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본서는 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서양철학의 역사를 다룬 <현대 철학사>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헤겔 사후 형성된 유럽대륙의 현대사상인 ‘독일 유물론’을 시작점으로 하여 제2차 세계대전 즈음까지 사상계를 주도했던 ‘실존주의’까지를 다룬다. 저자가 본서를 집필하는 동안의 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팬데믹(감염병 세계 유행)으로 200만 명 이상의 누적사망자와 9,000만 명 이상의 누적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공포와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마치 본서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어지는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발간한 실존철학적인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흑사병)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혼란 속에 있었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 이처럼 인류가 시대를 막론하고 불안과 공포 속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현대인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많은 질병과 전쟁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문명사회를 열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정신적 혼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과 세계관들이 큰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인류에게는 지혜롭게 사유하는 ‘철학하기’가 매우 중요한 삶의 에너지원(Energy source of life)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학습자들이 ‘철학하기’의 도구가 되는 ‘철학’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사람들이 ‘철학하기’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전 단계인 ‘철학학습’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철학이 과학 분야와 달리 원인과 결과 간의 보편적인 원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막상 철학서를 접했다고 하더라도 철학자가 살아간 시대적 배경을 간과하고 사상 위주로 접하다 보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특정한 현인의 말씀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결국 철학자 역시도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적 환경이나 자신보다 앞선 철학자들의 사상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사상을 정립했다는 맥락적인 요인에 기초하여 저술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 말은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살아간 공통점이 있는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사상적으로 다른 맥락을 이어간 경우에는 그 연결점을 찾아서 학습할 수 있도록 저술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현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최근접하는 중요성이 있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상사에서도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난 측면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적인 연결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러한 현대사의 역동적 특징에 따라 사상사에서도 같은 맥락의 역동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현대 철학사>를 두 권으로 집필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본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된 계몽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선험적인 독일 관념론을 정립한 칸트에 이어서 종합적이고 절대적인 관념론으로 집대성한 헤겔이 사망한 19세기 중반 이후에 전개된 사상적 흐름을 맥락적으로 다루었다. 본서의 제목에서 사용한 키워드를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긍정하기’와 ‘반항하기’라는 두 가지의 정신적 활동인 ‘철학하기(philosophein, 필로소페인)’에 초점을 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현대 철학사>에 해당하는 본서에서 다룬 주요 내용은 전체를 3편으로 구분하고, 총 8장으로 배치하였다. 그 세부적인 구성 체계와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편에서는 <19세기 중반의 유물론과 실증주의>라는 소제목을 두고, 3개 장(제1장, 제2장, 제3장)을 두었다. 세부적으로는 제1장에서 철학사에서 근대를 종식하는 의미가 있는 헤겔 사후에 독일 관념론이 유물론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헤겔좌파 철학자들에 의해서 정립된 유물론 사상을 정의하고, 대표적인 사상가인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 사상을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제2장에서는 같은 헤겔좌파 그룹에 속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을 그의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프랑스 사상가 콩트의 사회학적 실증주의와 영국 사상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적 실증주의를 다루었다.
제2편에서는 <19세기 후반 이후의 생의 철학>이라는 소제목으로 2개 장(제4장, 제5장)을 배치하였다. 세부적으로는 제4장에서 독일의 사상가들인 쇼펜하우어, 딜타이, 지멜의 생의 철학(삶의 철학)을 그들의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독일의 니체와 프랑스의 베르그송의 생철학을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제3편에서는 <20세기 전반의 현상학과 실존주의>라는 소제목으로 3개 장(제6장, 제7장, 제8장)을 배치하였다. 제6장에서는 독일의 후설을 비롯한 셸러와 하르트만의 현상학을 그들의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제7장에서는 덴마크의 키르케고르를 비롯한 독일의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제8장에서는 프랑스의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카프카와 카뮈의 실존주의를 그들의 생애사와 함께 다루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불안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현상학적 실존주의도 종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비에트연방 중심으로 냉전체제에 접어들면서 점차 쇠락하게 된다. 영국 중심의 분석철학과 미국 중심의 실용주의가 헤게모니를 쥐게 된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 내에서는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구조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포스트구조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현대의 또 다른 사상적 흐름은 차후에 발간될 저자의 현대 철학사(Ⅱ)에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저자가 이미 시대별(고대/중세, 근세 전기, 근세 후기, 근대)로 구분하여 발간한 4권의 서양철학사를 연계하여 읽고, 마지막으로 차후에 발간될 현대 철학사(Ⅱ)를 접하게 되면 서양철학사 전체를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최근의 대학 환경에서는 취업이나 자기개발적인 분야의 전공이나 교과목이 주류를 이루고, 철학사를 비롯한 인문학이 부수적 위치로 밀리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발간하는 전체 6권의 시리즈가 지성인으로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쏟아지는 불확실한 정보의 오류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sophia, 소피아)를 갖추기 위해서는 비록 자신의 전공이나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학문이 아니더라도 ‘철학하기’를 사랑(philos, 필로스)하여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나아가서는 세계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모쪼록 이 책을 접하는 독자 여러분은 ‘니체처럼 긍정하고 카뮈처럼 반항하기’라는 ‘철학하기(philosophein, 필로소페인)’를 통하여 지혜(sophia, 소피아)를 사랑(philos, 필로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21년 1월
고 수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