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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상세페이지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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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0원
출간 정보
  • 2025.10.16 전자책 출간
  • 2025.09.15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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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13.8만 자
  • 13.2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72133306
UCI
-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작품 정보

■ 책 소개

우리 검찰만 이렇게 문제인가?
과연 다른 나라 검찰은 어떨까?

세계 검찰이 걸어온 길은 우리 검찰이 걸어갈 길이다
교양으로 읽는 글로벌 검찰 상식과 개혁 쟁점들

검사는 전시의 군대를 제외하곤 이 나라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입니다. 검사는 다른 어떤 집단과 견줘도 시민의 생명·자유·평판을 좌우할 더 큰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 이런 권한을 올바로 행사할 때 검사는 우리 사회에 가장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의 하나이겠지만, 만약 악의나 비도덕적 동기로 행동한다면 가장 악한 집단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1940년 4월 1일, 미국 연방 법무부 장관 로버트 잭슨이 연방 검사 회의에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정의의 구현자도, 파괴자도 될 수 있는 검찰의 양면성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검찰의 부상과 몰락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극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나라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잔혹극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 검찰만 이렇게 문제인가? 다른 나라 검찰은 어떤가?’
《한겨레》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박용현 저자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오랜 고민과 탐구의 결과를 독자들에게 보다 쉽고 편하게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세계 각국 검찰의 역사와 특징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하고 그들이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시스템을 발전·개혁시켜 왔는지 폭넓게 살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검찰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색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세계 각국의 검찰은 우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예심 판사, 미국의 검사 선거 제도와 다수 검찰총장제, 영국의 기소청과 독일의 객관 의무 등을 통해 글로벌 검찰의 역사와 특징을 알아본다. 2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검찰 공화국의 흑역사’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12·3 내란 사태 이후 불거진 검사동일체, 법 기술, 절차적 정의, 정치적 기소, 불체포 특권 등의 이슈를 짚고 우리 검찰의 무분별한 검찰권 남용과 부끄러운 정치 검찰의 민낯을 확인한다. 3부 ‘글로벌 사례에서 발견한 검찰 개혁 쟁점들’에서는 미국의 진보적 검사 운동과 대배심 제도, 일본의 검찰심사회와 독일의 법왜곡죄, 각국의 영장 청구 제도와 검사 징계 장치 등 검찰 제도에 대한 각국의 감시·견제·응징·개혁 수단을 살펴본다.
각 나라가 고유의 검찰 제도를 형성해 온 과정은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가 검찰이라는 문제와 씨름하며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 질문은 우리보다 앞서 검찰 제도를 만들고 발전시켜 온 나라들이 멀게는 200년 전부터 숙고했고 어떤 것은 지금도 논의 중인 주제들이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검찰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힘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검찰 제도에서 벗어나 검찰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제도적 상상력을 키워야 할 때다. 외국 검찰의 역사와 경험을 살피는 일은 이 상상력의 밑거름이 된다. 검찰에 대한 상식이 필수 교양이 된 시대, 새로운 형사 사법 체계가 형성되고 제자리를 잡아 가는 여정에 이 책은 탁월한 ‘검찰 교양서’이자 ‘개혁 참고서’가 될 것이다.


세계 검찰의 역사와 특징으로 제도적 상상력을 넓히다

검찰 제도는 나라마다 역사적 경험과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며 때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설계도가 끊임없이 수정되기도 했다. 각국 검찰 제도의 기원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검찰을 어떻게 구성하고 검찰에 어떤 권한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이며, 검찰은 국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현대적인 검찰 제도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왕을 법적으로 대리하는 직책인 ‘왕의 대관’이 범죄에 대해 소추했다. 하지만 혁명기에 ‘소추는 인민의 이름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1808년 치죄법을 통해 형사 소송과 검찰 제도의 원형이 정립되었다. 또한 현재 프랑스는 예심 판사와 다수의 검찰총장(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두는 등의 장치를 통해 권한 집중을 막고 있다. 독일은 19세기까지 소추와 재판을 모두 법원이 관장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 검찰 제도가 수입되면서 소추와 재판이 분리되었다. 또한 독일은 검사가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객관 의무’의 발상지다. 그래서 독일 검사는 피고인의 혐의 사실뿐 아니라 무죄 사유나 유리한 증거도 적극적으로 조사·수집해야 한다.
건국 초기의 미국에서 검사는 법원 소속의 하급 공무원이자 판사의 보조자 역할에 그쳤고, 법 위반자를 체포하고 기소하는 것은 보안관의 임무였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미국 사회 전반에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검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검사 선거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렇게 시민의 선택을 받은 검사의 역할과 권한은 점점 강력해졌고 이제는 시민 위에 군림하는 폐해를 낳게 되었다. 반면 영국에는 1986년 전까지 검찰 제도 자체가 없었고,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해 왔다. 하지만 1972년 발생한 한 살인사건과 그로 인한 세 소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켜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형사 사법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에 1986년에 ‘기소청’이, 2000년에는 ‘기소감찰청’이 각각 창설되어 권한의 오남용을 막을 겹겹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일본은 1872년 프랑스의 근대적 형사 사법 체계를 도입했으나 이후 독일 형사 사법 체계의 영향을 받아 검찰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재정했다.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구인·구류하고 압수수색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수사 구조 형성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식민 지배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러한 검찰 중심 체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해방 뒤 폭압적이었던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속에서 폭력적 공권력의 핵심이던 군과 정보기관이 위축되자 이때 생긴 공백을 검찰이 차지했다. 현재까지 우리 검찰 제도에는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과거 독재 권력이나 검찰 자체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것일 뿐이었다. 검찰 제도의 형성과 변화에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가 적극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검찰은 민주적 통제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 되고 말았다. 검찰이 타락할 위험성은 제도에 내재한 것이며 이는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될 수 있음을 우리는 ‘윤석열의 검찰 공화국’을 통해 여실히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과연 다른 나라들은 검찰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제도와 장치를 두고 있을까?


검찰권 오남용을 막기 위해 각국은 어떤 시스템을 마련했을까?

검찰의 폐해를 막으려면 비대한 권한을 분산시키고 부당한 권한 행사가 응징될 수 있도록 제도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검찰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민주적 자치 이념이 구현된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가 미국의 검사 선거 제도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검사를 선거와 소환 투표를 통해 직접 심판하거나 재신임할 수 있는데 미국 내에서 45개 주가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검사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수사·기소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검사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권한이다. 프랑스의 예심 판사 제도는 이 위험을 방지할 견제 장치다. 예심 판사는 법원에 속해 있으면서도 재판에는 관여하지 않고 수사를 임무로 하는데, 우리나라 검찰처럼 수사·기소권을 온전히 한 손에 쥐고 있지 않다. 수사와 기소를 하나의 기관이 주도하면 ‘표적 수사, 표적 기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검찰과 예심 판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눠 갖고 이중삼중의 제약과 감시 속에 그 권한을 행사한다.
검찰의 황당한 기소·불기소 처분은 국민을 분통 터지게 만든다.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국민 눈높이’가 기소 여부 결정에 ‘실제로’ 관철되도록 하는 제도다. 대배심 제도는 검사가 범죄 혐의자를 기소하려 할 때 일반 시민들이 그 타당성을 직접 조사해 결정할 수 있다. 대배심은 검사의 요청으로 법원이 소집하는데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시민 12~23명으로 구성되며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소 또는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다. 대배심 제도는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기관으로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완충제 및 심판 역할’을 한다. 일반 시민인 배심원은 정치적 압력이나 인사상 유불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법관이나 여타 결정권자들보다 더 공정할 수 있다.
이런 대배심 제도에 맹점이 하나 있으니 검사가 부당하게 ‘불기소’한 사건은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검사가 불기소한 사건을 재심사해 기소할 수 있는 제도다. 검찰심사회는 165곳의 지방 법원·지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6개월마다 해당 지역 유권자 중 무작위로 11명을 선정해 구성한다. 검찰심사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었으나 제도 시행 50년 만인 2009년에 제도 개혁으로 기소를 강제하는 효력을 얻었다. 덕분에 공직자나 정치인 등의 기소에 소극적인 검찰을 더욱 강력하게 감시·견제할 수 있다.
형사 사법이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하는 건 명백한 민주주의 원칙이다. 검찰이 이 원칙을 따르지 않을 때 국민은 말로만 원칙을 요구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현실적으로 주권자 참여 제도가 없다. 검찰의 ‘부당한 기소’를 견제할 주체는 사법부, ‘부당한 불기소’를 견제할 주체는 국회밖에 없다. 선출되지 않은 막강 권력인 검찰이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검찰이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면 주권자 국민의 의지로 검찰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검찰 개혁이다.


글로벌 사례를 통해 알아보는 검찰 개혁의 쟁점들

앞에서 소개한 미국의 검사 선거 제도에도 취약점은 있다. 검사를 선거로 뽑기만 하면 시민의 뜻을 잘 받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거를 의식해 큰 사건에만 집중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는 등 부작용이 생겼다. 또 소수 집단을 불평등하게 대우하거나 범죄 예방·교화보다는 강경 처벌에 치중했다. 게다가 선거 경쟁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 현직 검사의 재선이 두드러졌다. 결국 선출된 검사도 권한 오남용을 일삼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미국판 검찰 개혁 운동인 ‘진보적 검사 운동’이다. 2015년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시민단체와 손잡고 개혁 성향의 검사 후보들을 지원했는데, 그 결과 2023년 12월 기준으로 13개 선거구에서 진보적 검사가 선출되었다. 또 백인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검사직에 유색인종 여성이 다수 진출한 것도 큰 성과다.
이처럼 선거로 뽑은 공직자라고 해서 모두 민주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 소통·교감하지 않고 마음대로 권한을 휘두르면 민주주의를 찌르는 칼이 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막강한 권한과 재량권을 가진 대한민국 검찰은 어떤가? 국민의 선출을 통한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않고,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 아무리 권한을 오남용하는 검사도 국민이 교체할 방법이 없다. 검찰의 독재화를 막으려면 검찰권 행사에 민의를 반영할 제도적 장치와 함께, 부당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확실한 응징 수단이 필요하다. 국내 검사 징계 제도는 징계가 검찰 자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검사징계법 개정안이 2025년 6월 5일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변화의 물꼬가 터졌다.
해외에서는 이보다 훨씬 치밀하고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는 검찰권 남용 검사에 대한 징계를 법원이 관장할 뿐 아니라 법무부 안에 감찰관실과 법조윤리실이라는 독립 기관을 두어 이중의 감시를 한다. 영국은 검찰 자체적으로 엄격한 징계 제도를 두는 한편 검찰의 감시를 주된 임무로 하는 기소감찰청을 따로 두었다. 프랑스에서는 헌법 기관인 최고사법관회의가 검사 징계를 담당하는데,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일반인도 검사 징계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검찰청에는 검사의 비위를 감시하는 감찰부가 있지만 실효적이지 않다. 그래서 현실적인 검사 징계 제도는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관여하는 탄핵 제도뿐이다.
부당한 기소·불기소 검사를 징계·탄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 2018년 독일 연방 대법원은 증거가 충분한데도 불기소를 한 프라이부르크 검찰청 소속 검사에 대해 법왜곡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독일은 형법 제339조에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으며, 스페인·노르웨이 등도 공무원의 법 왜곡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또 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 등은 직권남용죄를 통해 법을 왜곡한 법관을 처벌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권남용·직무유기죄로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어 꾸준히 법왜곡죄 신설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나라의 검찰 제도도 완벽한 ‘모범’은 아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따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스며 있는 원칙과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이를 우리 현실에 접목한다면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우리만의 제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검찰 제도에서 개선할 점을 찾고,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검찰 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새로운 검찰 제도의 설계자는 우리 모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책 속에서

‘좋은 검사’가 되라는 권유만으로 검찰에 내재한 위험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의 비대한 권한을 분산시키고 부당한 권한 행사가 응징될 수 있도록 제도적 구조를 갖추는 것만이 방법입니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 ‘좋은 검사’가 될 수 있고, 설령 ‘나쁜 사람’일지라도 ‘좋은 검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검찰은 애초 불공정하고 정치적이며 부패하기 쉽고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최악의 검찰조차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 제도를 설계해야 합니다. 영미법계 나라에서 기소 여부를 시민들이 결정하는 대배심 제도를 고안한 이유도 기소권자가 정치적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괴롭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여 많은 예심 판사의 롤 모델이 됐던 르노 반 륌베크 예심 판사가 2024년 5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70년대 보수 정권인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 시절에 총리 물망에 오르던 노동부 장관의 부패 혐의를 밝혀냈습니다. 우파 진영으로부터 ‘빨갱이 판사’라는 공격을 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반면 199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당시에는 집권 사회당의 비리를 수사해 좌파 진영의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언론들은 장문의 부음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근엄한 외양과 달리 쾌활한 성격이었던 그는 방 한 켠에 ‘럭키 루크(프랑스 만화 주인공)’ 캐릭터 포스터를 붙이고 이런 캡션을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나는 불쌍하고 외로운 예심 판사다! 나는 불쌍하고 외로운 예심 판사다!”

세계적으로 최악의 검찰로 평가받는 것은 어느 나라 검찰일까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검찰을 전수조사해 평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으니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유럽평의회 자문 기구인 베니스위원회(Venice Commission)가 여러 보고서를 통해 ‘위험한 검찰’로 지적한 나라가 있습니다. 옛 소련과 러시아의 검찰입니다. 참고로 베니스위원회는 회원국들이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의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을 실현해 나가도록 법률적 자문을 하는 기구로, 공식 명칭은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 등 비유럽 국가까지 61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검찰 제도는 이 위원회가 다루는 주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연방 대법원은 새로운 법 원칙을 세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적법 절차 위반(변호사 없는 취조)이 없었더라도 다른 합법적 수단(경찰 수색팀의 자체 수색)으로 증거(소녀의 주검)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면, 이 증거는 절차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적법 절차 위반을 이유로 증거 사용을 금지한다면 실체적 정의에 너무나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를 ‘불가피한 발견 원칙(inevitable discovery rule)’이라고 부릅니다. 실체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대표적 판결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적법 절차라는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안전망을 만든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와 유사한 논란이 미국에서도 벌어졌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전 4건의 기소를 당했고 이를 정치적인 “마녀사냥”이며 “선거 개입”이라고 비난해 왔습니다. 이 가운데 뉴욕주 맨해튼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004년 5월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까지 나온 상태였습니다. 2016년 대선 후보 당시 트럼프가 과거 성관계를 맺은 포르노 배우에게 입막음용 돈을 지불한 뒤 이 돈을 회사 법률 비용으로 거짓 회계 처리한 혐의입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형량 선고가 여러 차례 연기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뉴욕 법원은 2024년 11월 26일로 예정됐던 선고를 끝내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트럼프의 주장이 법률적 성공을 거둔 모양새입니다. 트럼프 기소를 둘러싸고 논란이 고조되면서 미국 법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검찰권의 ‘정치 무기화’를 경계하고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역사적 맥락과 논리로 불체포 특권이 도입됐습니다. 왕과 의회가 충돌과 타협을 통해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혁명을 거치며 1790년 법령을 통해 ‘의회의 동의 없이 의원을 체포·기소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중략)
이렇듯 불체포 특권은 왕정 국가의 군주든, 공화제 국가의 행정부든 막강한 형벌권을 가진 권력이 국민의 대표인 의원을 함부로 탄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가 방해받지 않고 작동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나라일수록, 공권력의 전횡이 잦은 나라일수록 이 특권의 존재 가치는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검사뿐 아니라 판사도 선거로 뽑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중후반 각 주의 헌법 개정 당시 판사 선거 제도 도입이 주된 쟁점이었고, 검사 선거 제도는 여기에 얹혀 가는 쟁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이후 다수 주에서 임명제로 되돌아갔습니다.
현재 22개 주에서만 판사 선거가 치러집니다. 8개 주는 정당 공천 방식, 13개 주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방식입니다. 미시간주에서는 각 정당이 후보 선정을 위한 경선을 치르되 본선에서는 정당 공천 없이 선거를 치르는 혼합형 선거로 진행됩니다.

외국에는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지 않고 일반 시민도 기소 권한을 갖는 제도가 상당수 존재합니다. 사인 소추(私人訴追) 제도입니다. 미국 일부 주에는 ‘시민 주도형 대배심(citizen-initiated grand jury)’ 제도가 있습니다. 캔자스, 뉴멕시코, 노스다코타, 네브래스카, 네바다, 오클라호마 등 6개 주는 일정 수의 시민들이 특정 사건에 대해 청원을 내면 법원이 대배심을 소집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배심은 해당 사건을 조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외면하는 사건이나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시민들의 주도로 수사·기소하는 길을 마련해 둔 것입니다.
프랑스에도 범죄 피해자나 관련 단체가 직접 예심 판사에게 수사·기소를 요청하는 제도(plainte avec constitution partie civile)가 있습니다. 예심 판사는 이런 요청이 있으면 범죄 혐의가 존재하는지 조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앞서 검사가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제도는 검사가 기소 재량권을 남용하는 데 대한 강력한 견제 장치로 평가됩니다.

법왜곡죄가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판검사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그래서 독일 연방 대법원도 법왜곡죄의 요건을 엄격하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판사(검사)의 결정이 용납할 수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 요건에 더해 ‘사법 기능에 대한 근본적 침해에 해당할 정도로 중하여 사법 기능의 불가침성에 대한 공중의 신뢰가 흔들린 경우’, ‘이 같은 결정이 의식적이며 중대한 방법에 의해 그리고 법의 잣대가 아닌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내려진 경우’라는 두 기준도 충족해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판검사의 행위가 이 정도 기준을 충족하는데도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가 용인된다면 법치 자체가 존재 이유를 잃을 것입니다.

작가 소개

《한겨레》 기자로 법원, 검찰, 국회 등을 취재했고 사회부장, 정치부장 등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현재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노트러데임대학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한 뒤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지은 책으로 《정당한 위반》 《정봉주는 무죄다》(공저), 옮긴 책으로 《인권은 정치적이다》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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