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들려 드릴 이야기는 모두 비읍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음침하고 불온한 기운에 휩싸인 ‘비읍시’라는 미지의 도시를 배경으로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오싹하고 기분 나쁜 경험담을 담아낸 연작 괴담 시리즈
장르소설 온라인 플랫폼 브릿G에서 오랫동안 연재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인기 괴담 연작선 『비읍시 이야기: 사소한 재앙의 도시』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이유를 불문한 각종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비읍시’라는 노후한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익명의 화자들이 이곳에서 직접 겪었거나 목격한 기이한 일들을 회고하는 총 30개의 에피소드가 다중 시점으로 펼쳐지는 연작 소설이다.
‘사소한 재앙의 도시’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의 핵심적인 존재는 비읍시라는 도시 그 자체다. 비읍시는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근교 지역의 인프라와 비교적 저렴한 집값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지만, 도시 전반에 응축된 불온함으로 인해 이곳에 살았거나 방문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껏 깎아지른 수많은 언덕과 그곳에 몰려 있는 무당촌 같은 풍경도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도시 특유의 우울과 열패감에 잠식당해 자조와 비관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더 깊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라면서 나는 꽤 오랫동안 ‘난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게 될 거야’라는 굳건한 확신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었다.”
―『비읍시 이야기』 본문 중에서
비읍시라는 도시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군상극
시대의 불안이 만들어 낸 타자화라는 공포
1990년대의 시대상이 반영된 『비읍시 이야기』는 미니홈피, 쥬니어네이버, PMP 같은 고전 디지털 문화뿐만 아니라 유행했던 필기구나 먹거리, 편의점이나 독서실 등 당시의 생활 풍경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담아내며 보편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일률적 교육과 성장 일변도의 기치를 더 내세웠던 후진적 사회 분위기는 온갖 인간군상이 밀집된 비읍시에도 깊이 스며든다. 사소한 일에도 분노가 폭발하는 주민, 자신만의 취향이나 신념이 확고한 동급생 등 조금이라도 이질적이거나 눈에 띄는 존재들은 비읍시에서 노골적인 혐오와 기피 대상이 된다. 1부와 2부를 통틀어 『비읍시 이야기』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내면화된 방어 심리로 타인을 손쉽게 대상화하는데, 권말에 수록된 비평에서 이빗물 작가는 이러한 타자화의 함정을 지적하며 『비읍시 이야기』가 지닌 근본적인 공포를 해설한다.
“주인공은, 비읍시 사람이다. 그 역시 비읍시를 이루는 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온 화자는, 자신이 살던 곳을 ‘(특이한 사람, 특이한 일들이 많은) 낙후된 중소도시’로 규정하며 그곳으로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한다. 자신 역시 도시를 이루는 타자임을 망각한 채 타인만을 끝없이 타자화시킬 때, 우리의 언어는 공포가 된다.”
―이빗물 작가, 리뷰 「우리는 영원히 타자다」 중에서
비읍시라는 각자의 과거와 마주하고 작별하는 여정
『비읍시 이야기』는 후반에 이르러 리얼리즘적인 색채와 환상성이 더해지며 더욱 이색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2부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리을’이라는 인물과의 유일한 공통점 역시 비읍시 거주자라는 점인데, 리을은 비읍시를 먼저 ‘탈출’한 화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스스로 한계를 긋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를 압도해 버리는 비읍시라는 도시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낙후하고 지저분하며 각종 범죄와 사고가 매일같이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진단만으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에필로그에 이르러 다른 이름으로 명명되는 비읍시는 모든 이들의 내면에 웅크린 과거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각자의 어둠과 직면한 뒤에야 새로운 서사를 써 나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기며 『비읍시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기이한 여정을 마무리한다.
“『비읍시 이야기』는 불쾌한 공포 소설입니다. 저는 우리가 일부러 외면하는 현실의 종류 중에도 공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경험과 감각들을 언어로 꺼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독자들이 그것을 마주하고, 피하지 않고, 각자의 현실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구구단편서가 소개
다양한 테마의 큐레이션 단편집을 선보이는 황금가지의 전자책 시리즈. 첫 출간작인 매뉴얼 괴담 단편집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는 출간 직후 각 온라인서점 공포 소설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으며,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 『괴담과 사람들: 101가지 이야기』, 『낙석동 소시민 탐구 일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오디오북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오디오북으로도 제작되었다. 또한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보인 구구단편서가 한정판 에디션 3종은 인기리에 판매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