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허위 없는 지식인, 두려움 없는 저널리스트,
20세기 영문학이 낳은 가장 명철한 작가 조지 오웰!
15년간 꾸준히 사랑받은 초판에 국내 초역 2편 추가
가장 빼어난 에세이 31편을 새로운 장정에 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2010년 출간 이후 가장 폭넓게 사랑받았던 『나는 왜 쓰는가』가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의 삶과 사유의 정수가 담긴 에세이 29편을 묶었던 초판에 국내 초역 2편(「브레이 주임신부를 위한 한마디」, 「작가의 수입」)을 더했다. 오웰은 대표작인 소설 『동물농장』과 『1984』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랜 세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려가며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와 칼럼, 서평을 썼다. 『나는 왜 쓰는가』는 삶의 각 국면, 정치적 입장, 현실을 마주하는 작가로서의 태도 등 인간 오웰을 면밀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할 때 선택해야 할 책으로 그의 대표작 두 권에 못지않게 깊고 꾸준한 호응을 얻어왔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선언하는 데 일말의 거리낌 없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의 모든 자전적 스토리가 밀도 높게 담겨 있다. 열 살 전후 무렵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예비기숙학교에 장학생 신분으로 입학했지만 심각한 차별을 경험했고,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했으나 대학생 대신 피식민지 버마의 경찰간부가 되었으며, 죄책감에 짓눌린 채 유럽에 돌아와서는 런던과 파리를 떠돌며 부랑자 생활을 하는 등 전 생애에 걸쳐 항상 조금씩 비켜나 남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감행했던 오웰의 모든 전환적 순간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_「나는 왜 쓰는가」 중
남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남과 다른 눈을 얻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이해자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이 맨 처음 발표한 글인 부랑생활 체험기 「스파이크」부터 마지막 집필 원고인 「간디에 대한 소견」까지 글을 쓴 순서대로 엮었다. 옮긴이 이한중이 “자신의 이력을 통해 패턴과 인습을 거부한 작가”라고 표현했듯이 오웰은 삶의 중요한 국면마다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길을 감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된다. 그의 글은 책상 앞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이 직접 세상을 통과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타고난 영민함에 대비되는 밑바닥 삶, 극한의 전쟁 체험 등은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안겨주었다. 이 선집에 묶인 적잖은 에세이들이 자전적 요소를 띠고 있는데,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겪어내며 인간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사건, 오웰 스스로 삶의 전환적 순간이라 했던 사건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을 혹독하게 차별한 예비학교 교장 부부를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인정과 총애를 간절히 원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정말, 정말 좋았지」)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식민지 경찰간부 생활(「교수형」, 「코끼리를 쏘다」)에서 민족·인종 사이에 놓인 위계와 그걸 공고히 하는 제도의 폐해를 절감했다. 계급을 막론하고 젠체하기와 위선, 허영과 속물근성은 인간이 벗어던질 수 없는 숙명(「영국, 당신의 영국」, 「민족주의 비망록」, 「정치와 영어」 등)임을 알아갔다. 그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에 좌절하거나 환멸을 느끼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함으로써 작품의 인물 속에 그러한 인간 군상을 표현해냈다.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로 살았음에도 좌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인간과 세상이 결코 평면적이거나 단순하지 않음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오웰이 활동하던 당시 적잖은 좌파들은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거나 “진실이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오웰은 이를 두고 보지 못했다.
“부자고, 힘세고, 세련되고, 스타일 좋고, 영향력 있는 아이들이 어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그들의 세계였고, 그들이 만든 규칙은 옳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나 자신이 그런 식의 현실에 ‘자발적’으로는 도저히 순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깨어 있는 듯한 내면의 자아가 있어 도덕적 의무와 심리적 ‘실상’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_「정말, 정말 좋았지」 중
가장 암울한 글에도 숨어 있는 아름다움의 순간들
철저한 현실성과 예술적인 서정성의 결합
이번 개정증보판에 추천사를 보낸 시인 진은영은 조지 오웰의 글을 가리켜 “아름다우면서도 철저히 현실적인 글”이라며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기도 한” 그런 재능은 몹시 드물다고 말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오웰은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는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향한 이 똑부러진 일침은, 결코 정치적 신념에 복무하는 문학 작품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글에서 그는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선언한다.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서 있으며,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피억압자의 정서를 글로 표현했다. 한때 파시즘에 맞선 스페인 혁명에 도움이 되고자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예술, 즉 글과 문학이었다.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나치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 자본주의)에 반대한 그는 혁명가로서 싸운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폐해를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전체주의에 맞섰다. 그리고 75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 세계 독자들은 오웰이 그린 ‘문학적’ 세계 안에서, 오웰이 던진 성찰의 ‘현실성’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를 꾸준히 불러내고 있다. 리베카 솔닛을 통해 잘 알려졌듯 오웰은 장미와 정원 가꾸기를 사랑했던, 사회의 부정성을 고발하는 것 못지않게 지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놓지 않는 작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도 오웰은 「“물속의 달”」을 통해 ‘완벽한’ 흑생맥주를 위한 이상적인 펍을 시시콜콜 상상해보기도 하고, 「두꺼비 단상」에서는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사슬에 묶여 우리 모두 신음하고 있는데, 아니면 아무튼 신음하고 있어야 하는데, 찌르레기 지저귀는 소리 때문에, 10월의 잎 노랗게 물든 느릅나무 때문에 더 살 만할 때가 제법 있다고 말한다면, 그게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반문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개정증보판에서 초역된 「브레이 주임신부를 위한 한마디」는 리베카 솔닛의 저서 『오웰의 장미』의 계기가 되었던 글이기도 하다.
“사적으로 숲 되살리기 사업을 벌임으로써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무를 전부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반사회적 행위 하나를 범할 때마다 일기장에 적어두었다가 적절한 철에 도토리 한 알을 땅에 묻는 것은 나쁜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스무 알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자란다면, 우리가 생전에 상당한 해악을 끼친다 하더라도 브레이 주임신부처럼 결국엔 공공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남을지도 모른다.” _「브레이 주임신부를 위한 한마디」
추천사
내가 사랑하는 작가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의 열혈 독자였다. 나는 솔닛을 따라 오웰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가장 암울한 글에도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있다. 그의 가장 서정적인 에세이들이 현실의 문제들과 씨름하는 것처럼.” 솔닛이 『오웰의 장미』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정확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철저히 현실적인 글들이라니, 그런 글을 쓰는 재능은 몹시 드물다. 오웰은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기도 한 재능을 가지고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에세이, 소설, 르포르타주, 이 모든 장르에서!
- 진은영(시인)
본문 중에서
나는 구빈원 부엌에서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 얘기를 해주고 내 생각이 어떤지를 말해주었다. 내 말에 그는 당장 어조가 바뀌었다. 나는 내가 모든 영국 노동자 속에 잠들어 있는 주인 근성을 자극한 걸 알았다. 비록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굶주려온 처지이지만, 그는 음식을 부랑자에게 주지 않고 버려야 하는 이유를 바로 알았던 것이다. 그는 제법 엄하게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그렇게 해야만 되는 거요.” 그가 말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여기 이 부랑자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려고 안 하지. 다들 그래서 저 꼴이 된 거라니까. 그런 사람들 격려해줄 것 없어요. 다 쓰레기니까.”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딱히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을 거의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거창한 얘기를 아무리 해도 그들에겐 시대착오적이고 겉도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명백한 편집증 환자를 대할 때면 그가 요구하는 책을 따로 빼놓았다가 그가 나가자마자 서가에 다시 꽂곤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들 중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고 책을 가져가려 한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주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 정말 돈을 쓰고 있다는 환상을 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어떠한 사건도 신문에 정확히 보도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었는데, 그러다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신문이 사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을 보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거짓말에서 은연중에 내비치기 마련인 최소한의 관련성조차 없는 보도였다.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전투가 있었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았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완전히 침묵하는 것도 보았다. 용감하게 싸운 부대원들을 비겁자나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것도 보았고, 총성 한번 못 들어본 이들을 상상의 승리를 거둔 영웅으로 마구 치켜세우는 것도 보았다. 또한 런던의 신문들이 그런 거짓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보았고, 열성적인 지식인들이 일어난 적도 없는 사건에다 감정적으로 살을 붙이는 것도 보았다.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 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성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는(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성을 뜻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애국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두 단어 모두 대개 아주 모호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의든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 그에 비해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욕구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민족주의자의 변치 않는 목적은 더 많은 세력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서 섬기기로 한 나라 또는 다른 어떤 집단을 위한 일이다.
우리 마음의 일부는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장학반 아이들은 성탄절 거위구이 뱃속 채워지듯 학습으로 꽉꽉 채워져야 했다. 그리고 그 학습이란! 재능 있는 소년의 진로를 불과 열두세 살에 치르는 경쟁 치열한 시험에 좌우되도록 하는 일이란 잘 봐줘도 고약한 짓인데, 성적표에 기재된 과목과 과정을 전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이튼이나 윈체스터 같은 곳에 장학생을 보내는 예비학교들이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자연사에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머쓱해질 만큼 멸시하는 분위기였다)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어둔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그리고 비위에 거슬리지만 해야 하는 어떤 일을 기꺼이 한다고 해서 그런 일에 따르기 마련인 신념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