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일반적으로 대장부 하면 대의명분으로 무장한,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인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작 고전 자료들에 등장하는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 역시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이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들이며, 힘든 일을 당하고서 친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평범한 남자다. 그들이 남긴 편지에는 이 같은 그들은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진정을 담아 쓴 옛 편지를 통해 대장부를 재발견하며, 나아가 편지마다에 녹아 있는 삶의 다양한 면면을 통해 오늘날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2007년 대한민국, 대장부의 희망을 묻다
대장부란 무엇인가?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침에 햇빛을 받는 쪽은 저녁에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핀 꽃은 먼저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운명의 수레는 재빨리 구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점을 기억하고 세상에 뜻이 있다면 잠시의 재난을 이기지 못해 청운의 뜻까지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장부는 언제나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을 가슴에 품고 있어 천지가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안에 있는 듯 가벼이 여겨야 한다”고 대장부를 정의했다. 이처럼 과거에 그들은 젊어서 큰 뜻을 세우고, 곧은 의지로 신념을 지키며 세상과 백성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용맹스런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한때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청운의 꿈을 좇았던 시절이 있었지’라며 당시를 추억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하며, 재테크니 세테크니 하는 각박한 현실 앞에서 ‘청운의 꿈’과 포부는 이제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세상이 전과 달라졌다.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걸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지 이미 오래다.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급증했고, 각 분야에서 여성 주자들이 선두를 달리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와 비례하여 곳곳에서 ‘남성들의 위기’를 논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은 한때 대장부를 꿈꾸었던 모든 남자들을 긍정하며, 그들의 마음을 위안하고자 한다.
대장부의 진심을 훔쳐보다
이 책은 조선 남자들이 진정을 담아 쓴 편지를 묶은 것이다. 선비들이 붓으로 쓴 편지에는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너무도 인간적인 남자들이 살아 있다.
일반적으로 대장부 하면 대의명분으로 무장한,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인물로 생각하기 쉽다. 역사 속에서 편견이 입혀지고,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들 역시 평범한 친구였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으며,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했던 남자였다.
알다시피 김정희는 유명한 추사체로 초의 선사에게 보고 싶다고, 차를 보내달라고, 와서 같이 학문을 논하고 차의 인연을 이어가자고 편지를 띄운다. 벗의 마음을 헤아린 초의 선사는 단걸음에 벗이 귀양 살고 있는 곳으로 달려와 반년이고 1년이고 함께 머무르며 스승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었다.
이광사는 자기 때문에 자살한 부인 문화유씨의 무덤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차라리 같이 죽어 한무덤에 묻히는 것이 낫겠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이제 누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것 정성껏 마련해주며, 내가 필요한 것 챙겨줄까요? 누가 있어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며, 의심나는 것은 누구에게 물어볼까요? 해도 달도 별도 시들지만 내 가슴에 쌓이는 한은 사그라지지 않소”라며 혼자 남아 살아갈 날을 걱정한다.
그리고 유배를 떠나오면서 헤어지게 된 어린 막내딸이 보고 싶어 부정이 절절하게 넘쳐흐르는 편지를 보낸다. 너무도 사랑했던 막내딸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부자리 정리하는 일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옷을 벗어 개어두는 것까지 일상에서 지켜야 하는 일들을 자상하게 가르치기도 한다. 어머니라도 살아 있었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조금은 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딸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현실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기존 역사에서 만났던 선비들과는 다른, 평범한 한 남자로서의 대장부를 만나게 된다. 친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박지원이나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흘리는 이순신 등 기존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그들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 희망 메시지 ―형식의 간소화가 마음의 간소화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편지는 사람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매력적인 매체다. 글자들 속에, 행간에 쓰는 이의 진솔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생각해보면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본 지 참 오래되었다. 마찬가지로 손으로 편지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다.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편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적 감동을 얻기는 참 힘들다. ‘디지로그’ 혹은 ‘아나로그’라는 신조어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손글씨에서 전해오는 잔잔한 그리움이 그리운 요즘이다.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그에게 편지 한 장 띄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