃의 설법을 듣는다.
-「얼음꽃」 중
■ 저자의 말 중에서
스트레스, 트라우마, 힐링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는 경계를 만나고, 그때마다 이 세 단계를 거치다 보면 삶을 배우는데 일생이 걸린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어 있음’이나, 관조, 어려서부터 들어 온 반성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읽어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힐링으로 바뀔 수 있는 것 역시 스스로의 마음을 보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