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 윤리학의 최고, 우리시대 고전 중의 고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강론을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 등이 편집하여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2,30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이어 와 우리에게 남겨진 서양 윤리학의 대표적인 고전 중의 고전이다. ‘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고, ‘윤리학’은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윤리학은 도덕의 본질, 기원, 발달, 선악의 기준 및 인간 생활과의 관계 등을 논구(論究)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윤리학을 확립한 명저로, 이 책은 “사람이 인생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행복, 즉 잘 살아가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이 애매한 개념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이야기로 끌어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시 도시국가 시민을 대상으로 강론한 것이지만 르네상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상, 학문, 인간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 즉 잘 살아가는 일
“어떤 기술 어떤 연구도, 또 어떤 실천이나 선택도 모두 선(善)을 추구한다고 본다. 그것은 선을 가지고 만물을 추구하면 그 해명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첫 권 첫 장이 이렇게 시작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 한 문장으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확신을 갖게 한다. 모든 것은 ‘선’으로 이정표를 삼으니, 결국은 바람직한 삶이 됨을 한마디로 말하고 있다. 어떠한 잣대도, 계산도 필요 없이 오로지 ‘선’만을 추구하며 행동한다면 어떻게 가도 결국은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 선에 윤리적인 덕이 빠진 실천은 그 어떤 뜻있는 작업도 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지려(智慮)’가 ‘윤리적 덕’을 낳는 사정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만큼 윤리적 덕이 중요함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지려(智慮)는 하나의 ‘지성적 탁월성’이다. 지성적 탁월성은 지려 외에 지혜 등 몇 가지 사실이 있어서 그 각각이 엄밀하게 음미,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덧붙여, 탁월성 내지 덕은 단지 지성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에토스적 탁월성’, 즉 ‘윤리적 탁월성’인 것(정의, 용감, 절제 등)이 존재한다. ‘탁월성’은 분명, 인간적 탁월성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선도 인간적 선이고,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도 인간적 행복이기 때문이다.
쾌락도 또 그 선(善)으로서의 요구에 대한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기 앞서, 치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개념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무엇인가. “지려가 선인가, 쾌락이 선인가”도 아니고, 또 전승적(傳承的)인 “관조적(觀照的) 생활과 정치적 생활과 향락적 생활 가운데 그 어떤 것이 가장 선한 생활인가”도 아니다. 그의 실천 철학에서 최초의,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선은 무엇인가”, “무엇이 최고선인가”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인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며, 행복은 가장 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쾌적한 것으로, 한마디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보다 정확하게 ‘윤리학서’, 또 그의 저작 『정치학』도 ‘정치학서’라 불러야 할 것이지만, 두 책이 모두 ‘정치학’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학서’ 끝부분은 ‘정치학서’에 가는 다리 역할이고, 여기 이미 ‘정치학서’ 프로그램까지도 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윤리학서는 ‘정치학’의 1부이고, 정치학서는 똑같이 그 2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관계 설정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갖게 되지만, 최소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인간 사회성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윤리학인 것이고, 그의 정치학은 윤리적 성격이 농후함을 부정할 수 없다.
결론은 ‘바르게 사는 인간의 도리’
‘우리말 화법’ 연구에 한평생을 보내며『국어화법』,『표준 한국어 발음(發音)사전』외 다수의 책과 번역서를 출간한 역자는 “학문의 시작은 역사적 연구요, 학문의 종결은 철학적 연구다.”라는, 학문하는 지혜를 깨닫는다.
그간의 연구를 통해 우리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즉 ‘말하기 듣기’가 ‘언어학’적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인간관계와 예절’은 물론, ‘윤리학’의 문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 현실임을 자각하게 되고, 이 ‘말하기 듣기’가 입이 말하고 단순히 귀가 듣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된다. “화자(話者)는 그의 입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입을 통해 그의 인격이 말하고 있음이다. 마찬가지로 청자(聽者) 또한 그의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 그의 인격이 듣고 있음이다.” 이렇듯 역자는 말하기 듣기가 인격(人格)의 만남이요, 인격의 교류라 보았다.
이때 우리 인격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인격 형성을 위해 우리가 관심 기울여야 할 분야가 어떤 것인가? 역자는 그것이 바로 ‘윤리학’임을 인식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레토릭』을 우리말로 옮긴 뒤,『니코마코스 윤리학』번역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그 동기를 밝힌다.
인간이 공동 사회 구성원의 일원임을 상기할 때, 사회 구성원의 책무가 무엇이며, 선(善)을 추구하는 우리 삶이 정의 사회를 구현하려면 정치인이 담당할 책임은 또한 무엇일까, 이렇게 관심의 초점을 맞춰보니, 단연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어떤 것일까? 첫손에 꼽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성경』, 뒤를 이어 유교의 『논어』, 불교 경전 등 그 외에도 좋은 책이 많지만, 그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올려놓고 싶다고 역자는 말한다.
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인간 행위의 규범에 관하여 연구, 도덕의 본질·기원·발달·선악의 기준 및 인간 생활과의 관계 등을 논구하는 학문은 윤리학이다. 따라서 번역자는 이 책의 부제를 “바르게 사는 인간의 도리”라고 당당하게 붙이고, 독자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