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 작가의 글을 꼿꼿하고 강하다.”
_정보라(소설가)
■ 책 소개
“분명히 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혜진 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저주 토끼》 정보라 소설가 강력 추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지상에서 7만 2천 킬로미터 위에 사람이 남아 있다고.”
판타지, SF, 호러 미스터리, 복수 스릴러를 통해
아스라이 피어오른 파란의 역사와 회복의 갈피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향한 잘 벼른 칼날”이자 한국 장르 문학의 베테랑인 전혜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바늘 끝에 사람이》가 출간된다. 중편소설 〈감겨진 눈 아래에〉와 장편소설 《280일》을 통해 ‘한국의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평을 받은 그는 특히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즐겨 찾는 독자들에겐 ‘믿보작(믿고 보는 작가)’이라고 불린다.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귀신이 출몰하는 상황조차도 전혜진의 손끝을 거치면 지금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하이퍼리얼리즘 판타지’가 되기 때문이다.
《바늘 끝에 사람이》는 “전혜진 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바로 그 방식으로, 격랑의 역사 속 움튼 폭력과 비극의 모티프를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건을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과 사이보그 노동자의 이야기로 담아낸 〈바늘 끝에 사람이〉, 전교조 탄압 사건을 환상적인 미스터리로 풀어낸 〈안나푸르나〉, 제주4·3을 전설적 존재와 동양풍 호러로 다룬 〈할망의 귀환〉과 〈단지〉, 한국전쟁의 참상과 설화를 절묘하게 엮은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공군 내 성범죄를 강렬한 복수 스릴러로 담은 〈창백한 눈송이들〉, 5·18민주화운동이 남긴 아픔과 연대를 보여준 〈너의 손을 잡고서〉가 그렇다.
이 책을 펼친 독자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시대의 자상을 맹렬히 추적하는 작가의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더하여 만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물지 못한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섬세하게 덧바른 고약 같은 결말들은 정보라 소설가의 말처럼 “상상의 서사가 연대의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통쾌하고 희망적으로 알려온다.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분들은 생존 자체가 투쟁이다. 나는 그분들의 투쟁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다. 전혜진 작가는 그 투쟁의 무게를 차분하고 명징하게 전달한다. 그는 나처럼 폭력의 거대한 투쟁의 깊이 앞에서 지레 움츠러들거나 먼저 울어버리지 않는다. 전혜진 작가의 글은 꼿꼿하고 강하다.
상상의 서사가 연대의 방식으로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전혜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_추천의 말에서
“만약 내가 세상이 말하는 투사라면, 나를 투사로 만든 것은 바로 세상이었다.”
사회와 개인을 바투 보는 일
세상 밖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역사는 늘 가장 좋지 못한 부분만 골라 되풀이”되고, 이 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참사가 잇따르고 누군가는 부조리한 시스템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만 쉬이 바뀌지 않는다. 주제의 무게를 기꺼이 관통하면서 다채로운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가는 이 책의 이야기들이 유효한 이유일 테다.
표제작인 〈바늘 끝에 사람이〉의 ‘나’는 지상에서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에 궤도 엘리베이터를 짓기 위해 몸의 절반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 노동자다. 완공을 앞두고 경기가 안 좋아지자 회사는 현장 노동자들을 해고하기에 이르고, 나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와 어마어마하게 징수된 청구서를 든 채 궤도 엘리베이터 85층에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나는, 217일째 홀로 이곳에 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기권을 아득히 벗어난 이곳, 궤도 엘리베이터의 카운터웨이트 끝에. _본문에서
사이보그 노동자뿐만 아니라, 어릴 적 참교육 배지를 달고 죽었던 담임의 낡은 카라비너가 30년이 지나 눈앞에 나타나자 혼란에 빠지는 〈안나푸르나〉의 ‘나’와, 1980년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영웅 혹은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야만 했던 〈너의 손을 잡고서〉 속 미경의 모습은 사회가 범해온 오류와 압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잔혹한 낙인이 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모든 일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일이었다”라고 말하는 무고한 이들을. 어쩌면 내 친구, 가족, 지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전쟁을 빙자하여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에 말이야.”
전쟁의 광기와 폭력의 잔재들,
신의 힘을 빌려 전하는 전혜진표 계보의 서막
전쟁은 국가가 저지르는 가장 큰 폭력의 초상이다. 이제는 소설에서나 나올 이야기가 될 법도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 《바늘 끝에 사람이》는 역사의 격변기마다 자행되는 지배 권력의 과실을 과감히 세상에 내어놓는다.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의 삼준은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이었다. 본대가 올 때까지 인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세워두는 허수아비. 팔순이 넘어 손주의 군복 사진을 바라보던 삼준은 자신이 겪은 일들, 전쟁이라는 광기와 그때 만난 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창백한 눈송이들〉의 나는 이제 막 부사관이 된 스무 살 군인으로 근무 첫날 행정동에서 자신과 같은 단발머리 여군을 보게 된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행정동엔 그런 군인이 없다며 자신을 귀신이나 보는 미친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하는데……. 〈할망의 귀환〉의 박 경장은 제주도 해양기지건설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서울에서 파견된, ‘제복 입고 완장 찬 뭍놈’의 경찰로 돌하르방 몇 기가 연쇄적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사건을 추적하고, 〈단지〉는 한국전쟁 이후 제주에서 무참히 살해된 이들의 혼을 담은 ‘단지’의 봉인이 풀리면서 당시 제일가는 만신의 제자였던 소화가 그들의 원혼을 달래는 이야기다.
그의 할머니가 무당이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뭍사람들에게 살해당한 무당의 손자. 그가, 돌하르방의 얼굴에 피를 바르고 있다. 돌부처가 피를 흘리니 홍수가 나고 해일이 일었다고 했지. 그건 정말로 돌부처가 피를 흘린다는 뜻이 아니었어. 누군가가 거기에 피를 바르는 것으로도 그 일은 일어났다고. 그 말을 누가 했더라. 술 취해 경찰서에 드러누워 있던 남자가 했던 말이었나, 양 주임의 말이었나. 박 경장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눈을 깜빡였다. _본문에서
“제주할망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복수를 계획”했던 작가는 세상엔 “복수에 성공하지 못하고 처벌도 원껏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더욱 많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서막이다. 전혜진 작가가 좀 더 나은 길을 택하기 위해 애쓰는 이이고, 잊어선 안 될 사건과 그 안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목하며 그 애환의 계보를 이으려는 사람이기에 더욱더 값진.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라는 정보라 소설가의 ‘서곡’이 그 빛나는 서막을 알린다.
신의 힘을 빌어도 복수에 성공하지 못하고, 처벌도 원껏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들은 이야기되어야 하기에 일단 세상에 내놓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나의 부족함 때문에 죄송해한다. 가끔은 별일 없이 사는 듯하다가도 미안합니다, 하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_작가의 말
■ 추천사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분들은 생존 자체가 투쟁이다. 나는 그분들의 투쟁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다. 전혜진 작가는 그 투쟁의 무게를 차분하고 명징하게 전달한다. 그는 나처럼 폭력의 거대한 투쟁의 깊이 앞에서 지레 움츠러들거나 먼저 울어버리지 않는다. 전혜진 작가의 글은 꼿꼿하고 강하다.
기록으로 연대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소설의 장점은 이야기의 결말을 현실과 다르게 상상할 수 있다는 측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주도하는 목소리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분들의 목소리여야 한다. 상상된 결말 또한 작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분들이 원하는 방향, 인간의 존엄을 향한 정의로운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전혜진 작가는 이 점을 언제나 기억하고, 언제나 사안에 정중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분들께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가해자들에게는 엄격하고 날카롭게 상상의 방향을 잡는다. 상상의 서사가 연대의 방식으로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전혜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전혜진 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식이다. _정보라(소설가)
■ 본문에서
그리고 나는, 217일째 홀로 이곳에 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기권을 아득히 벗어난 이곳, 궤도 엘리베이터의 카운터웨이트 끝에.
먼 옛날 피부색이 다른 것이,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인 것이, 일할 사람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이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아도 될 좋을 이유였던 것처럼, 이제 그들은 몸의 상당 부분을 기계로 교체한 사이보그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세상이 말하는 투사라면, 나를 투사로 만든 것은 바로 세상이었다.
“새벽에 거, 하르방이 넘어졌어.”
박 경장은 입을 떡 벌렸다. 제주 바람이 세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풍이 올라온 것도 아닌데 돌하르방이 넘어질 줄은 몰랐다. 제주도의 현무암에 구멍이 많다던데…… 그는 양 주임이 아끼는 분재에 얹힌 현무암 자갈을 만지작거리며 역시 퍼석돌 같은 거였나 생각했다.
그의 할머니가 무당이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뭍사람들에게 살해당한 무당의 손자. 그가, 돌하르방의 얼굴에 피를 바르고 있다. 돌부처가 피를 흘리니 홍수가 나고 해일이 일었다고 했지. 그건 정말로 돌부처가 피를 흘린다는 뜻이 아니었어. 누군가가 거기에 피를 바르는 것으로도 그 일은 일어났다고. 그 말을 누가 했더라. 술 취해 경찰서에 드러누워 있던 남자가 했던 말이었나, 양 주임의 말이었나. 박 경장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눈을 깜빡였다.
그건 그냥 단지였다. 검은 유약을 발라 구워낸 거칠거칠한 단지. 어렸을 때 집에 한두 개씩은 있었고, 지금도 재래시장에 가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흔한 단지. 하지만 그 단지를 꽁꽁 싸맨 새끼줄이 풀린 순간, 하린과 주연은 아득한 어둠을 본 것 같았다. 마치 그 작은 단지가 우주를 담고 있어 그 안에서 무한한 어둠이 쏟아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도를 달래는 것은 바람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덤덤해졌어.”
“전쟁에 말이죠.”
“아니, 전쟁을 빙자하여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에 말이야. 사람을 죽이지 마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마라, 그런 건 인간의 기본 도덕이지 않아. 그런 게 없어지는 거야. 전쟁이라는 건.”
“나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군에 말뚝을 박겠다, 내게는 여기밖에 없다. 그렇게 절박한 애들은 결국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죽어서 나가더라. 그러지 마. 그럴 것 없어. 졸업하고 딱 10년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이 살아서 도망치고, 그리고 몇몇은 그렇게 죽어서 나갔어. 그럴 때마다 생각하지. 위국헌신, 위국헌신. 그런데 우리에게 그렇게 위국헌신할 나라가 있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