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삶의 여유, 누군가에겐 삶의 전부
커피와 함께 기나긴 여행을 떠난
커피 인(人), 이호걸의 일상 엿보기
■ 본문 - ‘작가의 말’
인생은 여행旅行이다. 한자로 보면 나그네가 다니다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어디가 고장이고 어디가 다른 고장인지 분명하다. 그렇다고 철학적 말로 심각하게 머리말을 적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삶을 어떻게 보람되고 알차게 보내느냐가 전체 여행의 결과가 된다. 여행은 쉬운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친다. 그 힘든 일을 잘 완수할 때 기분 또한 만끽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루 여행을 적어 나갔다.
커피를 두고 적은 글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동반자는 커피다. 커피와 함께 볶고 분별하고 분쇄하고 추출하며 마셔 본 이야기와 커피와 더불어 나에게 일어난 일을 적은 것이다. 앞에 책을 여러 권 낸 바 있다. 물론 커피와 함께 한 나의 일기가 모두 소재다. 인생도 짧은 것인데 하루는 얼마나 짧은 것인가!
이제는 총알처럼 가는 하루다.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해가 거듭할수록 많다. 많은 일감 속에 업계의 장은 스스로 바빠야 한다. 그 바쁜 일상에 무엇보다 크게 관여하는 것은, 업계의 장마다 가치관을 달리 두겠지만 나는 독서다. 물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일이 너무 많다. 커피 교육과 배송, 상담, 업체탐방, 상가분석, 대금관계와 소소한 카페 일까지 모두 해야 한다. 그와중에 또 해야 하는 일은 독서다. 읽어야 나의 철학이 나온다. 철학은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며 가치관은 내 삶의 뿌리다. 나의 삶의 줄기와 이파리는 모두 그 속에서 나온다. 한 나무가 온전히 서는 것은 뿌리가 건실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매일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하루 즐거움이라면 일은 모두가 즐겁다.
책제목을 어떻게 할까 한 며칠 고심했다.
카페 일지다. 책 제목은 ‘가배도록’으로 하고 부제목은 ‘카페의 소소한 일기’로 하겠다. ‘소소하다’의 뜻은 작고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기는 개인의 사생활이며 하루 있었던 일을 정리한 기록이다. 가배도록이란 가배는 커피의 음역어다. 부수 자가 임금 왕王 자가 있고 입 구口 자가 있다. 전자는 일본식 표기방법이고 후자는 중국식 표기방법이다. 나는 전자를 택했다. 커피는 중국보다는 일본에서 건너온 게 역사적으로 보아도 맞지 싶어 그렇게 했다. 도록이라는 말은 걸은 길을 기록 하다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도道가 들어감으로써 제목이 약간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노자의 도가 사상이 묻어 있다.
일기는 하루 생활을 성찰한 것이다. 일종에 덕에 가까우나 도라 해도 되겠다는 것이 나의 억지 주장이다. 그러니까 노자가 말하는 도는 자연이며 만물이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덕이다. 도는 모든 것은 안으며 모든 것을 낳는다. 우리는 어머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나왔지만, 다시 어머님께 돌아간다. 어머님은 나를 낳은 자연이다. 물론 노자의 말이다. 도道는 내가 걸어가는 길이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걸어가라는 미리 계획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행위는 넓게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지도 자연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하나이기 때문에 도라는 의미를 썼다. 그래서 지나간 하루를 생각한다. 생각한 하루를 기록한다. 그래서 도록이다.
짧은 일기에 더 짧은 시도 한 편씩 써서 넣었다. 7·5조 형식으로 그날 있었던 일이나 느낌 또는 마음을 표현했다. 7·5조 하면 김소월이 대표 시인이다.
소월 시집을 읽은 지 꽤 되었지만, 우리나라 말은 그 율격에 맞아 부르는 곳곳 운이 따른다. 읽는 맛을 생각했지만, 정형시라 구태의연한 문학 형식에 따가운 눈초리로 관심 잃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젊은이를 생각하면 재미고 가벼운 일기라 삶의 욕구 또한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속을 들어 내놓는 것이라 우습기만 한다. 책이라고 내는 것이지만 나는 하루 즐거움이었다. 이 즐거움이 없었다면 마냥 춘추전국시대만큼의 혼란스러운 커피 시장에 나는 하루도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이 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다. 좁은 국가 좁은 고장에서 작은 카페에 함께 삶을 엮어나가는 동료 오미영 선생, 강미라 선생, 구성택 선생, 서용준 부장, 배미향 선생, 석훈도 점장, 박정의 실장, 박예지 실장, 정동원 군, 이제 중3 오르는 하경모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두 커피를 사랑하는 분이다. 경산의 대표 상표로 카페리코, 카페 조감도 가족으로 찾아오시는 고객께 더욱 분발할 것이다. 모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커피는 커피만 커피가 아니라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이에 학생이다. 이 책은 어쩌면 신하가 더 나은 세상을 갈구하는 뜻에서 군주께 올리는 상소 같은 것이다. 커피를 두고 더 바르게 행함을 우리 고객께 말씀 올리는 것이다. 진정한 카페 주인은 다름 아니라 커피를 알아주고 찾아주시는 손님이다. 두 손 모아 이 책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