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드라마 ‘뉴하트’의 실제 주인공
전 인류의 가슴에 꽃을 피운 기적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다
“한국의 외과의사, 심장수술의 신기술을 개척하다!”
2009년 5월, 로이터 통신은 국내 최고의 심장전문의 송명근 교수의 수술법을 전 세계에 보도했다. “한국 심장수술의 선구자 송명근 교수는 인공 판막을 사용하는 대신 환자 본인의 조직을 이용해 심장을 고치는 혁신적인 수술법으로 심장병을 치료한다.”
카바(CARVAR, 종합적 대동맥근부 및 판막 성형술)라 불리는 이 수술법은 그동안 인공판막을 이식할 수밖에 없었던 기존 수술의 한계를 해결한 놀라운 성과다. 환자 본인의 조직이 아닌 인공판막을 이식할 경우 평생 항혈액응고제를 복용해야 하며 여성의 경우 임신의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카바는 단 한 번의 수술로 환자 본인의 조직을 성형해 기존 수술법의 단점을 혁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세계 의료계를 놀라게 하였다.
사람의 판막은 마치 얇은 잎사귀와 같으며, 이 세 장이 혈관에 미묘한 각도로 붙어 심장 박동에 따라 특정하게 움직이는 공간 구조물이다. 움직임이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하기에 그동안 의학계에서는 판막이 망가졌을 경우 원래대로 복원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송명근 교수는 20년 동안의 연구 끝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판막 복원에 성공했다.
사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공판막을 개발한 미국인 의사 앨버트 스타의 제자였다. 미국 유학 시절, 세계적 권위자인 스승에게 인공판막의 불완전성을 두고 감히 이의를 제기했지만 인공판막만이 최선일 뿐, 다른 방법은 없다는 스승의 답변을 들었다. 아직 젊은 의사였던 저자는 의료계의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심장 판막의 복원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스승과 약속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북극성처럼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꿈이 되었고, 오랜 시간 가슴속에서 세차게 박동하며 기적을 이루는 동력이 되었다. 그는 이제 혁신적인 차세대 수술법으로 전 인류의 가슴에 꽃을 피우며 한국을 세계 심혈관 분야의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우리 시대 가장 주목할 인물이 되었다.
성적표에 ‘미’와 ‘양’이 수두룩했던 괴짜 학생
‘뿌리 공부법’으로 의대생이 되다
송명근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감행했다. 귀국 전에는 미국 전역의 유명 심장센터들을 돌아다니며 심장병의 세계적 권위자들에게 직접 배웠고,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다.
이름 앞에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국내 최고의 심장전문의가 되어 1992년 11월 국내 최초 심장이식 수술 성공, 이후 초저체온 대동맥수술, 심장과 신장 동시 이식 등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키며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의 심장전문의로 인정받고 있다. 스타 의사로서 부천 세종병원, 서울아산병원을 거쳐 현재는 건국대학교 병원에 그의 이름을 딴 ‘송명근 심혈관외과 클리닉’을 열고 매일 8시간 이상씩 수술을 하며, 그 어떤 젊은 의사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학창시절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성적표에 늘 미와 양이 수두룩했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저자는 자신이 흥미를 갖는 분야에만 몰두하는 학생이었다. 특히 수학과 물리를 유독 좋아해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미분과 적분을 풀 정도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기하와 작도, 고등학교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탐닉해 정작 다른 과목들은 뒷전이었다. 어렸을 때 그런 아들이 걱정된 아버지는 공부보다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단시간에 다른 과목들까지 끌어올려 1등을 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시험도 그렇게 자신이 흥미를 가진 주제만 파고들다가 진학 때문에 주변에서 염려한다 싶으면 단기간에 성적을 전교 1등까지 끌어올려 그동안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신기한 학생이었다. 결국 그가 세계적인 연구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의사인 동시에 수학과 물리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의학이라는 전공 분야의 관점을 넘어 다른 분야와 접목할 수 있는 기초과학까지 깊게 공부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동안 이런 자신의 공부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어올 때마다 ‘뿌리 공부법’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소개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호기심과 집중력을 보였던 저자는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독서를 통해 직접 알아보고 검증하기를 즐겼다.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관련된 모든 책을 읽으며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래서 관심 있는 과목만큼은 언제나 최고였지만 다른 과목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요할 때 다른 과목도 집중적으로 공부해주면 금방 성적을 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탐구로 평소에 많은 지식을 쌓아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큰 줄기를 따라가면 땅 속에 수많은 뿌리들이 뻗어 있는 것처럼 지식도 연결되어 있기에 평소에 많은 지식을 쌓아두면 자꾸만 다른 지식들이 연달아 생기면서 문리가 트이고, 깊은 뿌리 위에 싱싱한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처럼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부는 성적보다 실력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의과대학 시절에도 그는 다른 학생들이 족보라고 불리는 시험 기출 자료들을 외우는 동안 혼자서 방대한 전공서적만 열심히 보았다. 결국 노력에 비해 시험성적이 좋지 않아도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시험이 끝난 후 못 다 본 전공서적을 마저 읽을 정도였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실력을 기르기 위함이지, 단지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렇게 엉뚱한 소년이 뛰어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창의성을 존중해주며, 아무리 엉뚱한 잘못을 해도 자식이 나름의 논리를 발전시키도록 격려한 아버지의 너른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하루는 68점을 맞은 시험지 때문에 어머니께 혼나는 와중에 아버지가 관여하셨다. 어린 송명근은 자신이 틀린 게 아니라 선생님의 채점이 틀렸다고 했고, 아버지가 이유를 물어보셨다. ‘3월은 무슨 계절인가요?’라는 물음에 봄이 아닌 겨울로 답해 선생님이 틀렸다고 했는데, 3월은 아직 추울뿐더러 눈까지 온 것을 보았고, 시험문제에 음력인지 양력인지 구분도 되어 있지 않기에 자신의 답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네가 맞다”며 동그라미를 그려주셨고, 언제나 겸손하되 자신의 논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에 시험 점수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자신의 신념대로 언제나 옳고 그름을 명확히 따지는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의사로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한 생명을 붙잡을 뿐
가진 것을 모두 주고 떠나겠다고 선언한 아름다운 사람
그의 스승 중에는 세계적인 심장병리학자인 반프라 교수가 있다. 한 달 동안 특별히 매일 저녁마다 시간을 내어 집중적으로 개인 과외를 해준 그에게 사례를 하고 싶었던 저자는 선물로 산 지갑에 적은 돈이지만 교습료를 담아 건넸다. 아직 배우는 처지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저자는 내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반프라 교수가 지갑에서 봉투째 돈을 빼어 저자에게 다시 내밀었다. 돈이 적어서 그런 줄 알고 당황한 저자는 스승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빚을 갚을 대상은 내가 아니라네. 앞으로 자네가 치료할 환자, 가르칠 후학 등 이 사회에 빚을 갚기를 바라네.” 자신이 고맙다며 선물을 받고 말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스승에게 진 빚을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서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선행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유학 시절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아껴준 미국 최고의 심장전문의 앨버트 스타 교수는 귀국을 앞둔 송명근 교수에게 “유명한 곳에 가기보다는 자네가 있는 곳을 유명하게 만들라”고 말하며, 재능과 실력은 언제나 베풀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귀국 후 한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스타 의사가 된 저자는 그 누구보다 후학 양성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어릴 적 너희들은 ‘엽전’이라며 비하하는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그런 민족이 아니라고 대들었던 소년은 어느새 한국인의 자긍심을 의료기술을 통해 입증하려는 꿈을 실천해갔다.
그런 노력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이 판막을 환자 본인의 조직을 통해 복원하는 수술법의 개발이었고, 직접 회사를 만들어 그에 필요한 의료 제품까지 직접 생산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 미국 기업이 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에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타진해왔지만, 고민 끝에 거절하였다.
연간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세계 심장판막시장을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한 회사가 독점하여 환자들에게 무리한 금액으로 공급할 가능성이 있어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죽는 날까지 오늘처럼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송명근 교수는 그런 일을 겪자 처음으로 무기력과 허무를 진하게 느꼈다. 막상 더 이상 추구할 게 없는 상태가 되는 순간 그동안 자신을 치열하게 살게끔 한 꿈이 무뎌지면서 의욕을 잃고 마는 ‘성공우울증’에 처음으로 직면했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그동안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죽을 때까지 연구하는 의사로 남기로 했고, 앞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더라도 그로 인해 마음의 짐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그는 아들과 딸에게 결혼자금만을 남겨주기로 하고 2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마지막까지 꿈을 꾸는 사람으로 남을 뿐 의사로서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는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꿈을 갖는다.
나는 그 꿈들이 아름다운 꿈이길 바란다.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숭고한 사명의 길을 걸어온 송명근 교수는
한때 병원에 몸담았던 내가
존경하는 의사들 중 한 분이다.
그의 책 《꿈은 박동한다》는
공의와 인의를 지향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꿈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고민하는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바란다.
-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