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삶이었다. 어느 날 사막 가운데 자신의 삶이 내던져진 듯했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뒤에서 자꾸만 밀고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삶의 과정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선아는 이런 과정에서 내면적 의식을 이끌었고 의문과 내적 탐구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형이상학적인 특별 기획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으며 관점이 넓어지게 되었다. 우신의 죽음과 친구들의 외부적 고민은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래야만 했다. 각자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삶은 꿈처럼 꿈이 되는 듯 전체를 이어주는 하나가 되는 시선 속에 명상하듯 바라보는 삶이 존재하고 의식하는 그곳에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주의 꿈인 누군가의 명상 속에서 삶이 펼쳐지고 있는 듯 바라본다. 꿈의 꿈이 되어 명상을 하듯이 삶을 지켜보는 내면의 탐구를 위한 누군가의 일상의 이야기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들이 명상하듯이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다. 그렇게 삶은 우리의 감정을 인식하는 통로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을 명상할 때처럼 의식적 관찰자가 되어 생각하는 존재로 경험한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꿈속의 꿈이 누군가의 의식 속에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펼쳐지지 않아서 슬픔이 되곤 했다. 그들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기에 타인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 관계의 거리는 좁혀지고 멀어지는 듯했지만 결국 자신으로부터 알아야만 했던 감정이 세상을 통해 드러난다. 그 삶은 그들을 통해 지나가고 있지만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른 문이 열린다. 삶은 열린 그 문으로 들어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인생이 그러했다. 태어난 순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멈추게 하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은 여러 방식으로 자신에게 온다. 그것은 무의식에서 드러나는 다른 발견이고 무지 속의 감정이 자각되는 형태로 세상에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 앞에 놓인 상황과 사건이 외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내부로 옮겨와야 했다. 사건이 일어나거나 발견하는 마음이 어떤 고통이나 트라우마가 감정을 할퀴고 그 감정을 건드리면서 방황하고 저항하며 있다. 결국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노크를 해야만 했다.
자신 안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그것은 결핍과 불안, 두려움, 연민, 무기력, 한계, 등과 마주한다. 그렇게 내면의 자신을 알기 위해 서로 다른 형태로 다른 감정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때론 자신의 다른 열린 문이 되었다. 번민하며 방황하는 삶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의 생각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기억 속에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면의 우주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면의 우주는 치유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마음을 두드리는 자각의 소리가 내부에서 시작한다.
인생은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희로애락적 사건으로 연결된다. 삶은 우리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차지한다.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적 의미를 알아차리기까지 경험으로 둘러 쌓여 스스로를 무대 위에 세운다. 삶은 살아가는 의식적 관찰자의 세상에 펼쳐지는 명상 같은 것이라 생각하게 하는 내부 관찰자의 시선이 된다. 모든 곳에서 의식하게 되는 존재로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소설 속의 그들의 이야기는 가까운 듯 먼 그들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삶의 슬픔과 고통이 자신을 내몰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자아를 찾고자 허우적거린 그들만의 삶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어릴 적 친구에서 시작되고 성인이 되어 서로 각자 다른 모습의 인생 위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상처입고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는 삶이 있었다. 그러나 행복하길 바라는 삶을 꿈꾸었지만 행복하지 않는 자신으로부터 삶을 이해해야만 했다. 삶의 고통과 방황을 외면하기 위해 허무한 즐거움과 욕망으로 그 마음을 대신 위로하거나 채우지 못했다.
우신의 죽음 후, 선아는 그의 부재에 대해 배회한다. 마음의 아픔이 방황 속에서 어떤 영감이 되어 마음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고민과 질문으로 마음을 표현한 추상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 난해하고 신비적인 문명을 찾아 나섰고 세상을 상상으로 연결시켜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친구들의 전분분야의 협업을 하고 하나의 퍼즐 조각이 모여 전체 이미지를 구상한 전시를 선보인다. 선아는 고대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문화가 품은 상징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를 연구했다. 고대문명 속에서 직관해야 하는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이미지를 시각예술로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생각과 의식이 성장했다. 그리고 그 마음처럼 전시 또한 사이키델릭한 감정 속에 시선을 가두었다.
미리는 우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마음을 들여다 보는 계기로 요가와 명상을 경험하게 된다. 미리는 지니를 만나 마음의 심오한 세계 속에서 우주와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우주는 자신의 마음 안에 있으며 우주가 마음이라는 사실을 명상 속에서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정빈이 소속된 AI연구소는 다양한 방면에 접목할 목적으로 활용방안의 단계적 연구였다. AI로봇에 인간의 생각을 복사했다. 그러다 감정을 기계에 주입시켜 관리해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의 혼란이 생긴다. 정빈은 지나와의 관계에서 서로가 연구한 남녀 인공지능 로봇의 감정을 주입한 바이오 로봇이 되어 다른 의식체계와 공명하여 하나의 의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막연히 자신의 목적을 받아들였다. 그는 스위스로 가서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정빈은 새로운 시스템 속에 갇혀 버린다. 그는 선아가 기획한 전시기획의 과정을 원격 시청하기도 했다. 정빈이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스토리에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하고 관찰한 이야기가 그의 화면 속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꺼져버린 시스템은 닫혀진 문이 되었다. 다시 다른 화면 속에서 어떤 삶이 재생되고 있다. 관찰자는 다시 명상의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