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역사론(On History)>은 홉스봄이 평생을 바쳐온 역사 연구의 정수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제까지 홉스봄은 어떤 주제나 시대를 다루는 역사만 써왔을 뿐, 자신의 역사관이나 역사학 방법론 등을 담은 저서는 발표한 적이 없었다. <역사론>은 역사(학)에 대한 홉스봄의 통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책이다. 홉스봄이 이제까지 걸었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21편의 글들은 대부분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도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설명 뒤에는 번뜩이는 통찰과 예리한 비판이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홉스봄은 여러 주제를 다루는 이 글들을 통해서 자신의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역사론>의 각 글들은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한 가지 시각은 '현실 참여로서의 역사, 실천으로서의 역사'이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적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정교한 인식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보는 관점으로 인해 역사적 통찰을 뛰어난 몇몇 학자들만의 전유물로 가둘 뿐이었다. 이런 역사적 인식은 상아탑 안에 있는 학문 귀족의 세련된 (그러나 순전히 과거만을 위한) 감각일지언정,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의 역사, 꿈에서 시작해서 결국 현실이 되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역사'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 홉스봄은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일 뿐 아니라, 그 과거의 힘을 빌려 만들어나가는 미래와의 대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박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즉 역사는 현재의 자신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제한하며, 자신이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과거로 그치지 않는다.
역사는 철저하게 '현재'이고 그것을 넘어 '미래'의 일부인 것이다. 특히 민족정신을 형성하는 데 역사가 이용되는 경우와, 현재의 관점이 역사 서술을 왜곡하는 경우, 반대로 왜곡된 역사가 현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 등에 집중하고 있는 몇몇 장에서 홉스봄의 미래 지향적인 역사관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역사론』은, 과거 지향적인 역사 인식에 갇혀 있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대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며, 우리가 어떤 과거에 매여 있고 그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제한하는 동시에 가능케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현재를 만드는 역사,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거
1~3장은 '역사의 재료로 쓰이는 역사(학)'와 그에 대한 '역사가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홉스봄은 역사가 현실의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역사가 현실과 상호 작용하여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낱낱이 해부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믿고 있는 페니언 전설이나, 중일 전쟁을 미화하는 일본의 교과서는 모두 이러한 요구에 봉사하는 역사이다. 힌두교도들이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게 만드는 이슬람의 힌두교 박해 사실이나, 무슬림들이 목숨을 바쳐 테러를 자행하게 만드는 이슬람 근본주의는 모두 과거의 실제 사실이 아니라 최근에야 조작된 신화일 뿐이다. 홉스봄은 역사적으로 날조된 이런 신화들이 진정한 역사를 가리기 때문에, 역사가의 임무는 이런 신화들을 걷어내고 역사를 냉철하게 드러내어 이 날조된 역사들이 현재의 요구에 봉사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민족의 신화가 근거하고 있는 중세 필사본들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체코슬로바키아의 창건자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마사리크의 경우처럼, 설사 그것이 인기 없고 심지어 위험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4장 「앞을 내다본다―역사와 미래」는 그동안 역사 이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역사적 예측을 다루고 있어서 미래 지향적인 홉스봄의 역사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홉스봄은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며 심지어 필요한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리고 이런 예측을 도와주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기억, 즉 역사적 통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1980년 6월에 미국 관측 시스템에 소련의 미사일로 생각되는 물체가 잡혔던 사실을 들어 뒷받침한다. 단 몇 분 동안의 판단으로 인해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주요 관리들은 곧 기계 착오일 거라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옳았다. 그들이 그렇게 판단한 것은, 당시의 정황을 역사적 감각으로 통찰해 볼 때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홉스봄은 역사에는 기본적인 경향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2003년 1월 1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미래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과 (특히) 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하는 일, 예측할 수 있는 일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일이다.
18장 「역사로서의 현재」와 19장 「우리는 러시아 혁명사를 쓸 수 있을까」는 현재의 관점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특히 홉스봄은 소련의 붕괴가 20세기를 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러한 현재의 관점이 과거를 왜곡할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러시아 혁명 당시엔 혁명 말고는 사실상 다른 대안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만약 화성인이 냉전 시대를 관찰한다면,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했을 뿐 실제 전쟁은 치르지 않은 자본주의-사회주의 진영과, 실제로 전쟁을 치렀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도대체 미국, 한국, 오스트리아, 브라질, 싱가포르, 아일랜드를 똑같은 '자본주의 진영'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를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역사적 지식이 단지 사실들의 나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현재의 경험뿐 아니라 과거의 '현실'과 '당시의 전망'이 역사를 만드는 주요한 힘임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
그 밖에도 『역사론』에 실린 글들은 그 주제와 범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넓이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홉스봄이 다루고 있는 사회사, 경제사, 역사 이론, 역사가의 객관성, 아래로부터의 역사,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유럽사와 세계사, 미시사, 전체사 등은 "내 전공은 19세기사"라는 그의 말을 무색케 한다. 키스 맥클러랜드(Keith McClelland)가 첫 번째 홉스봄 헌정 논문집에서 홉스봄의 저술에 대해 정리한 것을 보면, 분류 항목만 해도 27개 항목에 30쪽이 넘는 분량에 이른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가 다루지 않은 주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재즈 비평을 하기도 했던 홉스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현실의 모든 경험과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전체사'이다.
특히, 홉스봄이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역사"이다. 홉스봄은 대학생 시절에 이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긴밀하게 교류했고(교수들보다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스스로 공산당 역사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이 모임의 멤버였던 모리스 도브, 크리스토퍼 힐, E. P. 톰슨, 빅터 키어넌, 조르주 뤼데 등은 나중에 일급 역사가들이 된다). 현재 최고의 역사학 저널로 인정받는 ≪패스트 앤드 프레즌트(Past and Present)≫를 창간한 것도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사를 진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편협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지는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는『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편집에 참여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에 「서문」을 쓰는 등 마르크스주의자로 활동하면서도, 오로지 경제적 힘으로만 역사를 해석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에 대해선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런 비판은 『역사론』전체에 걸쳐 거듭되고 있다. 노동자들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강한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으면서도 낭만화된 노동 계급의 허상을 깨는 작업을 계속해 왔고, 반대로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한 동료들이 영국 공산당을 탈퇴할 때에도 "그래도 조직은 중요하다"며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역사가로서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삶의 경험과 자세를 기반으로 그는 전통적인 정치-외교사에 대항해 사회사, 특히 '민중사'를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역사학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그렇기에 그의 역사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응용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모습으로 만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