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구로공단, 구로디지털단지, 중국인 밀집 지역…
24년 토박이도 몰랐던 ‘진짜’ 구로의 위대한 유산
오해와 편견을 넘어 경이와 매혹으로 가득한
아주 사적인 구로 견문록
구로동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수십 년의 역사 속에서 구로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아 든다. 이 열쇠 말 속에 초기 산업화에서부터 고도 정보화 사회까지 달려온 한국 사회의 숨 가쁜 질주가, 저임금 노동의 공급국에서 수입국으로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집약되어 있다. 구로동은 한국 현대사의 비밀이다. _조형근(사회학자)
24년 구로 토박이인 저자는 자기 동네에 대한 외지 사람들의 인식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그의 부모 세대는 구로동을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의 이미지로 기억했다. 그러다 보니 저자는 종종 낡고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선배 세대인 1980년 전후 출생자들은 구로동을 첨단 IT 산업과 혁신 벤처 기업이 즐비한 구로디지털단지로 인식했다. 그래서 활기차고 세련된 신도시를 기대한다. 저자와 동년배인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구로동은 중국인과 재한 중국 동포(조선족)가 많이 사는 지역으로 통한다. 덕분에 치안이 허술한 우범 지대라는 편견이 생겼다. 분명 1960~1970년대의 구로는 도시의 변방, 인권의 사각지대인 동시에 수출 경제의 중심, 노동과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이었다. 지금은 IT와 벤처 산업의 교두보이자 세계화와 다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과연 구로동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로컬 문화의 가치를 기록해 온 저자에게 구로동은 삶터이자 배움터, 놀이터이자 일터였다. 그곳은 언제나 ‘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으로 정의되는 모습 그 이상을 보여 주었다. 동네를 누비고 살피고 맛보고 즐길수록 생경한 매력들을 발견했고 때로 노동, 인권, 차별, 다문화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구로구청 앞을 지나면서 1987년의 부정 선거 논란과 민주화의 열망을, ‘수출의 다리’를 건너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봉틀을 돌렸던 여공들의 애환을 생각했다. 구디(구로디지털단지)와 가디(가산디지털단지)에 밀집한 정형외과를 바라보며 IT 노동자와 청년 세대의 ‘웃픈’ 현실을 곱씹는가 하면, 구로 콜센터발(發)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를 통해 건강권을 고민하고, 마라탕을 먹으면서 이주민과의 행복한 연대를 꿈꾸었다.
이렇게 동네 구석구석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을 때마다 저자는 한 편 한 편 글을 써서 남겼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구로동의 새로운 매력과 가능성,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될 고민과 물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쓴 글들을 다듬어 한 권으로 엮었다. 이 책은 구로동을 향한 저자의 순애보가 담긴 일종의 견문록이다. 독자들은 때로 냉철한 시선으로, 때로 따뜻한 공감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 낸 구로동을 탐방하면서 한국 사회의 내일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구로공단, 미싱(mishin)과 미싱(missing)의 시대
구로동을 정의하는 세 키워드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로공단’을 꼽는다. 1960년대,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후 30여 년 동안 수출 경제의 최전선이었던 구로공단. 이제 공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프트웨어, 게임, 콘텐츠를 생산하는 굴뚝 없는 공장과 회사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디지털 단지 곳곳을 다니다 보면 ‘한강의 기적’과 당시의 영광을 기록한 안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안내판에는 이 자리에 얼마나 큰 공장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일했는지, 그리고 이 공장이 대한민국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가 적혀 있다. 이처럼 구로공단은 구로동을 노동과 산업의 공간인 동시에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는 영광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스포트라이트의 반대편에는 그림자가 존재하듯, 구로공단의 영광 이면에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노동, 인권, 주거, 환경 문제가 존재한다. 이 또한 동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970~1980년대 구로공단의 생활상을 재현한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전시가 구로공단을 경제 성장의 역사로만 기록하지 않고 노동자 개인의 삶까지 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아쉬움과 불편함도 토로했다. 가난과 열악한 노동·주거 환경을 단순한 구경거리나 체험의 대상으로만 소비하면 과거 노동자들이 왜 그런 곳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뒷전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로공단은 대한민국 최초의 동맹 파업이자 한국 노동 운동사의 주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구로 동맹 파업’의 무대다. 저자는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리던 수많은 ‘순이’의 삶을 보여 주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오늘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획이 고민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문화 예술 프로젝트 기획자인 저자가 ‘자신의 과제를 발견했다’고 여기게 될지 모르겠다.
구로공단과 경기도 광명시의 경계를 구분하며 흐르는 안양천으로 눈길을 돌린 저자는 또 다른 현재 진행형 문제를 짚는다. 바로 환경 문제다. 과거의 안양천은 대표적인 오염 하천이었다. 오염의 원인은 공단의 폐수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생활 하수였다. 하지만 주변에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쾌적한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강해졌다. 공장들이 서울 밖으로 이전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화 운동까지 더해져 안양천의 수질은 놀랍도록 좋아졌다. 하지만 저자는 환경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저 우리로부터 멀어져 잘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오염의 원인인 공장이 구로동과 도시에서 벗어나 지방, 혹은 더 멀리 개발 도상국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 주거,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렇게 중심에서 변방으로 전가된 문제들을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한다. 뫼비우스의 띠의 구조는 안팎 구분,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서 시작하든 결국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 지역, 나라에 전가한 문제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야 할까?
구로디지털단지, 최첨단의 뒤편에도 사람이 있다
사실 구로동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묻는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몸을 벌집에 잠시 누이던 공단 노동자의 처지로부터, 저 화려한 유리 성채의 디지털 단지 속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_조형근(사회학자)
적어도 구로디지털단지의 노동자들은 구로공단에서 비롯된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제조업을 이끌었던 공단과 첨단 IT·정보 산업을 담당하는 디지털 단지의 겉모습은 서로 다를지언정 그 안의 노동은 마치 평행 이론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시대, 환경, 제도가 변했어도 디지털 단지 노동자들은 공단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과 젊음과 건강을 바쳐 일하고 있다.
공단의 여공들은 좁고 어두운 공장 안에서 각자의 재봉틀 앞에 앉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환기조차 잘 되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기본적인 휴식조차 기대할 수 없었고 안질과 폐병 등 각종 질환을 달고 살았다. 부푼 꿈과 기대를 안고 디지털 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린다. 한밤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 ‘디지털 단지의 등대’라는 별명이 붙은 빌딩들 속에서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야간 초과 근무를 견뎌 낸다. 그 결과 손목터널증후군, 거북목, 디스크 등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이렇게 많은데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카페,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한의원이 밀집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공단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는 젊음, 혁신, 첨단, 미래 지향적 이미지를 구로동에 부여했다. 하지만 저자는 “디지털 단지의 안과 밖에서 바라본 모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실상도 달랐다”고 단언한다. 디지털 단지의 구성원이 젊고 입주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빠르며 일자리가 계속 창출된다는 점은 특유의 역동성으로 비춰지지만 여기에는 맹점도 존재한다고 꼬집는다. 빈번한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비롯된 짧은 근속 연수와 잦은 퇴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단지에 밀집해 있는 콜센터, 디지털 레이블링(labeling) 교육 시설, 인공 지능·알고리즘 전문 기업 등 첨단 산업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그리고 이 노동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중소기업, 하청업체, 외주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감춰질수록 기술은 더 놀랍고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기술에 사람과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단지 근무 경험이 있는 저자와 그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이곳에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 반드시 변해야 하는 것도 많다”고. 이처럼 구로동에서는 첨단 산업을 향한 20세기의 환상과 21세기의 현실이 교차하고 있다.
중국인 밀집 지역, 회색 도시를 넘어 모자이크 도시로
과거 수출 경제의 최전선이었던 구로동은 이제 첨단 산업의 최전선이 되었다. 더불어 국제화, 다문화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구로구는 거주자 중 외국인이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최대 중국인 밀집 지역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국인 사장과 종업원이 운영하는 식당, 중국 식재료를 취급하는 상점, 이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들이 즐비하다. 그러다 보니 구로동은 이주민과 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혐오와 차별이 촉발되는 공간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한 〈범죄도시〉나 〈청년경찰〉 같은 영화, 글로벌 시장에 서비스하는 OTT 드라마 등 일부 K-콘텐츠는 구로동을 범죄 소굴이나 무법지대로 그렸다. 또 그곳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재한 중국 동포를 위험과 혐오의 대상으로 묘사했다. 덕분에 현실 속 소수자들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그릇된 꼬리표를 달고 끊임없이 차별과 혐오의 언어에 시달린다. 이런 콘텐츠가 내재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구로동을 비롯한 이주민 밀집 지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워 버리고 그저 모든 순간이 범죄 서사를 위한 복선과 장치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저자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데 지인들로부터 구로의 치안에 대한 우려를 심심찮게 들어야 했다.
‘이러다간 대한민국이 외국인에게 점령당한다’거나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조선족이 무려 40가지 혜택을 받는다’처럼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 뉴스와 정치도 문제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주장을 일삼는 이들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당신들의 걱정은 미래가 아니라 오늘의 일이라고. 염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적응해야 할 사회의 단면이라고.” 2022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통계상 인구는 감소세에 진입했다. 점점 출생률은 떨어지고 고령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경기 침체와 장기적인 디플레이션의 기로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가능 연령 외국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주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사회적 요구인 셈이다.
저자가 이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병기된 영어와 중국어를 인지하고서부터다. 구로구는 10여 년도 훨씬 전부터 종량제 봉투 판매소에 중국어를 병기하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그리고 외국어 병기 종량제 봉투를 제작, 보급해 왔다. 이제 구로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이와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에 사는 이주민과 소수자를 배려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정책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구로동의 이런 적극적인 노력은 포용과 연대를 위한 더 넓고 깊은 고민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에서 첨단 산업으로의 전환, 첨단 산업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 이민자들의 점진적 증가는 모두 한국 사회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마주한 주요 변화들이다. 그리고 구로동은 이 모든 것을 가장 선두에서 겪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구로동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먼저 미래를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은 구로동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봄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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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오늘날 현대식 고층 건물로 가득 찬 이 지역 건조 환경의 놀라운 변화를 주시하면서, 동시에 그 너머 켜켜이 쌓여 온 인간 활동, 시테(cité)의 역사와 현재를 읽는다. 그리고 그 수십 년의 역사 속에서 구로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아 든다. 이 열쇠 말 속에 초기 산업화에서부터 고도 정보화 사회까지 달려온 한국 사회의 숨 가쁜 질주가, 저임금 노동의 공급국에서 수입국으로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집약되어 있다. 구로동은 한국 현대사의 비밀이다.
자기 동네를 해부하고 비판하는 저자의 시선이 서늘한데, 지역과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따뜻하다. 스무 살 되던 해 겨울 눈 쌓인 아침, 갓 상경해서 처음으로 혼자 탄 지하철역이 구로공단역이었다. 내 스무 살이 구로동에서 시작됐다. 이 책을 보며 각자의 구로동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_조형근(사회학자,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저자)
■ 책 속에서
구로동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동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느 동네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당연히 “구로동 살아요”라고 답하기 마련인데, 그런 답을 들었을 때 구로동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아, 구로동”이라며 아는 체를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구로동이 어디에요?”라고 되묻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동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편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중략)
이 책은 그 이면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미지 너머의 구로동과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동네 사냐”라는 질문에 “구로동 살아요”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생략했던 말을 복원하는 과정이자, 익숙하지만 낯설게 동네를 탐험하는 산책기이다.
당시 구로구는 새로운 이미지를 브랜딩하는 과정에 있었던 것 같다. ‘구로동’이라는 명칭이 외부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니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꿔 변화를 꾀하려는 듯 보였다. 이러한 동명 변경을 추진하기에 앞서 구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이 설문 조사의 취지였다. (중략)
하지만 이 설문 조사의 어이없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설문 조사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동네의 명칭이 우리를 더욱 기막히게 했다. 모든 선택지가 다 기억나진 않지만, 가장 충격적인 명칭은 ‘디지털동’과 ‘벤처동’이었다. 그냥 이렇게 들으면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도 없었다.
개찰구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광경은 초록빛 그 자체였다. 3월의 봄날이 가진 생명력이나 행사장을 가득 메운 어린이들의 생기를 비유하는 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초록의 물결이 신도림역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략)
비록 자연의 초록은 아니었지만 무색무취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빌딩 숲 한복판에서 이토록 초록으로 가득한 모습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찾은 축제에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되니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초록빛을 보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건 자연의 경치 앞에서나 그러는 건 줄 알았는데, 그날 신도림역을 물들인 초록빛은 나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공사 중인 구로구청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의 부모님은 20대 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그 이름도 유명한 ‘86세대’다. 특히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종종 구로구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곳에서 얼마나 큰 사건이 일어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키며 투쟁했는지 설명해 주셨다. ‘그 사건’은 바로 1987년 12월에 벌어졌던 ‘구로구청 점거 농성 사건’이다. (중략)
엄마가 구로구청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 시대를 기억하는 당신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가 구로동에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라며 웃어넘기는 엄마의 말은 독재 정권과 민주화 운동이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그날의 현장이 우뚝 서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린 민주주의처럼 민주화의 흔적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주변의 청년 노동자들 중 손목이나 척추 통증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한 데다가, 회사에 취직한 이후에는 그야말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로 작업하다 보니 손목이 성할 리 없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현대 직장인의 고질병’으로 웃어넘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는 아직 젊은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냐고 묻기도 하고, 엄살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단지에 들어선 병원들을 둘러보면 다른 지역보다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한의원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40년 전 노동자들이 재봉틀과 폐병에 시달렸다면,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키보드와 디스크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초록색 지선 버스 중 하나인 6411번 버스는 구로동에서 출발해 대방과 노량진을 거쳐 반포와 강남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구로동에서 운행을 시작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임대료를 자랑하는 강남에서 끝난다. 시내버스 기점과 종점 간 집값 격차를 비교하는 지표가 있다면, 제일 상위 그룹에 이름을 올릴 만한 노선이 아닐까 싶다. (중략)
인간이 갈 수 있는 모든 공간은 누군가의 일터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6411번 버스마저도 버스 기사에겐 일터인 것처럼. 내 곁에 노동자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가 있는 곳 어디든, 인지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노동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노동일 수도, 아니면 이름 없는 누군가의 노동일 수도 있는 흔적이 말이다.
오늘도 나는 마라탕집에 간다. 바구니에 다양한 재료를 원하는 만큼 담아 계산대로 가져가면 직원이 조금 어색하고 어눌한 한국말로 ‘몇 단계예요?’라고 간결하게 묻는다. 이 가게는 나의 한 끼를 책임지는 곳이자 어느 이민자의 삶의 터전임이 새삼 느껴진다. 누군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마라탕이 얼얼한 이유는 그런 삶의 무게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일반적인 음식의 유행이 그러하듯, 마라탕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힙한 동네’에서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구로동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 마당에 원조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마라탕 얼리어답터로서 마라탕 열풍의 본고장에 있다는 뿌듯함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여느 때처럼 헌혈 중이었는데 헌혈실 밖 로비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싸움이나 언쟁 같지는 않았고 누군가 억울한 듯 애원하는 목소리가 났다. 중국어라 정확한 상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헌혈자와 직원 간의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헌혈실 안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중략)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 땅에서 헌혈을 결심하도록 만들었을까? 물론 동료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이 이타적 행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국에서 헌혈처럼 두려움이 따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외국살이를 하면 고향에서보다 몸을 사리기 마련인데, 자국에서도 결심하기 쉽지 않은 헌혈을 타국에서 실천하기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를 헌혈의 집으로 발걸음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살고 있는 구로동은 21세기의 서울에 위치해 있다. 지금까지의 삶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내게 구로동은 언제나 21세기의 중심부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구로동을 둘러싼 이미지 대부분은 20세기적인 변방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아마도 20세기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구로공단 이미지가 상당히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엄연한 구로동의 정체성이다. 이런 점에서 구로동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교차로처럼 느껴진다.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던 사람들이 교차로라는 기점에서 마주치듯 20세기와 21세기, 그리고 중심과 변방이라는 복합적인 시공간은 구로동에서 만난다. 그렇게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축적된 미묘한 시공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