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에 대하여
『사물의 뒷모습』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조각가, 예술가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사물과 형상, 나아가 자신의 삶의 태도와 사유를 소박하고 순수하게 표현한 안규철의 에세이집이다. 그는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이란 제목으로 월간 《현대문학》에서 2010년부터 11년 간 연재해오고 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2013년 출간된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의 후속작인 『사물의 뒷모습』은 2014년 1월호부터 연재한 글과 그림 67편을 엮은 것이다.
사물의 뒤편에는 짐작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가 있다
사물에 대한 사유를 담은 ‘식물의 시간’, 말과 언어에 관한 생각을 묶은 ‘스무 개의 단어’, 미술과 글쓰기라는 일에 대한 방식의 모색 등을 모은 ‘예술가들에게 은혜를’, 삶의 체험이 담긴 에피소드로 인생을 들여다본 ‘마당 있는 집’까지 총 네 개 장으로 구성된다. 이번 책은 필자가 생의 보너스처럼 얻은 시간과 사유로 이끌어낸 공간의 여유로움 속에서 잠시 멈춰 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세계를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으로 보여준다.
전작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이 예술과 예술가적 삶에 깊이 있는 사색을 담았다면, 『사물의 뒷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 쪽으로 무게가 실려 있다. 특히 제목 속 ‘뒷모습’은 중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자신의 뒷모습과, 사물 혹은 현상에서 보이는 것 이면의 뒷모습을 들여다본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 “무심히 지나쳐왔던 풀과 벌레와 나무들을 만나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물의 뒷모습”을 보려는 노력이 따뜻한 시선과 만나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인다.
「겉과 속」에서 그는 사물의 속이 궁금하지만 “힘들여 기계를 뜯어봐도 암호처럼 복잡한 회로판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며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을 인간세계로 넓힌다. 「직각의 문제」에서는 “직각을 못 맞추는 목수 때문에 낭패를 본 이야기”를 통해, 일에 결벽성을 가지지 못한 세태를 탄식하면서도 이제는 “소심한 원칙주의자” 같은 모습을 버리고 그런 식으로 인생을 다 허비할 수 없다며 그가 고수해온 삶의 방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도 한다.
「머그컵」에서는 한평생 예술가로 살아온, 그 삶이 고독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나아가 오직 인간만이 순응하지 못하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비유들은 우리가 되새겨볼 만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는 실타래를 가지고 나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날 이 일을 매 순간 계속할 뿐”이라는 「씨줄과 날줄」의 고백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예술가 정신과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려는 필자의 지극함과 그 애절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그 이야기가 주역이 되는 또 다른 형식의 작품이다. 그저 짐작만으로 도달하려 했던 한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망과 머뭇거림, 희망과 탄식을 공유하면서,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를 발견한다.”
_안소연(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 책 속으로
조각가란 돌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사람이었다. 사물의 표피를 꿰뚫는 그의 통찰력과, 그렇게 그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나는 문득 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망치와 정으로 깨어낸 파편과 가루들이 궁금하다. (……) 여기서 세계는 형태와 형태 아닌 것, 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으로 나뉜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후배들이 세상의 모든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형태들을 끌어낸 지금 우리는 결국 그 잔해들 속에서, 버려진 파편과 먼지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고 있다.
_「형태와 형태 아닌 것」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 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 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수도승들의 단정한 생활을 따라 해봐야 한다. 때가 되면 부르지 않아도 어느새 피는 꽃들처럼 사라진 것들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이니, 지금은 어지러운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언제 쓸지 모르는 잡동사니들을 내다 버릴 시간, 내가 먼저 그들로부터 달아나야 할 시간이다.
_「물건들」
오래전 누군가가 ‘살아지더라’고 말했을 때, 내게는 그 말이 ‘사라지더라’로 들렸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이 한동안 실제로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지 모른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살게 되더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 괜찮다는 말, 어쩔 수 없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그래서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어설픈 위로 따위를 듣지 않겠다는 말. ‘살다’ ‘살아오다’ ‘살아가다’ ‘살아내다’ ‘살아남다’가 아니라, ‘살아버리’고, ‘살아치우’고, ‘살아 없애’는 삶, 그래서 결국 삶 속에서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그런 삶.
_「살아지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나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연필 끝을 통해 전해지는 켄트지의 촉감과 그것들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거기서 허용되는 자유, 그 위에서 달팽이처럼 천천히 움직일 수 있고, 마냥 멈춰 있을 수 있고, 또 언제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한다. 딱딱한 A4 용지에 볼펜으로 쫓기듯 써내려가는 공문서 같은 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가 거기 있다.
_「스케치북에 쓰는 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시대정신이 된 세상에서, 임박한 실직과 임박한 파산, 임박한 재난과 임박한 파국의 예감에 채찍질당하며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우리는 하필이면 ‘100세 시대’의 기나긴 생을 살아갈 아무 준비도 없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 영원이니 불멸이니 하는 것들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지금 우리에게는 석 달짜리 인테리어가 아니라 100년을 살아갈 영혼의 집을 지을 목수가 필요하다.
_「100세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