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성경 해석들은 모두 개혁주의적 신학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교파나 교단에 따라, 개인적인 수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교리나 본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모든 해석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누구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최종적인 판단은 역사의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 불리는 신학 전통 안에서 가장 풍성하고 균형 잡힌 성경 해석의 열매들이 맺혔습니다. 윤석준 목사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구속사적 성경 해석 방법을 바른 성경 이해의 열쇠라 믿으며, 그동안 이러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전통을 따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윤석준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개혁주의적 구속사적 해석의 전통에 입각해서 현재 한국 교회 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잘못된 성경 해석, 불건전한 성경 해석 등을 바로잡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란 사실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들어가는 글]
몇 년 전에 교회 주보에 올릴 예화를 찾다가 예화관련 사이트에서 ‘백혈구 예화’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예화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우리 몸의 핏속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백혈구는 우리 몸에 들어온 침입자(병균)를 물리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쓰지 않습니다. 화학약품을 쓰는 것도 아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침입자를 품에 꼭 껴안을 뿐입니다. 백혈구에게 안긴 침입자는 백혈구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냥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껴안아 주는 백혈구의 사랑. 놀랍지 않습니까?’
이 예화가 매우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리플을 달았습니다. ‘백혈구는 병균을 사랑하여 안아 주는 것이 아니라, 병균을 공격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병균도 감동하여 녹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입니다. 백혈구가 병균을 공격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도 이웃이 나를 향하여 공격할 때, 가서 살포시 그 사람을 죽여 버려야만 합니까? 백혈구가 하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예화는 전형적인, ‘내용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은혜라는 목적에 끼워 맞춰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묻고 싶었던 것은 ‘감동이나 은혜라는 감정은 반드시 옳은 상황, 곧 진실에서만 의미가 있다’, ‘거짓 진리에 기반한 은혜는 진짜 은혜가 아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글에 리플을 달았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사람들이 이 단순한 명제, 즉 ‘예화조차도 전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맞아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저의 리플에 추가적으로 달린 다른 사람들의 리플은 저를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주 소수의 찬성을 제외하면, 거의 대다수의 이후 리플들은 ‘은혜만 받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 ‘너무 까칠한 것 아니냐?’, ‘저는 너무 은혜받았는데 님은 사랑이 메말랐나 봐요’……라는 종류의 리플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척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울했습니다. 그때서야 깨닫게 된 현실은 제가 앞에서 전제했던 내용, 즉 ‘설교가 되었건 예화가 되었건, 사실에 토대해야만 은혜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저의 아주 작은 전제가 한국 교회의 일반 성도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때 발견한 사실은 일반의 성도들에게는 ‘진리’ 따위가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것이 진리이건 아니건 그 사실 여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거짓 설교와 거짓 성경 해석이 횡행하는 이유는 실은 ‘거짓이라 할지라도 은혜만 받으면 된다’고 하는 비진리에 대한 성도들의 뿌리 깊은 공통된 의식적 배경이었던 것입니다.
이전까지도 한국 교회가 말씀을 이해하는 양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 작은 에피소드 하나는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이 101가지나 되는 글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는, 너무 뿌리가 깊어서 그 뿌리를 캐내기조차 힘든 무서운 대적이 하나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이 뭐라 말하든 내가 그것을 통해 은혜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말씀의 진의’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국 설교도, 교회 생활도 실용주의로만 나아가게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더라도 성도가 감동받지 못한다면 ‘나쁜 설교’, 연구가 부족하고 말씀의 진의와 좀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성도가 크게 감동받으면 ‘좋은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살피고 사랑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가 의미를 함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성도든, 목사든, 누구건 간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을 해석하거나 적용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드러나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중’이지 ‘우리의 실용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의중을 덮어 버릴 때, 성경은 왜곡되거나 손상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안에는 이런 악한 움직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위에 범람하는 설교들과 말씀을 나누는 성도들은 ‘본문의 정확한 뜻’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본문의 정확한 의미가 아니라 ‘그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느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해석이 틀렸을지라도 은혜를 끼친다면, 그것을 향해 ‘틀린 해석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혹여 누구라도 ‘그 말씀은 사실은 이런 뜻인데요……’라고 말을 꺼낸다면,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은 ‘머리만 크고 은혜는 말라 버린 사람’, ‘학문에 치중하여 가슴이 뜨겁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설교에 대해 토를 달거나 진의를 물으려고 하면, ‘은혜받을 생각하지 않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안티’ 취급을 받습니다. 소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은혜받을 생각이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걸려 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오해의 책’입니다. 우리가 교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오해들, 성경 말씀이 언급되고 설교되고 있으나 틀리고 잘못된 것들, 교회 생활 속에서 굳어진 전통이 되어 버렸으나 성경의 진리가 아닌 것들…… 이것들이 이 책 전체의 목적 대상입니다. 이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 진실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악순환과 선순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악순환이란, 목사가 가짜 설교를 하면 성도가 그 가짜 설교에 익숙해지고, 가짜 설교에 익숙해진 성도는 다시 자기 교회에 목사를 청빙할 때 진짜 설교를 하는 목사 대신 가짜 설교를 하는 목사를 부르게 되고, 다시 그 가짜 목사 때문에 성도는 더 가짜 설교에 익숙해지는 악순환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선순환’을 이루어 내는 방법뿐입니다. 목사가 바르게 가르치면, 성도가 바른 말씀을 통해 바른 성도가 되고, 성도가 바른 말씀을 가지게 되면 이전의 바른 말씀을 가르친 목사가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그 교회는 다시 목사를 청빙할 때 아무나 선택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시 바른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를 청하게 되고, 다시 그 바른 목사를 통해 성도가 더 바른 성도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순환은 반드시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가 먼저 바른 말씀을 가르침으로 악순환을 끊을 수도 있고, 성도가 바르게 성장하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의 한국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에게도 달려 있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성도들에게도 동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 위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는 목사 아래에서 건강한 교회가 자라게 됩니다. 또한 건강한 교회에는 말씀을 중시하지 않는 목사는 설 수 없습니다. 즉 우리 모두의 진지한 말씀 사랑만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거룩한 교회로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이 책은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말의 구조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몇 번을 읽으면서 수정을 가했습니다. 실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전하려고 하는 책이 말씀보다 더 어려워서는 곤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각주를 줄였습니다.
혹여 여기에 제시된 내용들에 대해 조금 더 전문적이고 신학적인 필요가 있다면, 해당 주제들에 대한 모든 토론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들이 동원되는 일은 기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행하실 일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