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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냉정한 현실직시가 그대로 드러나는 단편소설들. 어쩜 이렇게 끔찍하고 섬뜩한 상상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인지. 작품 속 얼토당토않은 설정들이 처음엔 터무니없게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이 우리들 현실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즈음이면 쭈뼛 소름이 끼친다. 이게 구병모의 힘이리라. 이런 상상, 이런 소름. 한 순간에 복잡한 심정에 빠지게하는 천연덕스러움이라니. 미래가 보이지않는 서른 중반의 박사과정 수료생 시간강사의 부인이야기, 유아교육과 재학과 휴학을 밥먹듯 하는 가난한 대학생 이야기, 가난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부모 면전에서 실수로 뱉은 말 때문에 변사체로 발견되는 교사 이야기, 모든 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을 바느질로 꿰매주는 여인 이야기, 어느날 갑자기 몸의 절반이 길바닥에 딱 붙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남자 이야기, 절망에 쩔은 사람들만 기가막히게 찾아내서 산 채로 쪼아먹는 새들 이야기. 너무 새롭고 기발한 설정이다. 그런데 읽고나면 마음이 아프다. 마치…… 같은 이야기 (2010) 어떤 자장가 (2010) 재봉틀 여인 (2009) 고의는 아니지만 (2011) 타자의 탄생 (2011) 곤충 도감 (2009) 조장기(鳥裝記) (2011) 어림 반 푼어치 학문의 힘 (2010) ______ 새들은 그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절망의 냄새를 맡고 몰려온다는 거였다. 절망으로 대표되긴 했는데 그것은 삶에서 산출된 총체적인 오류와 실패와 무기력, 독성, 장애, 회한, 허무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처음에 숲에서 목을 매 숨진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은 새들에게 절망의 성분이 각인되었을 것이며, 그것들이 취한 부위는 피부만이 아니라 폐나 간을 포함했을 테고, 비록 부패했을지언정 — 아니 오히려 부패했으므로 더욱 유효한 절망의 성분을 새들에게 전달했을 테며, 그 맛과 냄새에 점점 익숙해진 새들은 살아 있는 이마저 시체인 줄로 착각하고 덤벼들기 시작했으리라는 거였다. 개정판|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저 #고의는아니지만 #구병모 #민음사 #오늘의작가총서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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