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 글
집집마다 들여다보면 속 썩이는 자식은 꼭 있게 마련이다. 어떤 집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질이나 하는 자식 때문에 속 썩는가 하면, 어떤 집 자식은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부모 속을 썩인다. 또 어떤 집은 착하고 공부 잘해서 평생 부모 속을 안 썩일 줄 알았던 자식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갑자기 가출해 버리는가 하면, 학교 공부는 영 뒷전인 녀석이 이성에만 관심을 두고 엉뚱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속 썩는 집도 있다.
어떤 자식이든지 간에 자식은 부모 애를 태우기 마련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사교성이 없어 탈인 자식이 있는 반면, 친구가 많고 사교성은 좋은데 자기 할 일과 공부를 게을리해서 탈인 자식도 있다. 부모들은 이런 자식을 두고 부모 애만 태우는 애물단지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는 대부분 무턱대고 속만 끓일 뿐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그 실마리를 푸는 데는 생각이 잘 미치지 않는다.
필자의 상담실을 찾는 부모들은 한결같이 “선생님 우리 아이가 갑자기 말썽을 피워서 속상해 죽겠어요.”, “그 애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어떤 집의 경우에 우리 아이는 크게 말썽 피우는 일이 없어서 별문제가 없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지금 당장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일상에서 부모들은 여러 가지 일로 성장기의 자녀들과 부딪치며 속상해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매일 아침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세탁기에 제대로 옷을 넣지 않는 딸, 아침마다 깨워야 일어나는 아들, 과제물정리나 알림장을 챙겨야 하는 일들을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지못해서 하는 아이 등, 이러한 일 때문에 조금씩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데나 옷을 던져놓지 말고 제발 세탁기에 좀 넣어라’, ‘학교 지각할래? 어서 일어나 아침 먹어’, ‘문제집 풀었니?’ 등의 상투적인 말로 훈계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좀 더 강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들의 행태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부모의 ‘자식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모의 잔소리와 처벌이 바로 가르침이요, 부모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있다.
“누군들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아침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다 너희들을 위해서고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 때문이지.”라고 한다. 효과 없는 부모의 훈계는 잔소리로 들릴 뿐이고, 처벌은 분노와 적개심만 불러일으켜서 문제만 더 키울 뿐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일상이 되풀이되면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더 악화되어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마음에 상처만 남게 된다.
이처럼 일상에서 부딪치는 자녀의 나쁜 습관이나 문제가 되는 행동들과 마주칠 때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관심사이다.
두 번째는 가족문제를 다 떠안고 아이들이 힘겹게 ‘희생양’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아차렸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필자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상상을 넘어선 고통이며 아픔이었다. 가출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아이, 예사롭게 말하는 친구의 말에 격분하여 의자를 던지는 아이, 수업을 방해하며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아이, 자해하는 아이 등의 문제들 역시 역기능적인 가족관계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태껏 많은 심리상담이론가가 주장해 왔듯이 자녀의 정신적 건강은 요람에서부터 부모에게 달려있다는 내용이 분명해 보였음에도 부모는 자식의 문제행동만 탓하고 전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모는 “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무기력감을 나타내며 참담해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개인의 문제를 가족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에게 자기 방을 치우는 시간에 책 한자라도 더 보게 해야 부모는 마음이 편하다. 대학은 나와야 반반한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경쟁적인 문화 환경 속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 힘들다고 부모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경쟁구조가 단번에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1등급’이라는 평가가 존재하는 한 학업 스트레스도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환경만 탓하며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넋 놓고 가만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거의 모든 아이가 같은 경쟁 사회에서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정작 아이의 능력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또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심지(心志)를 키워주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는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분노와 무력감이 뒤엉킨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공감하는 심리상담가와의 새로운 관계형성을 통해서 아이들은 점점 스스로를 존중하게 되고 부모를 이해하는 아량을 보였고, 이를 토대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상과 학교생활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경쟁적인 사회가 요구하고 부모가 기대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지켜나가겠다는 용기를 보이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담실에 찾아오는 부모들만 붙들고 씨름한들 개인 빌딩으로 술을 마시고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는 10대들을 막다가 경비원이 폭행당한 사건, 초등학생이 엄마의 차 키를 몰래 훔쳐 운전하다가 역주행으로 여러 차를 들이박은 사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이대로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왜곡된 자식사랑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지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좀 각성하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이 책을 쓰기로 했다.
가정은 정작 따뜻한 격려와 공감은 고갈된 채 질책과 명령만 있다. 아이들이 의무와 요구만을 강요받으며 살아갈 때 아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힘든 길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심리상담가의 한 사람으로서, 또 두 아들을 키웠던 부모로서 간절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에서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심리적 성장 발달을 위한 교육들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다툼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자신을 내세우고, 다른 친구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삶의 공감적 능력을 키워나갈 때 아이들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고, 아니면 공부 외에 자신의 삶 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게 된다. 설혹 명문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삶의 철학이 뚜렷하고 사회적ㆍ경제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이전에 나왔던 ‘집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책을 토대로 해서 이 책의 제목에 따라 내용을 좀 더 보태고 기존의 내용을 수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해결된 부모들의 심리적 상처 속에 숨겨진 부질없는 욕망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다시 수정하고 다듬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자식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나가려면 부모들은 ‘나는 누구인지?’, ‘내가 가진 아픔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식이 자라면 부모의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정작 부모의 불안 때문에 아이가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동시에 자율적인 아이의 행동을 강요한다. 이중구속적인 부모의 태도 속에는 부모 자신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이만 닦달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원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경험했던 재미와 행복감이 저장된 보물의 창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강점이 바로 보물의 창고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진정한 자식사랑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여러분의 얼굴에 반가움의 미소가 깃들기를 바란다.
끝으로 젊은 시절 내 자신의 일과 공부에 빠져 있느라 엄마의 돌봄이 부족했을 것인데, 자신들의 삶에 열중하며 제 몫을 잘해 나가고 있는 두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할머니 곁에서 자겠다며 속옷과 책을 챙겨 들고 1박 하러 오는 손자가 “내가 할머니 존경하고 사랑하는 거 알죠?” 하며 나를 꼭 껴안아 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선사해 주는 손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외국에서 사는 둘째 아들네와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갖은 애교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손녀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모든 아이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러한 자신의 가치를 귀중하게 여기면 자기 나름의 길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고, 부모님들은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을 믿고 기다려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