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
북한을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가깝고도 먼 나라’는 흔히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는 북한에 더 적합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북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더욱이 분단 이후 70년 지난 지금 통일이 점점 멀게만 느껴지는 상황에서 ‘북한학이 과연 쓸모가 있는가’ 반문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학이 과연 통일만을 위한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한 두 명의 저자, 오주연과 이나영은 북한학을 가르치거나 배운 선후배를 찾아가 “북한학은 무엇입니까?” “북한학은 학문이 될 수 있나요?”라고 직설적으로 묻는다. 일선에서 북한학을 이끌어 온 사람들과 북한학을 현장에 활용하는 실무자들, 북한학의 신진연구자들과 북한학과 학부 졸업생들을 만나 북한학의 역할과 과제를 들으며 북한학은 무엇인지 그려본다.
북한학과엔 북한학자가 없다?
북한‘연구’와 북한‘학’의 사이에서
1990년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냉전이 끝나고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여러 국내 대학에서 북한학 학부 과정과 대학원 과정이 생겼다. 자연스레 북한학을 전공하여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이후 북한학도 학문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북한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나영과 오주연은 어느 날, 12명의 사회학자에게 사회학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인터뷰집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를 읽고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도 직접 북한학자 혹은 북한연구자에게 “북한학은 무엇입니까?” 물어보면서 답을 찾기로 한다.
정치학자로서 북한 연구를 시작한 최완규 원장은 엄밀히 따지면 북한학은 북한연구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한다. 북한연구는 학문이라 하기엔 독자적인 연구대상과 관점이 부족하므로 결국 정치학과 사회학 등 다른 분과학문에서 이론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전체 학위 과정을 마친 윤보영 박사는 생긴지 30년이 채 되지 않은 북한학을 아직 학문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여러 학교의 북한학과를 경험한 이관형 사무국장은 ‘북한을 알자’는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한 북한학이 그만의 효용성을 계속 입증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있어야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이라 말한다.
“북한학은 학문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9명의 인터뷰이 모두 북한학이 단일 분과학문으로서의 체계와 이론을 가지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실천으로서의 북한학과 지역학(area studies)의 한 범주로서의 북한학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북한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
북한학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역할
남북이 서로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부르지 못하는 ‘특수한 관계’ 속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적대적 감정을 딛고 북한을 이해해야만 하는 현실은 북한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김현경 소장은 북한 사회가 다른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고정된 곳이 아니라 매순간 변화하는 하나의 생물이라 말한다. 북한을 알기 이전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김현경 소장의 이야기는 북한이 정체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다는 일반의 편견을 벗어나는 방법이 된다. 남북교류현장에서 일하는 엄주현 사무처장도 북한을 단편적으로 보는 일선의 시선을 경계한다. 북한 사람들과 만나며 북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질문을 던지고, 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그의 노력은 북한학이 남북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시사한다.
박순성 교수와 김성경 교수는 어느새 분단이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된 우리 사회를 북한에 대한 무관심이 드러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 문제, 민족 문제, 평화 문제를 고민한다고 하면 별종 취급을 받는 오늘의 현실에서, 북한연구자에게는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유하고 실천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통일이 목표가 아닌 북한학을 상상하다
북한학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그렇다면 분단체제를 극복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과연 ‘통일’이기만 할까? 마지막 장은 북한학과를 졸업한 박영민, 송채린과 인터뷰어들이 북한학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MZ세대인 네 사람은 통일에 대한 민족 당위성의 호소력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민족이 통일이나 국가적 목표에 동원되는 방식에는 저마다 다른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제 북한학계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정부 주도의 통일 논의를 넘어선, 남북관계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공론장은 아닐지 이야기한다.
한편 네 사람이 각각 마주쳐 온 페미니즘과 평화학은 학제 간 연구로 외연을 확장해 온 북한학의 새로운 외연을 보여준다. 실천학문으로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북한학, 페미니즘, 평화학 세 영역이 어떻게 융합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까. 네 사람의 좌담에서 그 방향성을 짐작해본다.
북한이 궁금한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북한연구의 입문서이자 심화서 역할을 하는 <어쩌다가 북한학>
대부분의 북한학과는 2000년대 많은 학과가 통폐합되는 시기에 사라졌고, 학부 과정으로는 유일하게 동국대학교 북한학과만 남았다. 북한학이 설 자리가 갈수록 작아져만 가지만 그럼에도 한반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북한을 알고 싶은 ‘별종’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이 궁금한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현장(북한학계, 언론, 대북 관련 단체, 대학)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을 추천한다. 북한에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는 북한 관련 현장이 어떠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입문서이자, 오랫동안 북한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고민을 던지는 심화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