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파파이스의 케이준 라이스였다.”
내가 쓴 소설의 특정 문장을 수정할 때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보고 싶은 영화를 개봉시키고 단종된 추억의 음식을 부활시키다가
인류 멸망까지 불러일으킬 뻔한 어느 시네필의 아찔한 대모험극
종말을 소재로 한 앤솔러지 『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에 수록되어 화제를 모았던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 후속 신작 단편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이 구구단편서가 ONE 시리즈로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주인공 ‘K씨’가 어느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 올렸던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라는 SF 단편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과정에서 기이한 우연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한 호흡으로 풀어내는 작품으로, 작가의 우당퉁탕한 일화를 90년대를 풍미했던 파파이스의 이색 메뉴 ‘케이준 라이스’에 얽힌 추억과 함께 버무려 낸다.
작품에 비중 있게 언급되는 K씨의 단편소설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는 김도연 작가가 실제로 장르소설 온라인 플랫폼 브릿G에 발표한 작품으로, 제4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이야기 부문 본심에 진출한 이후 단행본 『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에 수록, 출판된 바 있다. 출간을 위해 실제로 소설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던 당시의 상황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작가는 현실과 허구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메타픽션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자기 반영인지 모를 정도로 절묘하게 뒤섞인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그 경계를 허물며 더없는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한다.
“슬슬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우연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물론 문단 하나 수정하는 게 큰일은 아니었고, 겨우 세 번째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이 부분을 수정할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 K씨는 자신이 무슨 사이비 역술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본문 중에서
무언가를 집요하게 좋아하다 보면 세상을 구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한 번쯤 시네필의 쓸모를 고민해 봤던 사람들에게 고하는 내밀한 응원담
영화에 대한 막대한 애정과 더불어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조가 공존하는 ‘시네필’이라는 존재를 위시한 시니컬한 유머 역시 전작의 재미를 이어받는 지점 중 하나다. K씨는 단편소설 문구 하나를 바꾸는 일을 자꾸 영화와 비교하는 자신이 너무 시네필 같다며 부끄러워하는가 하면, ‘남들은 모르는 생소하지만 힙하고 쿨한 21세기의 새로운 감독들 이름이 줄줄이 떠올라야’ 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로버트 에거스나 아리 에스터밖에’ 안 떠오르는 스스로를 두고 역시 자신은 시네필은 아닌 것 같다며 속상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자기 규정이야말로 시네필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K씨는 자신이 쓴 소설 속 특정 문장을 바꿔 넣을 때마다 기묘한 우연이 계속되자, 운을 테스트하며 보고 싶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거나 그리운 추억의 음식이 재판매되는 소망을 빌다가도 점점 이타적인 방향으로 그 고민을 확장하게 된다.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만, 돌아온 것은 영화뿐만이 아니었고, 그러다 세상을 구하고 싶어진 시네필의 노력은 끝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독자들은 직접 목도하게 된다.
권말에 수록된 리뷰 역시 이러한 지점을 다정한 시선으로 짚어 내는데,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과 관련된 실제 일화를 인용하며 영화를 비롯해 무언가를 열렬히 애호하는 사람들의 진심과 이타성에 대한 따스한 응원과 감동적인 메시지를 더한다.
“영화는 결국 인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충실히 사랑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예술이다. 봉준호 감독은 “어두운 세상에서 아주 가끔씩 즐거운 일로 위로를 받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에서 좋아하는 케이준 라이스를 먹는 하루를 사랑하기에, 시네필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리뷰어 수트,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리뷰 중에서
줄거리
독립영화 스태프로 일하는 K씨는 얼마 전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 올렸던 SF 단편소설을 종이책으로 출간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나 출간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중 언급했던 영화가 소설 속 내용과는 달리 극장에서 정식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문제가 될 법한 대목을 수정하기로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화면이 깜빡거리는 듯한 노트북과 마주 앉은 채 고민하던 K씨는 이번에는 절대로 극장에 상영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 제목을 넣어 문장을 수정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영화가 정식 상영된다는 놀라운 소식이 다시 들려온다.
■구구단편서가 ONE 소개
‘구구단편서가 ONE’ 시리즈는 신진작가와 기성작가의 다채로운 단편소설을 출간하는 황금가지의 전자책 브랜드입니다. SF, 판타지, 호러, 로맨스, 추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한 편의 단편소설에 감상의 폭을 더해 줄 리뷰를 함께 곁들여, 짧지만 충만한 재미와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이야기의 참신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