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래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의 이 문장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방과후 교사, 문화예술교육 강사, 도슨트로 학교와 도서관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 강의 및 강연을 합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보배
대부분의 시간은 고등학생 아이들과 입시를 준비하는 데에 보냅니다. 아이들의 체력전과 마음고생을 가까이에서 보며 염려할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무럭무럭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사고의 폭이나 문장력을 보면서 내심 기뻐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에만 집중하는 공부는 지루할 수 있지만, 책을 토대로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건 참 근사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에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서은혜
아동그룹홈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는 일과 쓰는 일을 엮어서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10》에 글을 실었고 《전지적 언니 시점》에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또 나를 이렇게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절단 장애로 한쪽 다리가 없는 아버지에게서 손으로 일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법을,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어머니에게서 통제할 수 없는 근육으로 품위 있게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양하고 고유한 삶을 살아내고 갱신하는 고통이 주는 기쁨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유산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세계까지도 확장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쓰고 싸우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 철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한 학생입니다. 저는 슬픔과 행복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과 증오의 차이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감정이란 것은, 태초에는 한 개의 큰 덩어리였던 것이 사람의 언어가 분리됨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닐까요? 감정의 울렁거림, 이것은 제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앞으로도 살고 싶습니다. 더 예민하게, 더 처절하게, 더 슬프게, 그래서 더 행복하게.
이설아
미술, 입양, 글쓰기, 가드닝 순으로 사랑에 빠졌고, 그때마다 큰 보폭으로 인생의 행로를 훌쩍 바꾸기도 했습니다, 개성만점 세 아이, 그리고 26년차 짝꿍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이 꽤 만족스러워 스스로를 복받은 사람이라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15년간 입양가정의 성장을 지원하는 실천가로 활동하다가 오십대부터는 가드너로 살아보고자 인생의 방향 전환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글 쓰는 내가 좋고, 다른 이들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화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탄생》 을 시작으로 《가족의 탄생》, 《모두의 입양》을 썼고, 《돌봄과 작업》을 함께 썼습니다.
이지안
여전히 사람 마음이 어려운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심리검사연구소에서 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그 사이사이 상담을 하고 글을 씁니다. 잠비아에서 서툰 언어로 사람들을 사귀고 비 온 뒤의 흙냄새를 맡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엄마들의 이야기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을 함께 썼고,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필자로 참여하며 심리학에 기대었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정연
20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고 9년차 요가 수련자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타자와 자신의 성장을 함께 일궈갈 때 행복하며 코치, 카운슬러, 멘토로 불리길 좋아합니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인한
2012년부터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주로 로스팅을 하거나 커피를 내립니다. 가게가 한가하거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2019년부터 〈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부터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으로 참여했습니다.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 《커피의 위로》를 쓰고, 2022년에는 《세상의 모든 청년》을 함께 썼습니다.
정지우
소설을 쓰고 싶었던 열다섯 살 이후, 서른다섯이 넘도록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과 생각을 기록하면서 무엇보다 많은 힘을 얻으며 살고 있다고 느껴 누구에게나 글쓰기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근래에는 예정에 없던 변호사로도 일하며 삶의 다양한 영역을 거닐고 있습니다.
정희권
학부에서는 문예창작과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을 공부했습니다. 공직 생활을 시작으로 대기업 사원, 대학교 교직원, 스타트업 창업, 투자조합 심사역, 대학 교수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보드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지 모르는 렉시오나 스파이시 같은 게임이 제가 관여한 것들입니다. 인생의 후반은 글을 많이 쓰며 지내려 하며 장난감 만드는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허태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 7개월간 근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하는 청(소)년,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로 살아가며 스스로 소개하는 것조차 버거운 삶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에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황진영
학부에서는 교육학을, 대학원에서는 국어학과 교육학을 전공하고 공사나 연구원, 대학 등 주로 공공기관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풀어내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고민하던 시절을 지나니, 글을 담는 매체가 하나둘씩 늘어갑니다. 인문학 웹진 〈IKPU〉에 마음챙김 글을,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더 칼럼니스트〉에는 미국의 일상을 담은 글을 연재 중입니다. 2022년에는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