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떠난 가족들
‘탈출할 결심’
태어나보니 북한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저자 한서희의 아버지는 간부, 어머니는 인민반장이어서 밥을 굶지는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피아노면 피아노, 노래면 노래 등 배우라면 배우고, 외우라면 외우면서 자랐다. 남한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라고 세뇌 당했지만 몰래 보는 남한의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오빠가 사라졌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사실 탈북한 가족은 오빠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모들과 외할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떠났다. 오빠가 떠난 이상 남은 가족이 북한에서 계속 이전처럼 살기는 어려워졌다. ‘우리도 가자!’
2007년, 그렇게 운명처럼 떠나와 정착한 서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누구든 일을 하는 만큼 돈을 버는 사회지만 북향민(北鄕民) 또는 탈북민에게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영역과 기회 자체가 적다. 그렇다보니 진입 장벽이 낮은 일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지고, 고단해진다. 한국인이나 일찍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은 다른 사람들과 격차도 점점 벌어져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기도 하고…….
“북한 사람들은 그냥 좀 무서워”
“한서희 씨, 한글 쓸 줄 알아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에 저자는 숱하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탈북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텅빈 집을 중고 가전으로 채워준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발 벗고 일자리를 구해준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 덕분에 저자는 조금씩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갔다.
탈북민과 통일에 대한 인식 바꾸기 위해
‘소통할 결심’
북한에서 태어났을 뿐, 우리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좋지 않은 일을 당할 때는 서럽기도 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탈북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 첫걸음이 안보 강사 활동이었고, 곧바로 방송 출연도 하게 되었다.
_「노래하는 탈북민」 중에서
북한 관련 콘텐츠를 예능으로 접근한 장수 TV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첫회 출연자, 북한의 김태희, 성악하는 탈북민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정착 초기만 해도 방송 섭외 요청을 다 거절했다. 하지만 점차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권 탄압이 심한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앞으로 한국에 와서 정착할 탈북민을 위해서라도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을 좀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 앞에 누군가 나서야 했다. 저자는 용기를 내어 통일 안보 강사로 활동하면서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 〈아침마당〉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기에는 〈피앙 한서희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와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담아 동영상을 꾸준히 올리며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했다.
저자의 삶은 크게 북한 무산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커서는 평양에서 성악배우로 일하며 권력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시즌 1, 그리고 서울의 한 임대주택에서 살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시즌 2로 나눌 수 있다. 한국과 북한, 나아가 평양과 서울에서 모두 살아본 저자는 이제 북한 관련 이슈가 있을 때 BBC, NHK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믿고 생방송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하는 북향민 출신 ‘프로 방송인’이 되었다.
이 책에는 북한과 한국에서 각각 인생의 절반을 보낸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 긴박하고도 지난했던 탈북 과정, 부모님과 함께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한 저자는 가정을 꾸리고 방송인으로,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점들, 나아가 통일 이후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책 속에 담았다. 누구보다도 스마트하게, 부지런히 남한살이, 서울살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의 일상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한국에 왔을 때, “북한에서 왔어요” 하면, 대부분 나를 ‘탈북자’라고 불렀다. 사실 정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인데, 보통 한국인들은 우리를 탈북민이나 새터민이라고 많이들 불렀다. 엄밀히 보자면, 탈북자는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게다가 ‘탈脫’은 탈영병처럼 주로 부정적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일 때는 그냥 감안하고 지냈으나, 아이들이 나고 자라면서 호칭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실향민이라는 용어도 있으니,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북향민’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에도 모나기 싫어 결국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탈북민이라고 썼지만 말이다.〕
_한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