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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상세페이지

차이나 리터러시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 관심 1
소장
종이책 정가
18,000원
전자책 정가
20%↓
14,400원
판매가
14,400원
출간 정보
  • 2023.09.07 전자책 출간
  • 2023.06.30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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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19.7만 자
  • 18.6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60405774
UCI
-
차이나 리터러시

작품 정보

■ 책 소개


“중국과 마주하는 법에 관한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조문영,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과 중국의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지리적 중간물’ 김유익이 통찰한
반대하고 싶은 중국 연대하고 싶은 중국


혐중 정서가 만연한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많은 전문가가 수교 이후 단연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각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 방향으로 설정하는 추세지만 한국만은 글로벌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 영향으로 외교, 경제, 국방,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에게 한중 관계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인사이트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의 저자인 김유익은 중국에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립대학교 하남석 교수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이어 주는 ‘역사적 중간물’ 루쉰처럼 김유익 또한 중국과 한국을 이어 주는 ‘지리적 중간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매개자가 아니다. 중국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며 두 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와 모순을 성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결 전문가’답게 중국에서 일상을 살면서, 동시에 한국과 부단히 접속하면서 마주한 인물, 매체, 사건을 다채롭게 엮고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혐중을 통찰하고 청년과 세대, 대중문화, 농촌과 도시화, 법과 통치, 홍콩 시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쟁점을 다루었다.(조문영, 연세대학교 교수) 또 애국주의와 정치적 ‘중화 민족 만들기’, 허무한 강국몽, 검열과 탄압에 몰두하며 폐쇄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 사회와 역사적 맥락, 그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했다.(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추상적이고 왜곡된 거대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중국과 그 속의 ‘생활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저자의 코디네이팅은 중국과 중국인을 보다 제대로 알고 그들과의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지역과 생활 세계를 통해 바라본 조금은 다른 중국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생태 교육과 생활 공동체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만 해도 저자 또한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 팔이 안으로 굽는 ‘한민족 중심주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무렵 중국의 농촌과 교외 지역에서 평범한 중국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생활 세계’를 경험한 후에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잘못 ‘읽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경험한 사례 중 하나가 동북공정 문제다. 그는 국내 주간지에 기고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하이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친구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동북공정을 단순히 지역 개발 프로젝트로 착각할 정도로 이슈 자체에 대해 무지했다. 또 중국의 주류 역사학계나 역사 교사들도 옆 나라의 역사일 뿐인 고구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를 거라고 덧붙였다. 중국 남방의 주요 명절 중 하나인 단오가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어서 곤경에 처한 타인을 잘 돕지 않는다’거나 ‘믿을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존재’라는 선입견은 또 어떠한가? 이런 이미지는 길을 가다가 쓰러진 노인을 도와줬더니 너 때문에 다쳤다고 억지를 부리며 배상을 요구했다는 일종의 자해 공갈 사건(일명 ‘펑츠 사건’) 같은 가십성 일화 때문에 형성되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윤리관은 한국인의 생각처럼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와 공공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 다를 뿐이다. 중국은 한국과 다른 역사적 경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보편 가치’에 대한 관점이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중국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중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의 확산에는 한중 간 문화 교류 부족도 한몫했다. 한류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흥행한 가운데 중국의 대중문화 수준은 여전히 낮게 평가하며 중국을 표절의 왕국, 지적 재산권과 저작권 개념이 없는 무법 지대, 프로파간다 콘텐츠의 천국으로 여겼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자국 대중문화를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결과 다양한 장르에 걸쳐 웰메이드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SF다. 중국의 SF는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국제적 위상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 외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의 창의성과 완성도는 글로벌 수준이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내수 시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하고 탄탄하다.
물론 우리가 여태 알지 못했던 중국의 새로운 면모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동, 언론,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고 인권 의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지만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이중적 행태, 중국식 유교 관료주의의 한계,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 제로 코비드 정책의 명과 암, 가부장적 악습과 전제 통치를 위한 악법 등에 대해 저자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몰이해가 혐중과 반중의 원인일까? 물론 충분한 배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중 국민들의 집단적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혐중의 배경에는 ‘르상티망 플러스’가 있다

한국은 1992년 대중 수교 이후 줄곧 ‘가난하고 낙후한’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성장한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한령으로 인한 수출, 관광, 서비스업의 침체는 한국 서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대만과 홍콩 문제,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 미세먼지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키운 반감은 중국이 자초한 것도 있고, 중국을 악마화해야 하는 미국이나 이에 동조하는 한국의 우파 세력이 과도하게 부추긴 점도 없지 않다.
저자는 혐중과 반중의 배경에 새로운 형태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있다고 말한다. 르상티망은 숙명적으로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상대에게 품은 원한을 일컫는다. 그래서 니체는 ‘주인에 대한 노예의 감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흔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에 비유하곤 한다. 이를 외줄 타기와 같은 처세로 이용하자는 부류도 있지만,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화 중심주의를 내면화하며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르상티망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로마 제국에 죽음으로 저항한 스파르타쿠스나 중국에 대한 대만과 베트남의 감정처럼 한국 또한 “아주 오래되고 찐득한” 정서, 패권 혹은 ‘추상적인 거악’에 대한 반역과 저항 정신을 가졌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를 ‘르상티망 플러스’라고 명명한다.
《삼국지》 《영웅문》 등을 보고 자라면서 우아하고 장엄한 중국 문명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가졌던 현재의 중장년 기성세대와 달리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MZ세대는 동년배 중국인 유학생이나 인터넷 게임 상대를 통해 중국을 접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조별 과제 실패나 비매너 게임 플레이 등 중국인 때문에 현실적인 손해를 입으면서 그들에 대한 비호감을 키웠다. 중국의 제조업과 문화 산업 역량이 높아지면서 미래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 두려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적 갈라치기 전술과 부족주의에 대한 호응도 MZ세대의 혐중 정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중국, 특히 중국의 청년 세대의 혐한 정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기편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오히려 자기를 적대한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생판 남보다 더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중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싫어하게 되었지만 중국 내 반한 정서는 혐중의 반작용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중국을 떠올릴 때마다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실익도, 의미도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미워해도 되지만 너희는 미워하면 안 된다는 ‘내로남불’식 사고는 한중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자급자족해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에너지, 식량, 자원 등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의 특기 중 하나가 외부의 지식과 기술로 탁월한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국제화 시대에 여러 문명, 세력과의 교류는 피할 수 없다. 하물며 수천 년을 부대끼며 지내 온 징글징글한 이웃인 중국과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중국을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우리가 이용해야 할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한다.


플랫폼으로서의 중국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현재 한국인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나치게 국민 국가화되어 있다. 한중 간에 문제가 생기면 사안이 무엇이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한반도 혹은 대한민국 크기만 한 성급 행정 구역은 31곳이나 존재한다. 2022년, 광둥성의 GDP는 이미 한국 전체 GDP를 넘어섰고 상주인구는 1억 명 이상이다. 면적이나 인구 같은 단순 체급으로만 따졌을 때 중국은 한국을 30개 합쳐 놓은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을 유럽 전체나 미국이라는 슈퍼파워와 직접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 지표의 규모에서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고, 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구조도 다른 중국을 한국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중국은 인류의 고문명 중 지금까지 민족과 국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세계 최하위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 과연 중화 민족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과 동등한 역량을 가지거나 추월할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도 우리와 공존해야 할 이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 유리할까?
저자는 한국이 3가지 방법을 동시에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미국을 위시한 서방 핵심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되 우리가 나서서 반중을 하지 않는다. 둘째, ‘비중비미(非中非美)’를 해야 하는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연대하고 상호 협력해야 한다. 셋째, 중국을 한국과 동등한 경쟁국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간주하고 우리 스스로를 플랫폼 참여자로 포지셔닝한다. 플랫폼은 규칙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도구지, 인격을 부여하고 그 관계와 과정에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플랫폼으로서의 중국’을 잘 활용해 윈윈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많은 한국 청년이 미국과 서구 사회로 진출해 공부하고 일하는 것처럼 중국을 찾아 활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생활 세계를 경험하면 그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고 보다 유연하게 이해하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와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처럼 중화 중심주의 성향이 짙은 대도시보다 지역 거점을 찾는 것이 좋단다. 지역민들은 한국 사람들을 더 환대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때 조선족 동포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와의 관계는 한중 관계만큼이나 멀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들의 관계 변화는 한중 관계 변화의 축소판일 수 있다. 우리보다 중국 사회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언어 구사에도 불편이 없는 그들과 파트너십을 갖고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유연한 경계 국가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중국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방법만큼 우리에게 실리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또 있다. 바로 ‘방법으로서의 K’다.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 소장인 중국 출신 인류학자 샹뱌오는 우리의 물리적 ‘부근, 주변’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사유법을 제안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화(中華)’라는 ‘방법으로서의 자기’에 익숙하다.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상대할 때 항상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방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결국 중국이 미국과 서구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의 조상과 우리들은 한 번도 자기를 방법으로 삼아 본 경험이 없다. 강대국들의 힘이 정면충돌하는 위치에 놓인 지정학적 운명 탓이다. 우리는 조선 왕조 500년, 혹은 그 이상 동안 중화라는 방법에 의탁해야 했다. 그리고 식민지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100년간 일본이라는 방법을 거울로 삼았다. 이제 미국이 제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 삶의 척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중심과 최고’를 부러워하고 여기에 집착하곤 한다. G5나 핵심 국가라는 말에 과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은 예다. 오죽했으면 ‘심리적 G8 국가 반열에 올랐다’는 자평이 나왔을까.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단순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다. 경쟁보다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고,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 자족함을 알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자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핵심이 되기 위해 애면글면하기보다 핵심과 변방의 사이를 우리 의지와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경계 국가’로 남아 유연함을 무기로 실리를 챙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대표적인 경계 국가로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역사적 원한과 혐오라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기 자신과 주변을 잘 이해한 덕분에 실질적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우리 또한 이미 상당 부분 그런 위치와 능력을 갖췄으니 자신의 아이덴티티 설정만 제대로 하면 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방법으로서의 K’, 그리고 우리만의 리듬과 속도로 보편과 시대의 흐름을 좇아 문제와 모순들을 해결해 나가는 태도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추천의 글

• 중국 이야기는 대개 연결의 부재보다 과잉 때문에 미궁에 빠진다. 무수한 연결을 따라가고, 매듭을 풀고, 때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면서 한국인들의 이해, 논쟁, 성찰의 화두로서 ‘중국’을 등장시키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차이나 리터러시》는 연결을 업으로 살아온 저자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중국에서 일상을 살면서, 동시에 한국과 부단히 접속하면서 마주친 인물, 매체, 사건을 다채롭게 엮어 근래 쟁점이 된 ‘혐중’을 통찰하고 중국과 마주하는 법에 관해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_조문영,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 김유익은 중국과 한국 사이의 단순한 매개자가 아닌, ‘지리적 중간물’이다. 그는 중국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며 두 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가 이 성찰을 통해 내놓은 대안은 단순하고 임시방편적인 화해가 아니라 이 지역이 처한 모순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_하남석,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 중국과 한중 관계를 고민하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준서구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언제 주변부로 밀려날지 몰라 조바심하는 우리의 불안이 ‘공산당 중국 오랑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도발적인 질문도 던진다. 추상적 거대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중국을 만나고, 중국을 플랫폼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 책의 제안은 갈등 너머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_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 책 속에서

‘중화 중심주의’는 존재한다. 2006년 베이징에 머물 당시, 한번은 내가 재직하던 다국적 회사의 사내 행사에 참석했다. 그때 미국에서 온 한 중국인 동료를 만났다. 그는 초면인 나에게 다짜고짜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들은 왜 더 이상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거죠? 한국 전통문화에서 중국 문화를 몰아내려는 거 아닙니까?” 기습적인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홍콩인 동료가 나를 대신해서 답해 줬다. “한국도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신장되면서 자기 전통문화를 더 중시하는 것이겠죠. 그들이 자기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겠다고 결정한다면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2020년 한국 언론이 중국의 애국주의와 청년 인터넷 애국주의자인 ‘소분홍(小粉紅)’을 비판하는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우선 국가와 시민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의 애국주의 정책과 이를 이용하는 ‘독재자 시진핑’을 비판할지언정, 시민들을 싸잡아 ‘중국’이라는 추상적 기호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많은 관찰과 생각을 한 후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과연 국가와 시민을 온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중국의 MZ세대 시청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는 역사 판타지와 타임 슬립(time slip)물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로 시간 여행하고 싶은지 물으면 송나라(宋朝)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공산당의 ‘위대한 중국’ 프로파간다에 열광하는 애국주의 청년들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이웃 나라 시민들 입장에서는 뜻밖의 발견이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나 고구려를 동북아 지도에서 지운 당태종의 시대가 아니라 문약(文弱)한 송이 그들의 로망이라고?

중국이나 일본처럼 비교적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가진 국민 국가에서도 이런 변경 지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만일 제주도나 오키나와 같은 지역의 거의 완전한 자치를 인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중략)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냉혹한 국제 사회의 현실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이런 질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질문의 초점은 단순히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당신은 과연 당신이 ‘우리의 일부’라고 믿는 어떤 그룹 사람들이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거부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그들이 아예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가로서의 독립을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제주도를 대만, 부산을 홍콩에 비유하고 사람들에게 ‘만일 이들 지역에 대해 일본의 식민 종주국 지위나 그 영향력이 100년 넘게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대체 역사 소설을 한번 상상해 보라’고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냐고요? 저도 답이 없죠.” 경남 지역의 용접 노동자 출신 저자 천현우 씨의 《쇳밥일지》 북토크 행사를 우연히 유튜브로 접하고 청년 세대의 반중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먹고사니즘’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중략)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의 이중 경제 구조 속에서 후자에 속한 평범한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안정된 삶과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 기업들이 중국 제조업체들과의 가망 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중략)
‘가성비’ 좋은 노동력과 잘 정비된 생산 인프라를 좇아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고, 세계 최대의 국내 시장도 상수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 공업 대국 일본, 한국을 차례로 앞지른 중국 제조업의 이 ‘어마무시’한 실력의 문화적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와 ‘하나의 중국’이라는 도그마에 언제까지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중략)
중국이 대만을 놓칠 수 없는 것은 민족의 통일 정서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남쪽 바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타협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제한하면서 대만의 정치적 독립 문제를 대만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이런 방침의 전환은 국제 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홍콩과 우크라이나의 사례처럼 민족주의적 정서를 등에 업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통합 정책을 사용하면 내부적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큰 상처를 남기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누리호 발사나 K-무기 개발에 관한 중국 뉴스들, 그리고 최신 한국 하드 SF 영화 등에 대한 중국 내 평을 살펴보면 유독 비꼬는 댓글이 많다. 바로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소분홍식 관점들이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중국인들 상당수가 이 화제를 두고 상당히 껄끄러워하고 부담스럽게 의식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중에 조금 천박한 수준의 중화 중심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앞서 말한 댓글을 다는 것이다. 아예 관심을 둘 만한 가치도 없다면 굳이 뉴스를 들여다보거나 댓글을 달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분홍의 이런 행위는 한국의 반중주의자들이 ‘차이나 포비아’와 무거운 르상티망에 잠겨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것의 거울 이미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보통 중국인들의 관심은 현저히 줄고 있다. 2022년 말에 행해진 대만 지방 선거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국민당이 승리하자 중국 내에서 대만을 협박하던 매파의 목소리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중국 바깥의 미국 주도 여론과는 달리 중국 내에서는 무력 통일을 주장하는 강경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2023년 초 시진핑은 러시아의 푸틴을 방문하여 중러 양국 간 경제 협력 대화를 나누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또 베이징에서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화안을 중재했다. 이제 중국 정부는 G2 패권 국가로서의 힘자랑 대신 몸을 숙여 ‘평화주의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예전에는 중화가 중심이 되는 ‘천하’ 세계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이라는 플랫폼이 존재하고, 중국도 미국도 아닌 제3지대의 결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몰빵’하지 않아도 된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 먹는 재미’를 누리면서 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중국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있지만, 나와 독자 여러분들은 한반도가 200년 전처럼 중국의 세계관과 영향력에 일방적으로 포섭되는 ‘리차이나(ReChina)’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종주국 위치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균형을 맞추기 위한 긴장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한국인들은 이런 긴장감 넘치는 게임 같은 세상인 ‘재미난 지옥’에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가?

나는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 2021년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그리고 2019년의 홍콩 사태와 신장 인권 문제 논쟁을 접하면서 이 상황들을 지켜보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 차이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느껴야 했다. 양국의 국익이나 민족주의 담론과 관계된 대립보다는 한국인들의 과잉된 도덕주의적 태도와 중국인들의 지나친 무관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홍콩 사태는 내가 사는 광저우에서 불과 수백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가 내게는 많은 홍콩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좌불안석이 되었다.

중국 사회는 사회 구조상 복수의 여론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한국처럼 인터넷과 레거시 미디어가 상호 작용하며 여론을 증폭시켜 단일한 ‘국민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신의 ‘키배’ 상대인 중국 네티즌이 중국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을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한다.(중략)
이제 한국인들도 ‘중국의 지역’,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물론 나는 중국에 별 관심 없는 한국 사람들이 억지로 중국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중국을 의식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많든 적든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의 미디어와 지식인, 그리고 문화 예술인들일 것이다.

기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전문가들 중 중국의 거대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했다가 ‘단물만 빨리고’ 쫓겨났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중국 기업과 중국인들을 믿을 수 없다”라고 험담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의 디테일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는 중국 기업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 상호 간의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소통 문제 해결이나 기대 관리(expectation management)에 실패했을 수도 있고 중국 기업들의 기업 문화 성숙도나 국제화 수준이 모두 부족했을 가능성도 높다. 마치 삼성이나 LG와 같은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구하면서 외국인 직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을 때 벌어진 일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런 주장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랄 뿐 우리의 미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서 내가 제안하는 내용들은 그런 차원의 시각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한번 결정되면 영구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중략)
나는 이 책을 통해 세간에 유행하는 ‘뒤집어 보기’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의 전도’가 아니라 ‘가치의 상대화’를 권할 뿐이다. 나, 우리와 그들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다. 내 시도가 한 사람의 생각에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내 생각에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김유익

서울에서 태어나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로 일하며 서울, 홍콩, 베이징, 도쿄, 싱가포르 등 여러 대도시에서 거주했다. 2012년, 생태 농업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해 일본의 자급자족생활센터와 서울의 하자센터에서 일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청년들을 위한 생활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과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경향신문》에 정기 연재를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매체와 SNS에 기고하고 있다. 공저로 《민간중국》 《자전거로 충분하다》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 《주변의 상실》(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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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중국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jin***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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