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폐허가 된 상아탑에서 쏘아 올리는 마지막 희망의 신호탄
연구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캠퍼스의 풍경은 37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라울 만큼 평온합니다. 계절이 바뀌면 교정의 나무들은 어김없이 옷을 갈아입고, 매년 3월이면 풋풋한 신입생들의 웃음소리가 이 낡은 건물의 복도를 채웁니다. 그 변함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종종 깊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세상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집히고 있는데, 어째서 대학이라는 공간은 이토록 고요한가. 이것은 평화인가, 아니면 폭풍 전의 적막인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격변의 시대에 가장 큰 위험은 격변 그 자체가 아니다. 어제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대학이 딱 그렇습니다. 저는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강단에 서 왔고 이제 정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올해 스승의 날에는 지난 37년의 교직 생활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패를 받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상패를 받아 든 순간, 기쁨보다는 엄중한 책임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부족하지만 교직 생활 내내 현실에 안주하는 교육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혁신 실행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기에, 저는 이 영광 뒤에 숨겨진 대학의 위기를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미래교육학자 신종우라는 이름을 걸고 뼈아픈 고백을 하려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지성의 요람이 아닙니다. 이곳은 유효기간이 지난 지식들이 연명 치료를 받고 있는, 그럴싸한 간판만 남은 '지식의 양로원'입니다.
저는 평생을 교육 현장의 최전선에서 보냈습니다. 칠판에 백묵을 묻히며 지식을 전달하던 아날로그 시절부터, 디지털 대전환을 넘어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보는 특이점까지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의 변화를 합친 것보다 최근 2, 3년 사이 인공지능이 몰고 온 충격파가 훨씬 거대했습니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교수들이 표절을 걱정하며 빗장을 걸어 잠글 때, 저는 오히려 전율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일종의 해방감이었습니다.
더 이상 낡은 지식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티칭(Teaching)'으로는 교육자로서 존재할 수 없는 시대, 진정한 '미래 교육'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예이츠는 "교육은 양동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학의 강의실 풍경은 어떤가요? 여전히 교수는 10년 전에 만든 강의 노트를 읽고(양동이를 채우고),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적기에 급급합니다. 인공지능이 0.1초 만에 더 정확하고 방대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단순 지식을 붙들고 우리는 1시간을 허비합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사회는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F1 머신을 원하는데, 대학은 여전히 달구지 운전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그 달구지 면허증, 즉 '졸업장' 하나를 얻기 위해 4년이라는 청춘과 4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을 쏟아붓습니다. 저는 이 모순적인 거래 현장을 지켜보며 깊은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팔고 있는 것은 미래를 살아갈 역량이 아니라, 이미 박제된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정년 퇴임 예정자가 편안한 은퇴와 명예 대신 '대학의 죽음'이라는 과격한 화두를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제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리고 이 땅의 청년들이 '배운 바보', 즉 고학력 신종 문맹이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학점 4.5점을 받기 위해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 적는 성실한 학생일수록 인공지능 시대에는 가장 먼저 도태될 위험이 큽니다.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이제 기계의 영역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기계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입니다. 미래교육학자로서 제가 확신하건대, 지금의 대학은 질문하는 법을 거세하고 순응하는 법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7년간 대학이 지식의 독점권을 쥐고 흔들던 시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권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수는 지식을 파는 소매상이 아니라, 지혜를 나누는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티칭'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코칭(Coaching)'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지식의 전달은 AI 튜터에게 맡기고, 교수는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그들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인간적인 연결, 즉 '하이브리드 터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인공지능과 공존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교육 방식입니다.
에릭 호퍼는 "변화의 시기에 배우는 자는 세상을 물려받지만, 배운 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해 있을 뿐이다"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비판서가 아닙니다. 침몰해가는 타이타닉호 안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바이올린만 켜고 있는 '배운 자'들의 대학 사회를 향한 처절한 내부 고발이자,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제언입니다. 저는 대학이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이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낡은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상아탑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라야 비로소 진짜 교육이 싹틀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강단에서 내려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저의 교육 혁신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정년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는 쉼표일 뿐입니다. 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교육의 길을 제시하는 '영원한 교육혁신가'로 거듭날 것입니다. 미래교육학자 신종우의 소명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간판만 남은 대학, 지식의 양로원에서 탈출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슈퍼 개인'으로 거듭나십시오.
이 책이 그 험난하지만 가슴 벅찬 탈출의 지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7년의 세월을 바쳐 깨달은 이 진실이,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파도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등대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대학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다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