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작가 타계 1주기 추모 특별 보급판!
맑고 투명한 감수성과 존재의 심연을 뒤흔드는 통찰,
여성의 삶과 정체성을 향한 끝없는 집념
김지원이 일군 40년 문학 인생의 총체, 『김지원 소설 선집』
김지원의 소설에는 늘 바람이 분다.
방향을 알 수 없이, 존재를 뒤흔드는 바람이.
『김지원 소설 선집』(전 3권)은 김지원 작가 타계 1주기를 맞아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고 보전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조용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의 작가로 기억되는 김지원은 맑고 투명한 감수성과 존재의 심연을 뒤흔드는 통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해온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가지고 있다. 본 선집에서는 첫 소설 「늪 주변」, 등단작 「사랑의 기쁨」부터 제2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랑의 예감」까지, 김지원의 중․단편 소설 가운데 문학적 가치와 의의가 높은 작품들을 엄선하고 총망라했다. 그의 작품 전체를 꿰뚫는 주제인 사랑과 화해와 공존은 소통의 부재와 존재의 결핍 속에서 부유하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김지원 소설 선집』은 고(故) 김지원 작가의 타계 1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에 담긴 뜻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를 바라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제작되었으며, 출간 후 1년 동안 보급가로 판매될 예정이다.
폭설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진주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진주를 의지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진주에게 다른 연인이 생기면 소외될 것을 걱정하여 그녀를 매사에 묶어놓으려 한다. 어느 날 진주 앞에 기(起)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미스 오의 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기에게 진주는 까닭 모르게 이끌린다. 진주가 집에 혼자 있는 엄마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엄살 부리는 엄마를 그대로 놓아두라고 함부로 떠들어대는 이 거친 남성에게 진주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결국 진주는 엄마를 한국으로 보낸다. 이렇게 진주는 남편과 엄마로부터 온전하게 혼자가 된다. 진주는 기와 정식으로 결혼식까지 올렸지만 기는 가정이라는 틀을 거부하고 한 여성의 끈에 묶여 있기를 거부한다. 진주는 어머니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났고, 한 남자의 뜨거운 사랑도 받았고, 그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내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의 규율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진주와 기의 그 위태로운 사랑도 결국엔 기라는 남성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잠과 꿈
혜기는 무역 회사 주재원인 남편 순구가 요즘 들어 출장이 더욱 잦아 외로워한다. 어느 날 혜기는 다섯 살 난 아이 완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여고 동창이자 같은 직장동료였던 서윤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혜기와 서윤의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들은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전화번호를 주고받는다. 서윤은 동생의 대학시절 강사였던 남자와 결혼했는데,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혜기는 서윤의 집에 가서 그녀의 남편을 만난다. ‘선생님’은 서윤이 보는 앞에서도 거침없고 유혹적인 태도로 혜기에게 접근하고, 혜기는 서윤이 신경이 쓰이면서도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느낀다.
한편 혜기의 남편 순구는 경옥이라는 젊은 여자와 불륜관계에 있다. 순구는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떠난 나이아가라 여행 중에 이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참회라기보다는 자기 친구와 바람이 난 경옥에 대한 질투와 원망, 애정이 뒤섞인 것임을 혜기는 불길하게 감지한다. 결국 둘은 재회하고, 혜기 또한 무미건조한 순구와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날 탈출구로서 선생님의 노골적인 구애를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혜기는 순구와 헤어져 아들 완이를 데리고 서울로 귀국하고, 경옥은 바라던 대로 순구와 살림을 차리게 되지만 언제 자신도 혜기처럼 버림받을지 몰라 불안해한다.
★작품 해설
김지원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그리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 문학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남겨놓은 “나는 가끔 동그라미라는 생각을 한다. 그 동그라미는 커진다. 아니, 안 커지고는 배겨 낼 수가 없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힌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어떤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문학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일 수 도 있다. 어쩌면 무한한 포용력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동그라미에서 김지원이 꿈꾸었던 ‘구원의 사랑’을 본다. 이 동그라미 속의 이야기를 김지원의 소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문학과 인간, 삶과 사랑이 모두 하나가 된, 그녀가 그려낸 그녀만의 세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_ 권영민(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