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30년』 – 허물어진 환상 위에서 피어난 생명의 불씨를 탐하다
심덕수의 『벚꽃 지는 시대: 사라진 성장, 견뎌낸 사람들』은 1980년대 후반의 찬란한 '벚꽃 환상'에서부터 '잃어버린 30년'의 깊은 나락에 이르기까지, 일본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격변을 탁월한 문학적 서사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로 꿰뚫어 보는 걸작이다. 도서는 기술 발전과 인구 변동, 정책 실패가 한데 얽혀 어떻게 한 국가의 운명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는지를 가장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들춰내는, 압도적인 공감과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문명 비평서다.
저자는 "마치 봄날의 벚꽃처럼 찬란하게 피어오르던 시절"을 묘사하며 "도쿄 땅만 팔아도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처럼 들리던 '버블 세대'의 광신적 낙관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하지만 그 환상 속에서 "잃어버린 30년의 서곡이 조용히 연주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경제 정책의 실패'와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다.
'시계가 멈춘 나라'에서는 일본 사회의 '젊음이라는 엔진이 식어가는데,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는 여전히 가동되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적확하게 진단한다.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두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려 '미래의 붕괴'를 초래하고 '소비 위축', '혁신의 정체', '국가 재정 부담'이라는 삼중고를 안겼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저자의 필치는 인구 문제의 심각성이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님을 경고하며 독자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미래를 숙고하게 만든다.
디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좀벌레'가 일본 경제를 집어삼키는 과정에 대한 3장의 묘사는 가히 압권이다. '물가 하락 → 소비 위축 → 기업 실적 악화 → 고용 불안 및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는 '잔혹한 순환 고리'는 독자로 하여금 경제적 지표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황폐함을 절감하게 한다. '정책 마비의 수렁'에서 헤매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실책, '유동성 함정'과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으로 누적된 '국가 부채'의 멍에를 조목조목 짚어내는 저자의 비판적 시각은 날카롭다 못해 너무나도아프다.
특히 '갈라파고스의 경고'는 한때 '기술의 제왕'이었던 일본이 어떻게 '세계 표준'에서 멀어져 '고립된 혁신'이라는 비극을 낳았는지를 '갈라케이'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장 정교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오만, '폐쇄적인 시스템에 대한 집착', '디지털 전환의 실패'가 제조업 강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갉아먹었는지를 분석하는 저자의 세련미는 과거의 성공 방식이 시대 변화 앞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모든 신화가 무너지고 깨어져 가는 암흑 속에서도 '힘들게 버텨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있다. '일생직장, 연공서열, 종신고용'이라는 신화가 산산조각 나고 고베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같은 대재앙 앞에서 '무너진 신뢰' 속에서도 발휘된 '자원봉사 대국'의 저력, '소확행'과 '히키코모리'라는 상반된 생존 방식, '프리터'와 '긱 워커'의 등장을 저자는 인간적인 온기로 담아낸다. 또한, 경제적 침체 속에서도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서브컬처'가 '조용한 저항과 새로운 창조'의 불씨를 지피는 문화적 현상을 간과하지 않는 그의 시선은 아무리 암울한 시대에도 인간 정신의 창조력은 꺾이지 않는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아시아의 뼈아픈 교훈'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한국과 중국에 던지는 경고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에 '조기 학습된 버블 붕괴의 교훈'이 되었던 점, 중국이 일본의 실패를 보며 '플랫폼 경쟁'과 '글로벌 표준' 선점에 집중했던 역사를 대비시키며,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의 길을 찾는 아시아 국가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장에서는 한국 사회 역시 일본보다 더 심각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절벽, '영끌'과 '빚투'가 만든 부동산과 가계 부채의 덫, 'N포 세대'의 절규 등 '잃어버린 시간의 데자뷔'를 겪고 있음을 경고하며 '우리 안의 갈라파고스'를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일본의 뼈아픈 경험이 아시아 전반, 나아가 전 세계에 울리는 진동음과도 같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통찰 속에서 저자는 과거의 환상이 남긴 상처 위에서 진정한 성장의 의미와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재고하게 한다. 이 책은 경제학, 사회학, 문화인류학을 넘나들며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거대한 지적 성취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감동적인 과정을 차분하게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도서는 벚꽃처럼 아름답지만 빠르게 지는 환상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