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를 품은 카페, 한 편의 시
그리고 우유 거품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사색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되 그 읽은 것의 풀이나 느낌은 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무조건 시로 시의 맥락에서 시의 존재감을 두고 읽는다. 그러니까 시는 하나의 인격체며 무형적인 어느 존재감이며 움직일 수 없는 사물일 수도 있다. 시인의 복잡다단한 회로의 신경망을 읽을 수는 없다. 그저 시인이 쓴 글을 통해 나의 도로 같은 신경망 그 갓길 죽 세워놓은 전주에 하나씩 불이라도 들어오면 그만인 것이다. 불 밝힌 거리를 거닐며 나를 복사한 나의 그림자가 제대로 그 거리를 걸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서문’
詩 감상문을 적겠다고 어언 3개월가량 정신없이 읽고 썼다. 그전에도 읽은 詩集은 꽤 된다. 나는 詩라고 생각하면 고등시절에 배웠던 해방 전 詩人의 詩가 詩인 줄만 알았다. 국어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으며 국어를 모르고 지내더라도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부터 詩를 좋아하며 또 읽기 시작했는지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10여 년 전 유명 강사의 성공학 강좌를 듣고부터다. 그러니까 일기 쓰기를 빼먹지 말며 나의 삶을 기록해 나가라는 강사의 말씀이었다. 물론 그때 몇 가지 말씀이 더 있었다.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었다. 또 그렇게 해오고 있었는데 이 일기 쓰기 만큼은 초등시절에나 몇 번 끼적거리다가 통 해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성공은 못 하더라도 성공 가까이는 가보고 싶은 게 나의 목표라 그 일기 쓰기를 부끄럽지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페에 오시는 손님께 쓴 일기를 내보이기까지 했는데 참으로 부끄러웠다. 어떤 이는 받침 자가 틀리었다며 이야기하시는 분 있는가 하면 문장과 조사의 사용까지 잘못 쓰고 있는 필자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일기는 계속 써내려갔다. 그러다가 카페 손님 한 분이 시마을(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을 알려주었다. 그분은 시마을의 회원도 시인도 아니었다. 그저 심심하면 한번 들어와 올려놓은 글 한 편씩 읽고 가시는 손님이셨다. 그날 당장 회원으로 가입하여 나의 글을 올려보았다.
올린 글이라고는 옛 詩人의 글과 비슷한 흉내였다. 이것도 한때는 중독 아닌 중독이었으며 더욱 중독을 이끌었던 것은 문우였다. 밑에 죽 달아 올려주신 인사와 격려와 칭찬에 정말 내가 글을 쓰는가 보다 하며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다. 그러고는 나는 또 정신없이 옛 시인의 시전집을 사다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시인이라고 하면 옛 시인 말고는 떠오르지 않으니, 또 선배의 시라면 시전집 밖에 없었다. 세상이 참 어두웠다.
매일 일기를 쓰다가 이제는 일기 비슷한 詩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모든 것이 시인이 되고자 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카페를 더 잘하고 싶어서 한 것이지 詩人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찌하면 카페를 문 닫는 위기까지 내몰리지 않으며 밥이라도 먹고 사나 하는 마음으로 밤낮없이 책을 읽었다. 역시나 진리는 책 속에 있었다. 문자였다. 나의 혼이 있어야 그 가게가 유지가 되는 것을 유추해서 알게 되었다. 이것도 시학의 깊이가 없었으면 거기까지 알지도 못했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사는 것도 썩 잘 살거나 부유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 글 배우기 시작할 때보다는 훨씬 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섯 평에서 시작하여 백 평을 경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는 요즘 시인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한 대학교수부터 최근 등단한 시인과 시인이 낸 시집을 한 권씩 사다 보았다. 이 시집을 사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재로 쓰는 시 개론서나 원론, 문예창작과 교수께서 내신 시 창작 강의라는 책은 죄다 사다 보기 시작했다. 읽으니 무엇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시 비슷한 어떤 괴물의 윤곽은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 괴물의 몽타주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몽타주를 창작 방에 올려놓기까지 하며 또 나름으로 다듬어 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서툰 붓질이나 다름없다. 그러다가 아예, 시집을 읽고 뜯어보자 하며 이것도 그저 읽으며 게으름에 하루라도 거를 것 같아서 시마을‘내가 읽은 시’란에다가 詩人, 한 분씩 밝혀놓기까지 했다. 참으로 부끄러움 무릅쓰고 버젓이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행함이 수일이 지나, 나는 또 꿈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보자는 마음이 서는 것이었다. 또 지금 지은 100평대의 카페 ‘鳥瞰圖’에 문학 강좌로 일반인이 쉽게 글을 배우고 쓸 수 있는 부담 없는 강의의 한 대목으로 쓰자는 생각도 번뜩 들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한 잔에 부담 없는 시적 강의가 될 수 있겠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나의 책 한 권을 갖고 싶어도 꿈만 야무지지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별 없거니와 또 바쁜 생활에 이루기 힘든 일이라 다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꿈을 갖고 사는 사람, 소수의 사람에게라도 꿈이 되었으면 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좋은 스승은 그 위 여섯 살짜리 형이다. 왜 이런 말을 쓰는가 하면 필자는 그 어느 곳도 등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 또 등단하기 위해서 신문사나 계간지, 월간지사에 나의 글을 내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글을 공증받기 위해서 출판사의 문은 참으로 많이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출판사 청어에서 나의 글을 인정받게 되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혹여나 이 글을 읽고 등단에 필요한 공부는 되겠으나 굳이 등단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로서는 권하고 싶지 않다. 글이라는 것은 삶의 부수지 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글은 살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의 삶에 더 윤택한 길을 택한다면 진정한 글공부를 추천하고 싶다. 더 나아가,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나를 만드는 것이 그나마 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약 80여 명의 시인을 선정함과 또 그 시집에서 한두 편 정도를 발췌했다.
글을 읽고 감상한 대수롭지 않은 글이다. 물론 그 감상이 제대로 된 것도 있을 것이며 영판 딴 데로 흘러간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께 조금이나 상상을 유발하고 글 쓰는 재미나 방법을 이끌었다면 다행이다. 나는 이 자리에 詩는 오독도 정독임을 밝혀둔다. 시의 감상과 해석 그 모든 것을 시의 객체로 시나 시집 혹은 글로 두려고 노력했다. 어떤 그리움이나 대상을, 연인이나 화자의 또 다른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을 피하며 말이다. 그러니까 시나 시집 혹은 글도 시인께는 애인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詩라는 것은 비유를 빼면 詩가 될 수 없다.
여기 모은 詩人의 작품은 詩에 관한 여러 가지 언술의 기법을 볼 수 있음이니 나름으로 글을 배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싶다. 아무튼, 부지런히 읽으시어 내공 또한 깊게 쌓이길 바랄 뿐이다. 추후 혹여나 잘못된 것이 분명히 나오리라 믿으며 재판 시 교정해 나갈 것을 미리 약속한다.
詩人의 글 詩全文을 옮겨놓기 전에 나의 詩論같은 것도 있다. 그저 詩사랑에 적은 글이며 또 시를 읽고 감상하다 보니 필자 또한 흥에 겨워 나의 시 몇 편 나오게 되었다. 이 시 또한 읽고 쓸 때 이루어진것이니 군데군데 넣었다.
詩人의 작품은 이미 詩集으로 발표한 것이라 독자의 허접한 감상이지만 시인께서는 널리 살펴서 이해하시리라 여긴다. 나는 이제 시에 약간은 맹신자가 되었다. 시인이 살 길은 시인이 쓴 글 즉, 시집이 많이 나가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를 모르는 독자께 시를 조금 더 재미나게 소개하며 또 누구나 시를 쉽게 생각하여 쉽게 쓸 수 있게 하였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그래서 더욱 시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을 더 만들어 시인이 낸 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더 크게 이룬다면 분명 시인께 유복하나마 행운은 더 돌아갈 거라 믿는다.
나는 이 책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분명히 한다. 앞으로 나오는 시집과 또 글은 필자가 읽은 것이라면 감상에 붙이기를 내심 다짐해본다. 이 책으로 인해 나의 카페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시어 맛난 커피를 맛나게 드시는 것뿐만 아니라 무언가 얻고 가는 카페였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도 덧붙여 놓는다.
좋은 여행이길 바라며 이 책을 끝까지 쓸 수 있게끔 옆에서 아낌없이 바라다본 우리 시마을 동인과 동호인께 먼저 감사하며 이 책이 빛을 바라보게끔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청어 이영철 사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놓는다. 더욱이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준과 찬에게 그간 턱없이 소홀함과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 책임감을 다할 수 있게끔 암묵적으로 도와준 것에 머리 숙여 사죄한다.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