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배신하고 절망이 굴러와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아픈 나를 관찰하며
삶의 파도 타는 법을 깨닫다
활짝 열려 있던 문이 철거덕 닫히며 깜깜한 어둠 속에 내던져졌다고, 저자 양선아는 2019년 12월을 기억한다. 청천벽력 같은 유방암 3기 진단. <한겨레> 기자로 20여 년간 종횡무진 달려온 동시에 한창 자라는 두 아이의 엄마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지던 때였다. ‘도대체 왜 내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는 그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서 불빛을 더듬어 ‘암’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솔직하고 감동 가득한 에세이다. 암이라는 질병은 평소 ‘에너자이저’로 불릴 만큼 활기와 긍정 넘쳤던 그조차 처음엔 한없이 약하게 만든 인생의 돌부리였다. 그러나 “투병으로 이어지는 삶도 나의 인생이며 이 시간 또한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절망과 불안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바뀌었다. 암 진단 이전엔 비대한 자아를 중심으로 뭐든 내 뜻대로 삶을 만들어내야 만족했다면, 암 진단 이후엔 나 자신이 광활한 우주의 일부분이며 인생은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수술-항암-방사선’의 투병 과정과 극심한 몸의 변화, 예상을 빗나가는 순간들을 통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힘을 내기만 하고 살아온 지난날과 달리 힘을 ‘빼는’ 기술을 익히며 비로소 삶의 파도를 타는 법을 깨달았다. 아픔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기대어 살아낸 사랑과 연대의 시간도 책에 촘촘히 담았다.
“처음엔 암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암이 내 삶의 즐거움과 앎의 기쁨을 빼앗고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영영 무채색 같은 삶을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암 진단 이후에도 또 다른 기쁨과 행복과 기회의 빛이 나를 비춰주었다. 여전히 삶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_6쪽
서로의 꽃이고 기도가 된 독자들의 성원
“내가 투병하던 때 이 글을 읽었더라면
훨씬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유병자(1999년 1월 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전 국민의 3.6퍼센트인 187만 명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0퍼센트로 나타났다. 국민 다수가 자신이 암 환자가 되거나 암 환자의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는 〈한겨레〉에 연재했던 ‘양선아의 암&앎’을 모으고 덧붙여 엮었는데,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이 이어졌다. “암 환자라고 하면 그저 중증 환자 정도로만 여겨지는데 암 환자가 겪는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자세하게 그려주고 또 조금씩 다시 찾아가는 평범한 일상도 다뤄주니 이해받는 듯한 느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만약 수술 전후에 이 글을 읽었더라면 훨씬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등 공감의 목소리와 함께 1년 5개월간의 연재가 마무리되고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한때 암 진단을 받았고 완치한 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며 용기를 주는 이들의 메일은 또 얼마나 든든하던지요. 실제로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새로이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7퍼센트에 달합니다. 1995년 암 5년 상대생존율이 41.2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높아졌지요. (…) 생각해보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질병 또는 교통사고 등으로 언제든지 아플 수 있고 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그렇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데, 암에 걸렸다고 하면 죽음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_265~266쪽
저자가 이 책 전반을 통해 꾸준히 강조하는 것도 질병에 대한 주변의 이해와 그에 기대며 회복할 수 있는 환자 자신의 용기, 그리고 아픈 이들 사이의 연대다. 암 진단과 수술 후 가슴 ‘트고’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목에서 그 따뜻하고 소중한 연대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투병 중 유방 조직 전체를 잘라내는 전절제술을 받게 되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은 저자에게, 선뜻 환자복을 열어 수술 후 복원까지 완료한 자신의 가슴을 보여준 ‘선배 환자’들. “그들의 행위는 타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공감과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내게 느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방의 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보형물을 넣거나 복부 살을 떼어 붙이는 경험은 개별 여성에겐 매우 힘들고 고유한 일인데, 누군가가 그 경험을 앞두고 두려워할 때 먼저 그 길을 간 여성들이 자신의 가슴을 기꺼이 보여주며 안도감을 제공해준 것이었다.
“수술 병실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할머니는 선뜻 내게 가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할머니가 환자복을 열고 가슴을 보여주는데 내 입에서 저절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나왔다. 양쪽 균형도 잘 맞고 가슴 모양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슴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내게 가슴을 ‘트는’ 사람들은 할머니 말고도 더 있었다.”_183~184쪽
“어떤 상처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약이 된다”
인생의 돌부리에 넘어진 마음을 일으키는
부축의 매뉴얼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는 투병기이지만 어둡지 않고 삶의 큰 고비에 대한 책이지만 무겁지 않다. 저자는 특유의 솔직함과 낙천성으로 질병의 양상과 치료 과정, 부작용과 회복의 상반된 경험 모두를 따뜻하고 담백한 필치로 그려낸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던 날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무릎이 탁 꺾여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서점이었던 일, 대학병원의 짧은 진료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마치 취재원을 만나듯 철저하게 질문지를 준비한 일 같은 에피소드는 20년 베테랑 기자의 ‘포스’를 느끼게 한다. 한편 항암 부작용으로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다 우여곡절 끝에 ‘배변 독립’을 맛보았을 때의 행복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아예 빡빡 밀었는데 ‘도라에몽’같이 예쁘다는 가족들의 반응에 그만 웃어버렸던 기억은 독자를 실컷 울렸다 또 흠뻑 웃긴다.
“딸이 내 머리를 보고 ‘도라에몽’을 떠올린 순간,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라에몽은 아이들과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고, 그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떠올린 순간 심지어 기분이 좋아졌다. (…) 머리카락 빠지는 문제에 며칠 동안 부대끼면서 인생이 새옹지마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살다 보면 슬프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또 웃을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도 생긴다. 그래서 너무 슬퍼할 필요도 또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기쁠 땐 제대로 기뻐하고 슬플 땐 제대로 슬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_77쪽
추천사를 쓴 작가이자 심리기획자 이명수는 이러한 양선아만의 에너지로 채워진 이 책을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가 건네는 “부축의 매뉴얼”이라 말한다. 잘 아문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부축해 회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병원 생활과 항암 치료, 수술과 관련한 크고 작은 팁을 포함해 생활습관, 식습관, 마음가짐, 정보를 공유할 만한 통로 등 직간접적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저자만의 지침과 조언을 빼곡히 담고 있다. 아울러 어떤 방식으로든 저마다의 순간에 찾아오는 아픔과 시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생의 태도와 방향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몸’과 ‘나’, 그리고 ‘삶’의 관계에 새로운 물음을 던질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불안으로 마음이 출렁일 때마다 저는 항상 ‘나’로 돌아갑니다. 나와 연대하는 것이지요. 내 느낌과 감정,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하기 싫은 일 등에 대해 집중하면서 나를 더 탐구해봅니다. (…) 그렇게 했는데도 마음이 계속 출렁인다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 하고 생각해버립니다. 힘내지 않고 오히려 힘을 쫙 빼는 것이죠. 그동안 저는 너무 힘만 내고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는 힘을 내기보다 ‘빼는 기술’을 익히고 싶어요.”_237쪽
추천의 말
나이 들수록 누군가를 부축하는 글이 최고로 좋아진다. 그게 글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 같기도 하다. 《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는 내게 최고의 글이다. 어떤 말이 살아 움직여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지, 그 말이 어떻게 천하무적의 방패가 되어 삶을 계속 전진시키는지를 자기 경험을 통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유방암 투병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부축의 매뉴얼 같은 글이다. 동아줄이 될 글이다. 이 글로 부축받을 사람들이 느껴져 읽는 내내 충전기에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기자답게 진료실에 수첩과 볼펜을 들고 가 잊지 않고 질문하기, 수술 전 간병시스템을 어떻게 짤지 계획하기, 항암 치료 전에 해야 할 일, 양선아의 수술 준비물 리스트 등 실용적 팁도 그득하다.
양선아는 상처 입은 치유자다. 본래 상처는 독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잘 발효된 상처는 독을 내뿜지 않고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약이 된다. 양선아의 맑은 필터를 통과한 상처는 다정하고 단단해져서, 독한 항암제를 혈관 속으로 주입해 암세포를 박멸하는 일처럼 살면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절대 고통의 시간 속에 있는 이들조차 능히 일으켜 세울 만하다. 지금 물리적·심리적으로 벼랑 같은 고통 속에 빠진 누군가여,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선아의 부축을 마음껏 받으시라. 그리하여 천천히, 정확하게, 일어서시라.
-이명수(심리기획자·《내 마음이 지옥일 때》 저자)
본문 중에서
그날 나는 비로소 유방암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 질병이 부정하고 원망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 또한 내 삶이고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제야 암을 진단받기 전 내가 살아온 40여 년의 삶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치열했고 열정적이었고 내 삶을 사랑했다._34~35쪽
10년 전의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준 조언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을 잘 이겨내는 것이 장점”이라는 대목을 읽을 땐 신이 이 편지를 빌려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너라면 이 고통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또 너는 이 고통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고 말이다._38쪽
환우들 경험담 속에는 환우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지혜가 녹아 있었다. (…) ‘나 혼자만 이런 건 아니라는 거네.’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조금 덜 외로웠다. 어둠 속에서 나처럼 속쓰림과 변비의 고통을 겪는 환우들이 그려졌다. 상상 속에서 나는 그들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 잘 이겨봐요. 모든 노력을 다해봐요. 좋은 날이 올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환우들이 나고, 내가 다른 환우였다. 그렇게 내가 나를 격려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_61~62쪽
환자복이 스님 옷 색깔과 비슷해서인지, 영락없이 비구니 같다. 얼굴도 동글동글, 머리 모양도 동글동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보기 흉하지 않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 친정어머니 카톡이 온다. “오메~이쁘다(역시 엄마의 사랑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다).” 머리카락 빠진다고 울고불고하던 내가 불과 며칠 만에 또 머리카락 한 올도 걸치지 않은 내 두상을 보며 웃고 있었다._75~76쪽
첫 항암의 경험을 해본 나는 2차 항암 주사를 맞을 때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주사를 맞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 어차피 인생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고, 삶이 내게 쓴 레몬을 준다면 가만히 앉아 쓴 레몬을 먹기보다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고 했다. 어차피 항암 주사는 맞아야 하지만, 아픔·고통·두려움·외로움 등을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찾아야 했다._97쪽
그동안 내게 식사 시간은 감탄의 대상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면 매 끼니를 빨리 해치워야 했다. (…) 음식보다는 취재원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여야 하므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식사 시간은 내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던가. 내가 먹는 것들은 내 세포를 만들고 몸 구석구석에 가서 내 몸과 마음이 잘 작동하도록 해주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나를 막아주는 병사 역할을 해준다. 그 고마운 음식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매끼 맛을 음미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_138~139쪽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의사가 전절제하자고 하니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오니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마음의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았다. (…) 절망과 좌절의 회오리바람이 또다시 내 마음을 휘저었고, 나는 조용히 앉아 그 회오리바람을 응시했다. 애쓰며 피하지 않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놔뒀다._150~151쪽
유방의 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보형물을 넣든 복부 살을 떼어 붙이든 그 경험은 개별 여성에겐 매우 힘들면서 고유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힘든 경험을 하기 전 걱정하며 떨고 있을 때, 먼저 그 길을 간 환우들은 자기 가슴을 보여주며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전해주었다. (…) 수술한 후에도 이런 ‘은밀한’ 연대와 공감은 계속됐다._187쪽
여러 사람과 행복한 순간들을 나누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한 순간들을 듣다 보면 ‘아 저런 행복도 있지’, ‘아~ 이런 순간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힌트를 얻곤 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탄할 줄 아는 구체적인 행복 말이다._217쪽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무런 목적 없이 보내는 시간이 확 줄었다. 아이를 돌보고, 일하는 시간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도 벌어야 하고, 경력도 쌓아야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니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이제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나 노래 부르는 시간 등 나 혼자 아무런 목적 없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더 자주 허용하려 한다. 목표나 목적 없이 그저 순수한 즐거움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내게 더 자주 허락하고 싶다._225~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