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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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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0원
출간 정보
  • 2025.07.23 전자책 출간
  • 2025.04.25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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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20.4만 자
  • 12.7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72133030
ECN
-
주름

작품 정보

평생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시간의 주름’이었다.

소설가 박범신이 199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의 집》을 두 번에 걸쳐 전면 개작하여 《주름》이란 제목으로 재출간했다. 이 소설은 50대 남자의 파멸과 또 다른 생성을 그린 작품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의 주름에 관한 치열한 기록인 동시에 극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과감하고 아름답고 비루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을 그린 이 책은, 2600매였던 분량을 줄여서 2006년에 한 번 나왔고, 16년 만인 2015년에 결정적인 장면의 서술을 일부 바꾸고 원고를 다시 줄여서 《주름》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했다. 이처럼 작가가 한 작품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일은 처음이다. 깎아내고 깎아내어 마침내 단 한 줄로 삶의 유한성이 주는 주름의 실체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아마 작가는 작가로 성숙했다는 느낌을 가질 것 같다고 하였다.
한국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소설이면서, 오랜 옛꿈을 다시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한 가장의 이야기 《주름》. 평생 자신이 손으로 잡고 싶은 건 바람이었고, 평생 자신이 알고 싶었던 건 ‘시간의 주름’이었다고. 글쓰기는 핑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며, 바람을 잡지 못하고 시간의 주름을 알지 못하니 한사코 글쓰기의 길을 우겨온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다.

소설 《주름》을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로만 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하는지 진술했고, 그것에 속절없이 훼손당하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반역하다 처형된 한 존재의 역동적인 내면 풍경을 가차 없이 기록했다고 여긴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단두대를 준비해두고 있다. 그렇다. 평생 내가 잡고 싶고, 알고 싶었던 것은 바람이었고, 그리고 ‘시간의 주름’이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줄거리

소설은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회사 자금담당 이사인 50대 중반의 주인공 김진영은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을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 천예린은 김진영보다 연상일 뿐 아니라 매혹적이면서도 팜므파탈적인 여자. 김진영은 천예린에게 깊이 빠져들고 그녀를 만나고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헛것이었다며, 간직해온 옛꿈을 다시 꾼다. 그리고 삶에 대한 반란과 함께 서서히 스스로에 대한 삶의 정체성을 깨닫고 방황한다. 결국 김진영은 일상을 버리고, 자신을 떠난 천예린을 쫓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성과 사랑, 죽음과 자아에 관한 깨달음을 좇아 유랑을 감행하는데…….


■ 추천사
나는 이토록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과감하고 아름답고 비루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만약 사랑에도 ‘극한’이란 것이 있다면, 《주름》의 문장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름》은 극한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기형적인 모더니티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주름》은 한 가장이, 한국적 모더니티가 앗아간 자신의 오랜 꿈 하나를 다시 회수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며, ‘시간의 주름’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라 할 만하다. 《주름》을 읽는다는 것은, 수천 수만 년을 읽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겠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독자 입장에서 《주름》은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충격이 될것이다. _김형중(문학평론가)



■ 책 속으로
그러나 삶이란 끝이 없다. 삶이 계속되는 한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뒷덜미를 사정없이 잡아채어 수렁 속으로 내던지고 마는, 악마의 손길 같은 삶의 어두운 변수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왜 그때는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평생 동안 배운 대로, 혹은 윗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융통성 하나 없이, 오로지 근면 성실하게, 조심조심 살아온 내 삶의 보편적 관성으로 보건대, 내가 장년의 연대에 만났던 의미심장하고 잔인하고 재빠른 변화는 나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나는 그때, 뭔가에 씌어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둘러치고 살았던 나의 방어벽을 자청하다시피 허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확실히 예감하진 못했으나, 그때 이미 나는 내 앞에 은밀히 놓인 덫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삶이란 때로 그렇다, 평온하고 안정된 삶일수록 은밀히 매설된 덫을 그 누구든 한순간 밟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생의 심연이 지닌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일는지도 모르겠다. 생이라고 이름 붙인 여정에서 길은 그러므로 두 가지다. 멸망하거나 지속적으로 권태롭거나.

어떤 이는 숙명이라고 부른다. 그 당장엔 우연처럼 일어나 우리들을 끝없이 번민시키고 또 분열하게 하는 것, 그렇지만 종국엔 아퀴가 딱 맞춰진 듯 옴짝달싹할 수도 없게, 우리가 거기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고 느껴지도록 하는 것, 합리주의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나 이렇게 저렇게 오감 열고 느끼면 제 몫몫, 원인과 결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짝을 채워 제자리 찾아 앉는 것, 인생을 나는 보다 모던한 말로 예비된 프로그램이라 부르고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두 갈림길에 놓이게 마련이라고 어떤 시인은 읊었거니와, 그것이 두 갈림길이 아니라 세 갈림길, 또는 열 갈림길, 백 갈림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의 초입에서 느끼는 혼란과 분열일 뿐, 결국 그 길을 다 통과해 지나오고 나서 돌아보면, 그렇고 말고, 그 모든 길은 다만 하나로 이어진 어떤 불가항력적 프로그램 속에 입력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이름의 미로 게임이다.

무엇이 남는 게 있어 죽이고, 또 떠날 것인가. 그녀가 죽음에의 북진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난 다음 내가 서늘하게 확인한 것 중 하나는, 누구든 생의 중심이라 할, 죽음에의 북진을 언제나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떠났지만 나는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떠나온 것만 다를 뿐이었다. 오래된 와이셔츠의 단추가 올이 풀려 늘어져 나오듯, 청춘, 혹은 신생의 젊은 땅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조차, 시간은 돌이킬 수 없이 사멸의 북행길로 우리를 몰고 와 마침내 북극해 밑 5000여 미터, 절대 고독의 그 심연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만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대열에서 한 번도 이탈하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랬었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일상적 삶에 따르는 달콤한 부식을 거부하고, 그 반역으로 얻어내는 긴장감이 우리를 진실로 살아 있게 만든다고 한다면 그녀의 말은 옳았다. 그래요. 나는 대답했다. 어딜 가든, 또 언제든지, 어쩌면 죽은 뒤라도 오크니를 잊지는 못할 거예요.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여로의 끝에서 비로소 얻었던 내 실존적인 자유를.

당신, 떠나는 게 좋을 거야. 그녀가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당신한테 미안한 것은, 당신을 사랑했다……라고, 끝까지 말할 수 없다는 거야. 당신을 사랑한 적은 없었어. 사실이야. 당신처럼 나를 대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어. 당신은 대단한 사랑을 가졌어. 그래서 더 떠나라는 거야.

당신이 유랑의 끝에서 뭘 얻는지 보고 싶어. 선생님은 뭘 얻었는데요? 아직. 유랑이 끝나지 않았어. 아니, 유랑이 아니라 반역이야. 당신을 살아서 또 만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순종하진 않을 거야, 죽음에게. 설령 신이 있다고 해도 그래. 무릎 꿇지 않고, 차라리 비참하게 죽고 싶어. 그게 나하고 당신하고 다른 점이 될 거라고 봐. 당신은, 나보다 자유로워졌는걸. 나보다 앞서 가, 저만큼. 좋아 보여.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이 어떤 형상의 집 속에 갇혀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집은 지금도 침묵의 은유로서 우리에게 별빛 같은 예시를 보내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 별빛 같은 예시를 좇아 깊고 고요한 생의 우물 밑을 들여다보기엔 아직 나는 너무 젊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노트에 남긴 글의 마지막 부분을 여기 옮겨놓고 이 이야기에서 떠나려고 한다. 천예린의 최후 모습과 캄차카에 있을 때의 아버지 심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다운 피리어드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생애를 통해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아버지가 그리워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의 심연까지, 생의 끝까지, 자유의 중심까지, 나 또한 계속 걸어가보려 한다.

작가 소개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소금》, 《소소한 풍경》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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