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김정운(문화심리학자), 심영섭(영화평론가) 추천
“치매 환자의 기억은
시간, 장소, 인물 순으로 소멸된다.
시간 상실의 1기, 장소 상실의 2기,
인물 상실의 3기, 즉 말기.
1기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기억은 어느새 말기에 다다랐다.
자신의 삶을 하나둘 잊어 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아 온 영화감독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10년 동안 돌봐 오며 발견한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낸 에세이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자신의 엄마를 모티브로 단편영화 「봄날의 약속」을 연출한 저자는, 감독 특유의 예민하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누구보다 빨리 엄마의 이상 신호를 알아채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보살펴 왔다.
보통 치매 환자를 시간을 잊는 1기, 장소를 잊는 2기, 인물을 잊는 3기로 구분한다. 이 책은 그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 장소, 인물 순으로 엄마의 과거와 현재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저자는 치매 엄마를 모시는 상황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울한 멜로디의 팝송’을 예로 든다. 슬픈 멜로디인데도 노랫말은 비교적 경쾌하고 밝은 경우가 있듯 고통과 절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치매에도 기쁨과 환희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치매’의 무게감에 눌려 놓쳐 버리기 쉬운 일상을 잔잔하고 경쾌하게 보여 주며 가족과 삶, 시간, 사랑,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시나, 내가 니를 어찌 잊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무덤에 가서도
나는 니 생각할 거다!”
내 인생의 가장 오랜 친구, 엄마
이젠 내가 엄마를 기억할게
비교적 가벼운 1기에 발견되었던 엄마의 치매가 어느덧 말기에 다다랐다. 엄마를 10년 동안 보살핀 딸이 이제 바라는 건 단 가지. ‘엄마, 다른 건 다 잊어도 나는 잊지 말아요.’
딸의 기억 속에 엄마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엄마는 종갓집 종부인데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자식들을 다정하게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오남매 중 막내딸인 저자는 여느 친구 엄마들처럼 여가를 즐기며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 줄 엄마를 그리워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엄마의 시간은 차고 넘치게 되었지만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엄마 품을 떠났다. 엄마와의 시간을 그토록 그리워했던 막내딸 역시 영화 일로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저자는 바쁜 와중에도 엄마를 돌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손이 더 갈지언정 엄마에게 집안일을 분배하고, 그 옛날 엄마가 여성용품 사용법을 알려 주던 것처럼 엄마에게 기저귀 사용법을 알려 주며, 소방차를 따라가 엄마를 걱정시켰던 어린 시절처럼 집나간 엄마를 찾아 헤매며 마음 졸인다.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배웠던 삶의 지식을, 무한히 받았던 사랑을, 되갚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치매 엄마를 보살피는 과정은 고달프지만 그 시간을 통해 저자는 더 큰 사랑을 배운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엄마가 기억을 잃는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를 기억할게.’
“슬픈 멜로디인데도 밝은 노랫말을 담은 노래가 있듯
고통과 절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치매에도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존재한다.
듣고 보는 이의 자세와 관점에 따라 다를 뿐.”
‘치매’ 특유의 무게감을 덜어낸
영화감독의 유쾌하고 세밀한 시선
‘치매’라고 하면 보통 무겁고 어두운 현실을 떠올리기 쉽다. 저자는 치매 엄마를 모시는 상황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울한 멜로디의 팝송’을 예로 든다. 슬픈 멜로디인데도 노랫말은 비교적 경쾌하고 밝은 경우가 있듯 고통과 절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치매에도 기쁨과 환희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겁고 신파적일 것이라 예상하기 쉬운 치매 엄마와의 삶 역시 수많은 희로애락이 깃든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은 ‘치매’라는 무게감에 눌려 놓치기 쉬운 일상을 잔잔하고 경쾌하게 보여 주며 가족과 삶, 시간, 사랑,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의 행동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엄마와 조금씩 대면하고 있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증오했던 치매라는 병 앞에서.”
엄마와 함께한 10년
치매를 통해 깨닫는 인생의 이치
치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담아냈다고 해서 ‘치매’의 무게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의 나물 무침 맛에 이상을 느낀 저자는 유별나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에 갔다가 엄마의 치매를 선고받는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엄마를 살핀 덕에 비교적 빠르게 엄마의 치매를 발견했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치매를 겪어 왔기에 두려움은 오히려 더 구체적이다. 엄마의 치매 진단을 듣고 ‘부인, 분노, 타협, 수용’ 단계를 거치는 동안 저자는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엄마를 괴롭힌다. 멀쩡한 엄마의 영정사진을 찍고, 가기 싫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데리고 가족여행을 떠나며, 약 한 번 잊었다고 다그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다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의 영정사진은 옷장 안에서 뽀얗게 먼지만 쌓여 갈 뿐이고, 엄마를 세심하게 보살피는 시간만큼 치매 속도는 더디게 진행되며, 세상이 끝난 줄로만 알았던 일상 틈틈이 유쾌하고 따스한 시간들이 스며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치매 엄마와 함께하는 10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 치매는 ‘결과’가 아닌 하나의 ‘과정’임을 보여 준다. 또 그토록 두려워하던 치매라는 병을 통해 인생을 새로이 배우고 깨닫게 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