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으로 등단한 박 원의 첫 번째 소설 모음집 <브로콜리로 장식한 송어>가 출간되었다.
8편의 단편을 수록한 첫 소설집 <브로콜리를 장식한 송어>에서는 박 원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브로콜리로 장식한 송어>에서는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가 겪고 있는 불안과 심리를 ‘송어’라는 독특한 소재로 풀어간다. <애니메이터>는 아이를 갖지 못한 주인공과 자폐성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를 둔 여자를 통해 상실과 불완전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박 원은 흔할 수도 있는 소재, 상실감이나 상처를 하나씩 지니고 있는 인물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각 단편은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중심인물이 겪는 심리적 변화에 공감대가 커진다.
산란 전의 송어, 송이송이 브로콜리,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지나
생물학적 상상력, 삶의 돌파구를 찾다.
‘지나’는 35세의 주부이자 출장 요리사다. 남편인 ‘재석’은 회사에서 밀려나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재석의 집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감상하기로 했다. 동호회 회원 중에 한 사람이 직접 잡았다며 송어를 내민다. 지나는 생물로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고기의 선홍빛 살덩이가 섬뜩하고 생선회를 먹을 때도 제 살이 누군가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물고기의 쓸쓸한 눈빛을 볼 수 없어 숨죽을 때까지 먹지 못한다. 요리사인 지나 앞에선 한낮 음식재료에 불과하지만 음식재료 앞에서 동정심이 생기는 이중적인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지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고 실내에서는 음악 감상이 되고 있다. 요리를 만들고 있는 지나의 온갖 상념들이 어지러이 펼쳐지고 그 상념의 중심에는 지나와 재석의 아이가 있다. 1년 전 부부가 낳은 아이,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구십일을 살다가 숨을 거뒀다. 1년이 지났는데도 부부는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부에게 1년이란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정지해 있고 그렇다고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낼 수도 없어 답답하다.
송어는 산란을 하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그러다 그만 바다로 돌아가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는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알’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강으로 거슬러 왔던 것이다. 겨우 구십일을 인큐베이터에서 살다 갈 아이를 위해, 우리는 강으로 거슬러 왔던 걸까. 돌아가는 길을 영영 잃어버린 걸까 -본문 중에서
산란 전의 송어는 지나와 같다. 지나는 아이를 잃고 아직도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남편 재석 또한 갈 길을 잃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걸까?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생활도, 남편을 바라보는 다른 여자의 시선도, 그 여자를 의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지긋지긋하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고 그렇게 가슴 속에 쌓아둔 감정들이 그녀를 더욱 무미건조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나는 이제 그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산란 전의 송어와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주인공 지나.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모천 회귀성으로 말한다.
물이 바닥에 고인다. 송어는 강으로 돌아온 듯, 침대 위에 떠오른다. 힘껏 헤엄쳐 돌아다닌다. 종아리만큼 물이 차올랐을 때 지나는 침대 위에 눕는다.(중략)산란 직전의 송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담스럽게 뭉쳐진 브로콜리를 한 쌍의 송어 위에 한 점 두 점 떨어뜨린다. 브로콜리의 송이송이 뭉쳐진 이파리들은 송어의 수정된 알처럼 빛이 난다. 마치 산란을 하는 듯한 송어 한 쌍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본문 중에서
지나의 모습은 송어와 같다.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돌아오는 송어, 산란을 하고 돌아가지 못해 죽고 마는 송어의 모습이 자신과 같다. 지나는 아이를 낳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정말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
브로콜리의 송이송이 뭉쳐진 이파리들은 송어의 알과 같다. 송어의 산란은 모든 행위의 끝이며 다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지나는 송어의 몸에 브로콜리로 장식한다. 브로콜리를 송어의 몸에 얹는 행위는 산란하는 행위와 같고, 산란한 송어는 지나 자신이기도 하다. 지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흐르지 않고 고여 있던 1년의 세월과 죽은 아이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집에 서서히 차오르는 물과 브로콜리로 장식된 송어, 그 옆에 나란히 누운 지나의 행동은 산란을 마친 송어와 함께 다시 바다로 돌아감을 의미하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지루했던 삶의 돌파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