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술에 취한 아빠는 자신에게 자살한 누나가 있음을 고백한다. 이후 사람들을 만나 내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가 있었다고 말하면, 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궁금했다. 왜 가족의 비밀 이야기 속 주인공은 늘 고모나 이모일까?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 ‘양주연’은 고모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아빠를 설득해 인터뷰하며 ‘가족의 비밀’에 관한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깬다. 오래된 가족 앨범을 펼치고, 호적 등본을 살피고, 고모가 다니던 학교에 찾아간다. 고모의 동창,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 딸이자,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말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은 연인인 고모 ‘양지영’을 알게 된다. 이어 고모를 둘러싼 억압과 차별, 규범의 폭력을 돌이키며 고모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한다. ‘고모’라는 렌즈로 가족의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고모가 느낀 감정, 고모가 남긴 질문이 사실은 오래전 ‘주연’ 자신도 느끼고 떠올렸던 것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적인 이야기로 출발한 서사는 고모를 닮은 여성들을 비추며 더 멀리 나아간다.
잊힌 죽음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오랜 금기가 깨지고 비밀이 드러난 자리에는 무엇이 올 수 있을까? 금기, 수치심, 낙인 등 여성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바를 표면화하기 어렵게 하는 여러 기제들을 살피고 “이름 없는 여자”의 “이름”을 다시 새기며, 이 책은 여성을 둘러싼 억압과 차별을 “‘여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하여 ‘여자들의 생을 기억하라’는 초대로 바꾸어 낸다”.
양동 쪽방촌을 다룬 <양동의 그림자>(2013)를 시작으로 비정규직 학내 청소노동자를 조명한 <내일의 노래>(2014), 광주항쟁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억을 다룬 <옥상자국>(2015) 등 사적인 서사와 사회적인 서사를 탁월하게 연결하는 다큐멘터리로 평단의 찬사를 받아 온 양주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인 <양양>은 제11회 부산여성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제21회 EBS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초이스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32회 캐나다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다. 이 책은 영화의 감동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고, 촬영기와 소감, 제작 이후 에피소드 등을 추가해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 책 속에서
화목하고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잊힐 수밖에 없었던 고모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고모를 떠올린다는 것은 결국 고모가 그동안 왜 기억될 수 없었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빠한테…… 사실은 누나가 있었어.”
그 순간 아빠의 고백이 내 귀를 때렸다. 누나라고?
“너에게는 고모지, 고모.”
단 한 번도 예상한 적 없는 전개였다. 고모도 이모도 없이 작은아빠들과 외삼촌들만 있는 나에게 아빠는 지금 고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하지?
아빠에게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처음 들은 그날 밤, 나는 외할머니의 ‘평범해야 한다’는 말을 함께 떠올렸다. 그 말에서 외할머니의 두려움을 느꼈던 것처럼, 아빠의 말에서도 아빠가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내가 그 두려움과 슬픔의 정체를 계속 바라볼 수 있을까? 그게 무엇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고모의 시간들을 찾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 기억되지 않는 존재가 된 고모는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갔을까? 두려움과 슬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모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드디어 가장 아래쪽에 놓여 있던 사진첩을 펼쳤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앨범이었다. 삼등분으로 양쪽 날개가 펴지는 형식의 사진첩이었다. 주황색 표지와 오른쪽 하단에 붙은 미키마우스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사진첩을 넘겼다. 첫 번째 장에서 어른의 글씨는 아닌 것 같은 누군가의 글씨로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 가족들의 이름이 보였다.
“양지영”
낯선 누군가와 카메라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떨리는 일이지만, 잘 아는 친숙한 대상과 카메라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 일정에 앞서 나는 아빠에게 미리 촬영 협조를 구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고모’라는 단어를 전화로 꺼내 놓았다. 몇 년 전 아빠가 처음으로 알려 준 고모에 대해 카메라 앞에서 더 이야기 듣고 싶다고. 아빠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거절도 회피도 아닌 “알겠다”라는 답변이었다.
결혼을 결심했던 엄마의 마음처럼,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다”라는 말이 만들어 내는 고모의 삶에 대한 거칠고 일방적인 평가와 낙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다. 엄마가 먼저 끊어 냈던 고모를 둘러싼 낙인의 시선을 나도 끊어 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궁금했다.
아들과 딸이 마주하는 차별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와 딸의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하는 한자도 의미도 확연히 다르다. 아빠의 이름에는 ‘근원 원’이라는 한자가 들어갔지만, 고모의 이름에는 ‘지초 지’라는 풀 이름의 한자가 들어가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에는 ‘이을 승’이라는 한자가 있고, 할머니의 이름에는 ‘예절 례’라는 한자가 있다.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이름에는 이미 다른 질서와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이름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비석 뒤편의 이름들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그중에는 내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고모 이름은 없었다. 아빠 이름, 작은아빠들 이름, 엄마 이름, 작은엄마들 이름도 모두 있는데 고모 이름은 없었다. 고모는 가족이라는 집합 속에 들어오지 못한 걸까? 자살했다는 이유로? 아니면 일찍 죽었다는 이유로? 가족 모임에서조차 고모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언젠가 아빠는 고모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서울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모가 딸이라는 이유로 서울에 가지 못하게 했다. 큰딸은 집에 남아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하고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말을 들은 고모는 며칠간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시험공부에도 소홀해졌다고 했다. 자신의 방 외에는 갈 곳이 없었을 고모를 떠올렸다.
언제나 착한 딸이 되어야만 했던 시간 속에서 터져 나올 수 없었던 서운함과 답답함이 고모라는 렌즈와 함께 드디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나는 나의 시간을, 가족의 시간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럼, 고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도 있겠네요?”
타살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자, 고모의 친구들이 잠시 멈칫했다. 나 역시도 그 단어를 내뱉고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고모의 무덤은 어디일지 생각해 봤다. 정씨 성의 할머니는 양씨 성의 할아버지 옆에 묻히고, 김씨 성의 외할머니는 최씨 성의 외할아버지 옆에 묻혔다. 1975년 여름, 결혼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고모는 양씨 가족 묘지에 묻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아빠는 화장한 고모의 시신을 광주 근교 어느 강가에 뿌렸다고만 아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 가족들이 고모의 남은 물건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도 말해 주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아빠는 고모의 물건을 보고서 고모가 생각나면 슬프기 때문이었다고 답했지만, 자살한 이의 물건에는 불운이 깃들어 있다는 옛 속설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윤심덕은 노래로라도 기억될 수 있지만, 고모는 남긴 것이 없었다. 문득 〈양양〉이 고모를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처음부터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우연히 이게 용기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지면 그렇게 용기의 내공이 조금씩 쌓여 간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거든요.”
“누군가는 누군가의 말에 의해 또 누군가는 누군가의 말이 되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말이고 누군가는 누군가가 되어가고 누군가는 누군가이고”
아빠가 고모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리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아빠를 슬프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가족의 비밀이 되어 버린 고모의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고모의 입장에서, 고모의 목소리로. 언젠가 고모를 만난다고 했을 때 그때 고모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고모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을지, 저는 요즘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있어요.
고모를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나는 때론 탐험가가 되고, 탐정이 되고, 그리고 조카, 가족이 된다. 아니 어쩌면 아직 나는 이 여정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고모의 이야기가 담긴 상자 옆으로는 여전히 수북하게 쌓인 다른 상자들이, 이름 없이 죽은 여성들이, 비운이라는 고리를 끊어 내지 못한 금기들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도처를 떠도는 그 존재들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시간 속에서 여정은 다시 시작되고 이어진다.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드러나고, 낙인이 찍힌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때 〈양양〉을 통해 내가 꿈꾸었던 세상은 하루하루 넓어질 것이다.
1932년에 태어난 할머니 정삼례는 첫째로 딸인 고모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들인 아빠를 낳을 때까지 죄인처럼 숨죽여 지냈다. 1959년에 태어난 엄마 최혜선은 공부를 잘해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부부 교사였지만, 퇴근 후에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1975년에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은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지워져야 했다. 1988년생인 나는 결혼을 할 때, 아이를 가질까 고민할 때 행복만큼이나 잃게 될 것들을 떠올렸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내 이름을 뺏어가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었다.
나는 언제나 집회에서 큰 목소리로 ‘성평등’을 외칠 수 있었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둘러싼 관계 안에서 그 구호를 일상의 언어로 바꿔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고모의 존재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여정은 외면하고 있던 가족의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잊힐 수밖에 없었던 고모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양지영을 떠올린다. 어떤 존재가 당연한 듯 잊히지 않고, 기억되며 함께 흘러갈 수 있는 가족의 시간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