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 히트 원더’,
우리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좇으며 산다
단 한 번,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절정의 순간을 산 사람들
부도덕함에 대항하는 부도덕함, 칠순의 포르노스타
극도로 존경받고 극도로 미움받는 도발적인 소설가
불순한, 그러나 미학적인 독재자의 치어리더
누구도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패션계의 볼드모트
파킨슨병을 냄새로 아는 슈퍼파워의 소유자
…
낯설고 비범한 스물여섯 명의 삶과 매력
《낯선 사람》은 희미해져가는 물건, 사람, 사건을 수집하는 작가 김도훈의 신작으로, ‘충격적이고 매혹적인 인물들’에 대한 ‘김도훈 식 재치있는 소개와 해석’이다. 완벽히 낯선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탁월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다르게 알려진 인물들, 어떤 의미에서 꼭 다시 볼 필요가 있는 ‘낯선’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스물여섯 명의 인물은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결점 때문에 언제나 논쟁의 한가운데 휘말렸거나, 치명적인 매력과 극단의 호불호를 가졌거나, 정점에 올랐다가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은 명성의 바닥으로 침몰한 인물들이다.
결벽증적으로 완벽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을 그리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밝힌 김도훈 작가는 언제나 “심각한 결점이 있는 존재에 항상 끌렸”다. 작가는 이 스물여섯 명의 대부분이 모순덩어리였고 개인적이었고 싸움을 좋아했고 때로는 폭력적이었지만, 적어도 한 번은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된다. 김도훈 작가만의 시선으로 ‘특별한’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인물들에게서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날카롭게 포착해낸 《낯선 사람》은,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려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부패한 정치를 풍자하기 위해 섹스를 이용하고,
‘미친년’이라 불릴 정도로 무언가를 위해 죽도록 투쟁한…
논쟁의 한가운데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들
이 책의 스물여섯 명을 세 가지 성격으로 분류한다면 첫째, ‘논쟁의 한가운데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들’, 둘째 ‘탁월한 재능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세상을 유혹한 인물들’, 셋째 ‘극단의 호불호를 감수하고도, 세상에 흥미로운 균열을 가한 인물들’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첫 번째 사례들은 우리에게 특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고릴라에 미친년”이라 불린 다이앤 포시는 ‘침팬지 연구가로 잘 알려진 제인 구달’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동년배의 여성 동물학자이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영장류 연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으나 다이앤 포시는 제인 구달과 달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도훈 작가는 “하나의 책이 한 분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다이앤 포시의 책을 내밀 것”이라 말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이 외에도 보수적인 이탈리아에서 국회의원이 된 포르노스타 치치올리나는 ‘부도덕함에 대항하는 부도덕함’ 콘셉트로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세상을 뒤흔들었으며, 불순하지만 감탄을 자아낼 만큼 미학적인 영상을 만든 히틀러의 치어리더 레니 리펜슈탈은 정치적 의도가 불순한 창작물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보게 한다. 극도로 존경받고 극도로 미움받는 ‘문제적 작가’로 유명한 미셸 우엘베크는 연대할 수 있는 캐릭터만 그리려는 지금의 문단 세태를 지적하고, 연대할 수 없는 캐릭터도 반드시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 밖에도 ‘패션계의 볼드모트’라 불리는 테리 리처드슨 등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이, 연달아 터지는 폭죽처럼 놀라운 메시지를 던진다.
30초에 한 병씩 팔리는 향수를 창조하고
고양이를 도시형 반려동물로 만든…
탁월한 재능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세상을 유혹한 인물들
향을 만드는 작업을 ‘예술가의 일’의 경지로 끌어올린 ‘에르네스트 보’는 전 세계에서 30초에 한 병씩 팔리는 전설적인 향수 샤넬 No.5를 만든 조향사이다. 향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정의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특별한 예술가의 삶을 살펴본다.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공존할 수 있게 된 데는 ‘고양이 모래의 발명’이 있었다. 인간 스스로 고양이의 ‘가축’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만든 위대한 모래를 발명한 ‘에드워드 로’의 뜻밖의 발명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유쾌함을 안긴다. 이 밖에도 할리우드 특수의상 디자이너에서 우주복 디자이너가 된 ‘호세 페르난데스’, 최소한의 디자인은 ‘기본을 따른 디자인’임을 각인시킨, 미니멀리즘 제품 디자인의 창시자 ‘디터 람스’, 수많은 CG영화의 시작을 만든, 그러나 불운했던 영화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평범한 주부에서 파킨슨병을 냄새로 아는 슈퍼파워의 소유자가 된 ‘조이 밀른’ 등 《낯선 사람》에는 천재적인 재능, 독보적 매력으로 세상을 더 풍요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장애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이용하고…
세상을 진화시키는 흥미로운 균열을 일으킨 인물들
계속된 논쟁이 없다면, 발전은 정체되고 결국 지금의 것도 ‘종말’을 맞이한다. 지금 우리가 영위하는 많은 인정과 복지도 누군가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논란이 되었던 주장이 지금은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지금도 현재진행중인 이슈들을 처음에 수면 위로 끌어올린 ‘대담무쌍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에이즈 환자들에게 아무도 손 내밀지 않던 때에 인기 방송인이자 크리스천 전도사로서 종교의 존재 이유와 사랑에 대해 설파한 ‘타미 페이’,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받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한다는 의지로 혁명적 커밍아웃을 한 ‘롭 핼퍼드’, 주인공으로 왜소증 히어로를 최초로 다룸으로써 장애가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편견을 깨부순 ‘보르코시건’,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시대에, 용기 있게 히잡을 쓸 자유를 노래하는 미국의 힙합가수 ‘모나 헤이더’, 자본주의라는 한계 안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한 기업 ‘밴앤제리스’를 창립한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 등 무모할 정도의 대담함, 때론 기괴할 정도의 참신함으로 세상을 진화시키는 개성 충만한 사람들이 출현한다. 단 한 번,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절정의 순간을 좇으며 산 사람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 《낯선 사람》에 펼쳐진다.
◆ 본문 미리보기
나는 결벽증적으로 완벽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을 그리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심각한 결점이 있는 존재에 항상 끌렸던 것 같다.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결점 때문에 언제나 논쟁의 한가운데 휘말려 든 인간들에게 항상 매혹됐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몇몇은 정점에 올랐다가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은 명성의 바닥으로 침몰한 인물들이다. … 나는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칠 정도로 무모하게 자신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대신 나는 이 책을 여기 수록된 모든 낯선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모순덩어리였고 개인적이었고 싸움을 좋아했고 때로는 폭력적이었지만, 적어도 한 번은 이렇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그들에게 바친다. 어쩔 도리 없다.
다이앤 포시는 르완다 사람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마녀라고 부르며 사람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고릴라 보호구역에 새로 생긴 마을에 불을 질렀고 가까이 오는 사람들에게 오물을 던지며 공격했다. 다이앤 포시는 밀렵꾼과의 전쟁이 아니라 르완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미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정부의 압력으로 다이앤 포시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르완다를 떠나자마자 르완다 정부는 그를 입국 금지 대상으로 정했다. 이미 그 시점에 다이앤 포시의 별명은 ‘고릴라에 미친년’이었다. 모두에게 존중받던 제인 구달과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치치올리나는 대체 어떤 존재로 역사에 남을까? 썩어빠진 이탈리아 정치가 만들어낸 거대한 농담? 그저 전 세계에 가슴을 드러내고 싶었던 역사적 관종? 아니면 성적 매력을 정치적 화력으로 바꾸어낸 여성 정치의 아이콘?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낸 당신은 포르노 배우를 진지한 여성 정치인으로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이 존재한다. 포르노를 반대하는 남성도 있다. 포르노 합법화를 찬성하는 여성도 있다. 포르노 산업의 여성 착취를 비판하는 남성도 있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제작하는 여성 감독도 있다. 물론, 포르노를 지난 반세기 동안 합법적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해온 서구와 우리의 잣대는 조금 다를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치치올리나는 진지하게 평가하기 조금 난감한 인물이다.
히틀러는 만족했다. 대만족했다. 〈의지의 승리〉가 ‘영상 프로파간다’로서 나치즘에 대한 최고의 선전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히틀러는 리펜슈탈에게 베를린올림픽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겼다. 〈올림피아〉는 지금까지도 올림픽을 담은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기록된다.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당대 최고의 장비를 모조리 사용해 〈올림피아〉를 찍어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올림피아〉는 놀라운 경험이다. 리펜슈탈은 ‘육체’가 갖는 강인한 힘을 거대한 화면에 담아내는 모든 영화적 기술을 총동원했다. 그리스 신전의 조각들을 아름답게 담아내던 카메라는 곧 올림픽의 몇몇 중요한 순간들로 옮겨가고, 남성과 여성의 육체는 카메라 앞에서 아름다운 기계장치처럼 움직인다. 뛰는 선수들 옆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리펜슈탈만의 기법은 지금 올림픽 중계 촬영의 어떤 기본적인 원칙을 고안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타미 페이를 도덕적인 선인으로도 정치적인 악인으로도 분류할 생각이 없다. 한 인간의 삶은 단순하게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복잡하게 이어지는 곡선이다. 세상에는 성소수자 극우주의자도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 사회주의자도 있다. 사람은 진실로 복잡한 존재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선과 악으로 갈라서 평가할 수 없듯이 진보와 보수도 명확한 경계선으로 나눌 수는 없다. 타미 페이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타미 페이의 유명한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할 생각이다. 그는 죽기 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누구도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라고 강요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나는 이것이 윤리적으로 복잡한 삶을 산, 그럼에도 진정한 크리스천 정신을 끝내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다르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장애인 히어로에게 자신을 대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물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첫 몇 권을 읽으며 묘한 이격감을 느꼈다.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장애를 지닌 인물의 육체적 콤플렉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로이스 맥매스터 부졸드는 마일즈라는 인물을 괴팍할 정도로 무모하고 색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그린다. 나는 이 시리즈를 읽으며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이 복잡한 내면을 가진 주인공으로 묘사되는 모험담을 읽은 적이 없었다. 육체적으로 유약한 주인공은 꽤 있다. 그들 역시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처럼 초인이 되는 혈청이라도 맞은 후에야 히어로로 거듭난다.
우엘베크의 책은 언제나 불쾌하고 불편한 인물과 표현으로 가득하다. 불쾌하고 불편한 표현을 지운다고 세상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픽션에서 금기들을 금기한다고 금기하는 금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픽션은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는 거울 속 추접한 모습을 보며 우리 내부의 불편하고 불쾌한 욕망과 마주한다. 픽션은 종종 우리를 가장 근원적인 욕망의 바닥까지 끌고 내려가 냉정하게 내동댕이친다. 우엘베크의 소설들은 자비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그는 스스로를 절멸시키려 발버둥 치는 캐릭터들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거기서 우리는 인간의 위선과 허위를 목도한다. 우엘베크는 그걸 마주하는 독자들마저 비웃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엘베크의 소설들은 로맨틱하다. 그 위선과 허위와 혐오로 똘똘 뭉친 인물들이야말로 가장 간절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그리고 실패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가 막힐 정도로 이율배반적인 주제의식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독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다. 가장 더러운 연못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재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