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행 같고 때로는 일상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제주살이
유머와 감동이 있는 은퇴부부의 티키타카
기를 쓰며 돈을 벌고 경쟁에서 이기고 셈을 아끼고 할 필요가 없는 삶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꿀 것이다. 정년을 맞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비켜선 부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 시시때때로 제주에 내려가 틈만 나면 투닥거리는 은퇴부부가 있다. 돈 없으면 한 달, 여유가 되면 두 달, 또는 세 달 살이를 하는 그들의 모토는 ‘바람과 햇볕 아래 오랫동안 서 있을 것. 자주 외로운 자리를 만들 것. 편안한 곳을 정해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것. 고요하고 낯선 것들을 어려워하지 말 것’이다. 더 이상 멋을 부려도 예쁘지 않고, 애교를 부려도 귀엽지 않고, 화를 내도 무서워하지 않자 할 일이 없어진 아내와 일밖에 모르던 남편이 제주의 올레길과 숲을 걷고 바다를 따라 걸으며 느리고 소박한 삶을 누린다. 그들은 바쁘게 살아온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익숙한 것들을 두고 떠났으니 모든 것이 부족해 불편했고, 온종일 더듬거려야 했지만 그제야 비로소 재미있는 일, 소중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의외로 큰 기쁨이 되었다. 먹고 자고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꾸만 그들의 발길을 ‘젊어지는 섬’ 제주로 향하게 하는 까닭이 되었다.
때론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느닷없는 코끝 찡함으로
무심하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되다
『아무튼 제주』를 읽다 보면 때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다가 어느새 코끝이 찡해오기도 한다. 부부의 티격태격이 재미있어서, 늙어가는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따뜻해서 작은 감동이 일렁인다. 저자는 고사리를 꺾다가 돌무더기 위로 넘어지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웃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기도 하지만, 산을 오르다 슬며시 남편의 손을 잡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제주에서 만나는 뭇 생명들에 대한 애틋함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계속 따라오는 백구에게 줄 빵을 사느라 좋아하는 막걸리를 못 먹기도 하고, 신도포구에서 만난 남방큰돌고래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다치게 되자 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마을의 터줏대감인 퐁낭(팽나무) 할아버지를 통해 오래된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재개발로 인해 퐁낭 할아버지가 사라질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숲에 자주 가는데, ‘숲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도 하고 지금의 내 자리를 점검해 보는 시간도 갖게 한다’라고 함으로써 삶을 성찰하는 장소로 숲을 찾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살이를 꿈꾸는 이나 일상에 지친 이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