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공부 천재
9번 수석 합격한 율곡의 9가지 1등 공부법
평생 동안 율곡 자신이 직접 실천하고 가르친 공부법
“율곡을 읽다보면 공부하는 체질로 거듭날 것이다!”
공부에 노력할 때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라. 공부는 죽은 후에나 끝나는 것이니 급하게 그 효과를 구하지 말라. 이것 역시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다. 만약 이와 같지 아니하면 물려받은 신체를 욕되게 함이니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 율곡 이이, 〈자경문(自警文)〉 중에서
우리나라 5000원 권 화폐의 주인공이자 5만 원 권 화폐 주인공(신사임당)의 아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이기(理氣)일원론을 주장한 조선의 성리학자. 바로 율곡 이이에 대한 묘사다. 조선 시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대학자이자,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전해지는 대정치가이기도 한 율곡. 하지만 그가 사실은 조선 500년 과거제도 역사에서 ‘최다 수석 합격(장원급제)’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율곡이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조선 시대 500년을 통틀어 한 개인으로 장원급제를 가장 많이 한 ‘시험의 달인’, 아니 ‘수석 합격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율곡은 무려 아홉 번에 걸쳐 장원급제를 했는데, 29세에 마지막 아홉 번째 장원을 한 후 말을 타고 거리를 나서자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 나와 율곡을 우러러보며,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칭송했다. (…) 이를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해서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를 모두 수석 합격하고 연수원까지 수석으로 졸업한 셈이다. (프롤로그 중)
신간 《율곡의 공부》(송석구·김장경, 아템포)는 율곡학회가 제정한 ‘제2회 율곡학술대상’(2000년) 수상자이자 전 학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석구 전 동국대학교 교수(철학)가 율곡의 삶과 철학을 토대로 율곡의 공부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입지 공부법,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교기질 공부법, 누구나 가능하니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율곡의 공부》에 따르면, 율곡의 ‘장원급제(수석 합격) 공부법’의 핵심은 스스로를 공부하는 체질로 바꾸는 데 있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바탕으로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①입지 공부법).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동기부여로 자신이 공부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후 교기질(矯氣質, 기질을 바로잡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 핵심은 극기복례를 통해 자신의 개성적인 기질과 무관한 지혜롭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보편적 본성을 찾는 것이다(②교기질 공부법). 공부하는 체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혁구습(革舊習)과 수신(修身)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잘못된 옛 습관을 버리고(③혁구습 공부법), 그 자리를 좋은 습관으로 채워 공부의 기본 틀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다(④구용구사 공부법). 이때 특히 중요한 것은 근독(謹篤), 즉 혼자 있는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여 공부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긴장감으로 집중력을 끝까지 이어가면(⑤금성옥진 공부법) 어느새 공부하는 체질로 거듭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는 체질이 완성되면 독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학문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⑥일목십행 공부법). 이때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경계를 뛰어넘는 공부를 해야 하고(⑦경계초월 공부법),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완해 공부를 더욱 숙성시키는 것이다(⑧택우문답 공부법).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⑨지어지선 공부법) 진정한 공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율곡의 장원급제 공부법이 결코 고루한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현대 뇌과학의 성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뇌 가소성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노력 여하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의 길이 열려 있다. 반복 학습을 하면 뇌에 학습을 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 집중을 통해 뇌에 반복되는 신호를 주면 이것은 장기 기억을 넘어 절차 기억이 된다. 마치 우리가 자연스럽게 걷고 말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절차 기억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절차 기억이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반복 학습과 집중력을 통한 노력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부하는 체질로 거듭난다. (본문 중)
저자들 또한 고백하듯이, 사실 정치가로서의 율곡에 대한 평가는 나뉠 수 있다. 끝내 임금(선조)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정치가로서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율곡의 삶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율곡은 평생을 학생의 자세로 공부하였으며, 공부한 바대로 성실히 실행했다. 말 그대로 율곡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안위보다는 백성과 국가를 걱정했다. 율곡은 황제학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성학집요》, 초학자(初學者)들을 위한 최고의 교본 《격몽요결》 등 수많은 유산을 남겼고 또한 자신만의 학문 체계를 세워 조선 성리학의 큰 기둥이 되어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철학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후세대가 가장 크게 배워야 할 율곡의 유산은 평생 성실한 자세로 공부하고 공부한 바를 올곧게 실행한 율곡의 삶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진취적이면서도 정갈했던 율곡의 49년간의 삶의 아취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
※ 구도장원공 율곡의 9가지 장원 공부법
1. 입지(立志) 공부법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워라
2. 교기질(矯氣質) 공부법 누구나 가능하다, 공부하는 체질로 바꿔라
3. 혁구습(革舊習) 공부법 잘못된 옛 습관을 타파하라
4. 구용구사(九容九思) 공부법 옛 습관의 자리를 수신으로 채워라
5. 금성옥진(金聲玉振) 공부법 배수의 진, 절박한 심정으로 끝까지 가라
6. 일목십행(一目十行) 공부법 독서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7. 택우문답(擇友問答) 공부법 벗과 함께 논쟁하며 일취월장하라
8. 경계초월(境界超越) 공부법 경계를 뛰어넘는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
9. 지어지선(止於至善) 공부법 깊은 공부는 선한 마음과 함께한다
※ 구도장원공,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년)
율곡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선했는데 이는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이 하나라는 성리학의 근본이념과 통했다. 그래서 율곡은 자신과 가족은 물론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향해 겸손히 학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들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여막 생활을 하면서 방대한 독서를 했다. 이때 읽었던 책은 율곡이 학문을 지속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아버지가 후처를 들이면서 가정에 불화가 생겼고, 유교를 넘어 불교와 도교까지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작용하여 율곡은 19세에 금강산으로 떠나게 된다. 금강산에서 불도를 닦고 천하를 유람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다른 유학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계를 초월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1년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율곡은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출세를 결심하게 된다. 물론 한때 불교에 빠졌던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였지만 율곡은 좌절하지 않고, 남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자경문自警文〉을 써서 스스로 입지立志를 확고히 한 후,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는 혁구습, 올바른 습관으로 채우는 수신을 통해 스스로를 공부하는 체질로 완전히 바꿔 나갔다. 또한 의문점이 있으면 퇴계나 성혼과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모호한 점을 없애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학문에 깊이를 더해갔다.
그 결과 조선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아홉 번 장원급제의 기록을 세워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율곡은 장원급제 이후에도 평생 책을 놓지 않고 공부를 지속하여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