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물에 대한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
계단, 칫솔, 단추, 사다리, 만년필, 텀블러, 콘센트……
67가지 익숙한 일상 사물들을
가장 힙하고 낯설게 사유하는 생각 훈련
일상의 사물에 대한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
보이지 않는 존재의 깊이에 닿는 사색을 위하여
우리는 일상에서 늘 사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층을 오르기 위해 계단이 필요하고, 편안하게 자기 위해 베개를 사용한다. 사무실엔 파티션이 있어야 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트렁크를 챙긴다. 너무나 익숙한 이 사물들을 우리는 ‘쓸모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즉 사물은 도구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회 현상의 이면을 탐구하는 문화비평가 함돈균에게 사물은 단순한 도구에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늘 사물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사물을 통해 존재의 다면성과 만나는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설 『어린 왕자』의 주인공이 그림을 보여주며 던진 질문에 어른들은 예외 없이 ‘모자’라고 말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안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본다. 어른이 사물의 겉모양새를 인식의 근거로 삼는 반면, 어린 왕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시선의 차이가 표면 너머를 보게 하고 결국 존재의 깊이에 닿는 사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저자는 다양한 고찰을 통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계단’에서 저자는 높이의 차이가 가지는 심리적인 낙차를 읽어내고 또한 변화 없는 반복이 파생시키는 삶의 권태를 이야기한다. 세계화 시대의 필수품인 ‘비자(visa)’는 타자와 동일자의 구별 짓기를 강화하는 역설적인 제도-사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여름의 상징이자 백수의 표정을 한 청춘의 신발인 ‘조리’(일명 ‘쪼리’)는 야생과 야만의 문명적인 차이를 표상하는 사물이라는 저자의 직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의 감각과 교호하는 은밀한 무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사물을 추적한다. 그런 점에서 사물이 품고 있는 의미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사색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은밀한 곳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 낯선 세계의 경이를 펼쳐 보인다. 문명의 도구를 통해 정치와 예술과 인문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일상 시간 안에서 꾀하고자 하는 이 책의 시도는 결국 우리가 다른 시선을 가질수록 세상은 더 놀라워진다는 사실을 증언할 것이다.
계단, 칫솔, 단추, 사다리, 만년필, 텀블러, 콘센트……
67가지 익숙한 일상 사물들을
힙하고 낯설게 사유하는 생각 훈련
저자는 3년 전 출간한 『사물의 철학』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67가지 새로운 사물들을 다룬 이 책에서 사색의 깊이와 밀착성이 더 심화되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그동안 사람들과 나눈 경험과 고민의 진폭이 고스란히 더해졌기 때문 아닐까. 마치 평범한 사물에서 빛나는 비유를 창조하는 시인처럼 그리고 익숙한 것에서 낯선 질문을 발견하는 철학자처럼, 저자는 문학과 철학의 테두리 안으로 우리를 유쾌하게 초대한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물이 결합되어 있는 ‘만년필’의 뾰족한 펜촉에서 저자는 한비자가 말한 ‘양립할 수 없는 논리의 비공존성’과 마크 트웨인이 말한 ‘찌르는 웃음’으로서의 위트를 읽는다. 간단한 손 조작만으로 인간 시야의 한계를 비약적으로 넓혀주는 사물인 ‘드론(drone)’을 통해 소설창작론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인간 윤리의 불일치에서 비롯될 미래의 묵시록을 경고한다. 요즘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구루프’(헤어롤의 일종)를 머리에 달고 다니는 현상에 대해서는 ‘구루프는 억압에 대한 발랄한 도전이자 뻔뻔함의 현상학과 관련된 사물’이라며 프로이트의 이론과 연결짓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일찍이 저자의 이런 시도에 대해 “사물 하나하나를 다시 사용하면서 세계를 근원적으로 경험해보려는 과감하고 예리한 사유”라고 평했던 것처럼, 저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물들에 겹겹이 싸인 의미의 층들을 때로는 미시적으로 헤집고 때로는 외연적으로 확장한다. 걸그룹과 여름 거리의 ‘핫팬츠’가 해방감, 주체성, 관음증, 물신성,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측면에서 숙고되는가 하면, 어느덧 일상에서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된 ‘에코백’은 유행을 넘어 도덕적·정치적 무의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