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정문의 문장들
그날, 헌법은 이렇게 말했다
탄핵 선고의 순간, 대한민국은 멈췄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짧은 문장은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텔레비전 앞에 선 국민들,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던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에서 숨을 죽이던 시민들, 그들은 한 지도자의 운명이 아니라, 이 나라의 법과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문형배 재판관의 낭독은 담담했지만, 문장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해졌다.
광장에서 외쳤던 시민의 목소리, 언론과 사회를 울렸던 질문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던 마음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되어 법정에 울려 퍼졌다. 그 장면은 단순한 판결의 순간이 아니었다. 헌법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종이에 인쇄된 조문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지키는 힘으로서 법이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결정문은 흔히 냉정하고 기술적인 문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 결정문에는 시대가 겪은 혼란과 고통,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사회적 결단,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법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또한 국가권력이 시민을 억압하지 않도록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헌법 제1조의 정신이 바로 이 결정문 속에 구현되어 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문은 이렇게 명시한다.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을 발동한 전제가 되는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상황’을 존재하지 않음에도 허위로 기재하였다.”
이 문장은 단지 위헌적 판단을 넘어서, 통치자의 거짓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한 사건임을 고발하고 있다. 이는 사법이 권력을 향해 “멈추라!”고 말한 가장 명확한 선언이었다. 거짓 위에 서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심판받아야 하며, 이번 결정은 그 기준을 세운 첫 번째 헌법적 선례로 기록되어야 한다. 또한 재판부는 분명히 밝혔다.
“계엄은 대통령의 의지로 언제든 발동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며, 헌법 질서의 최후 수단이자 불가피한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은, 오늘의 결정문이 왜 미래를 위한 교과서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국가긴급권의 남용,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통치권의 폭주, 그리고 이를 견제할 헌법적 원칙의 엄중함! 이 모든 것이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은 그 문장들을 기억하고, 다시 읽고, 되새기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 문장을 기록으로 보존하고, 해설하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책이라는 형식을 택했다. 헌법은 단지 국가권력의 지침서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권리를 지키는 언어다. 이번 결정문은 그 언어가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 증거다. 그렇기에 이 문장을 읽고, 소장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에 가깝다.
2025년 4월 5일, 탄핵 선고 다음날 광화문 거리에는 시민들이 모여 ‘승리의 날’을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며, 다시 한번 주권자가 헌법을 움직였음을 확인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시민들은 거리에서 평화를 지켜내며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역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겨울은 길고도 혹독했다. 매일 같이 광장에 나섰던 이들, 그 자리엔 서지 못했으나 마음으로 함께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이번 결정은 단지 정치적 결과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그 응답은 단지 법적 판단으로 그치지 않았다. ‘정치가 부재한 시대, 헌법이 남긴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시민들이 이 결정을 통해 헌법의 존재를 새롭게 체감했고, 헌법재판소의 문장이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키는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특히 결정문 속 다음 문장은 묵직하지만 날카롭다.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입니다.”
이 문장은 대통령과 국회 모두에게 정치 실종의 책임을 묻는 말이었다.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사법부가 나섰다는 점에서, 이 결정은 우리 모두에게 정치의 회복을 촉구하는 경고이자 요청이었다. 이제 남은 몫은 정치가 맡아야 한다.
이 책은 또한, 민주주의가 헌법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몸과 목소리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기록하려는 의지다. 거리의 노래와 발언, 눈물과 손잡음까지 모두 헌법이 말하는 권리의 또 다른 형태였다.
비록 결정문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민주주의는 쉼표를 찍었다. 이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잠시의 멈춤이다. 우리는 여전히 질문 속에 있고, 헌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은 그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이다. 답보다 질문을 남기고자 한다. 질문은 곧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