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만다라를 노래하는 작가 한승원이 본 강의 내면 풍경”
우리 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녹아든 에세이 문학의 명저!
영산강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흐른다. 남도 산하 350리를 적시는 강 굽이마다에는 잊혀진 우리 문화와 역사의 원형들이 고스란히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장흥 출신의 문학가 한승원은 고향의 젖줄을 따라가면서 숨 가쁜 도시화 물결에 뒤로 밀려났던 전설과 신화, 문화와 역사 이야기들을 은빛 수면 위로 건져 올린다. 그리고 작가 특유의 소박한 언어로 그 이야기들을 결이 고운 무명베처럼 직조하여 독자들에게 독보적인 미학의 풍경을 보여준다.
담양 가마골에서 영산강은 시작된다. 한국전쟁 당시 파르티잔과 국방군 간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이곳은 이제 세월의 풍광이 묻어 고요하고 적적하다. 조금 내려간 곳에 있는 밤골에 전우치의 전설이 남아 있다. 전우치는 하늘에서 천도복숭아를 따오고 밥알을 품어 나비를 만들었다는 신화 속 인물이다. 민중 정서를 대변하는 영웅으로서 부패한 권력층을 희롱하고 가렴주구에 절망한 백성들을 도왔던 전우치는 화순 운주사에서 새 세상을 기원하며 돌로 미륵을 조각했던 민초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환상이다. 이러한 민중 문화는 대취한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을 읊조리던 푸른 그늘의 송강정, 해남 윤씨의 고택으로 유교적 만다라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녹우당의 양반 문화와 함께 영산강 문화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지류인 황룡강을 따라 백우산 아래로 가면 월봉서원이 있다. 월봉서원 빙월당에는 수십 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퇴계 이황과 이기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고봉 기대승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 참 선비들의 사귐은 나이나 지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이 이룬 학문적 성취를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백 리 길을 걸어 찾아갈 만큼 순수하고 고고한 것이었다. 기대승의 선비 정신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히면서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기세훈 고택에서 그 향기를 확인할 수 있다.
영산강 유역 땅 중에서 작가를 가장 황홀하게 만드는 곳은 영암 땅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그윽한 분위기가 떠도는 곳은 구림이다. 구림에서는 왕인 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났다. 주지봉 문산재에서 50미터 올라간 곳에 큰 석인상이 있는데 아마도 왕인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구림 냇물에는 처녀가 떠오는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는데, 창피하게 여긴 부모가 버렸지만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깃털로 보호하고 아이가 커서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운 도선국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래서 땅 이름이 비둘기 구 자가 들어간 구림(鳩林)이라는 것이다. 부근의 서호면 엄길 마을에는 기원전 300년경에 세워진 매향비가 있는데 미래에 나타나실 미륵 부처님을 위해 향나무를 바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발원자를 ‘미타계 천만인’으로 기록하고 있어 미륵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 즉 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산강이 흘러서 닿는 목포 앞바다에서 작가는 ‘목포의 눈물’을 생각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엄혹한 군사독재 아래서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러 야구장에 갔고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또 불렀다. 유독 목포에서 저항의 문화가 발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바다의 섬들로 숨었던 동학농민군들이 후손들에게 그러한 정신을 물려주었던 것은 아닐까? 목포가 낳은 저항적 예술가들은 너무나 많다. ‘이광수 류의 문학을 매장하라’고 절규했던 문학가 김우진에서 ‘황토’로 유명한 김지하 시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최초의 본격 여성 작가로 우뚝 섰던 박화성, 권위적 체제 밑에서 자유를 향한 의지를 격렬한 어조로 노래했던 시인 최하림 등등.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움직여 왔던 저항의 에너지가 이제는 세계를 움직이게 에너지가 되기를 작가는 바란다. 목포 앞바다로 흘러들어간 영산강물이 자긍심을 잃지 않고 각처의 바다로 흘러가 온 세계의 물결을 출렁이게 하는 것처럼.
옛사람들에게 강은 길이었고 생활의 터전이었으며 여러 빛깔의 문화들이 흘러가는 소통의 통로였다. 영산강이 흘러간 곳마다 주저리주저리 열린 신화와 문화와 역사의 열매들. 작가는 시간이 흘러서 누구도 기억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누군가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을 키워준 고향 산하의 젖줄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담양에서 목포까지 영산강 물줄기와 그 유역 일대를 샅샅이 탐사했고, 고을마다 남아 있는 희귀한 설화와 도서관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는 책들을 뒤졌다. 비록 고희의 나이지만 청년의 풋풋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대가의 우리 강 문화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