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평>
내 친구 용택이네가 살던 섬진강가의 집은 돌아가신 용택이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손수 지은 집이다. 용택이네 아버지는 이 집 뒷산에 묻히셨다. 용택이네 아버지는 농사꾼이었다. 한평생의 농사일을 통해서 삶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신 분이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딱히 책을 들고 공부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는 게 전부 공부인 것이다.
용택이네 엄마는 놀라운 엄마다. 용택이네 엄마는 짐승이건 곡식이건 채소건 간에 자라려 하는 것들을 자라나게 하고 살려는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용택이네 엄마는 그 힘으로 자식도 길렀고 남편 수발도 들었다. 용택이네 엄마는 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세상 사는 이치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짐승의 관계가 어떠해야 되는지를 훤히 잘 알고 있다. 알 뿐만 아니라 한평생 노동으로 그 앎을 실천해왔다.
용택이의 글들은 용택이네 엄마의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삶과 긴밀히 사귀는 언어의 건강함이다. 용택이의 문장 속에서 삶은 말에 기대어 있지 않고,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 거기에는 관념의 조작이 없고 기발한 이미지나 남을 놀래키려는 수사학적 장치가 없다. 그의 언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끝끝내 단념하지 못한 한바탕의 운명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라야 옳을 것이다. 삶은 영원히 아날로그인 것이다. - 김훈 - 소설가, 자전거 레이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사랑한 사람들과 그리움에 대한 진솔한 고백
4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시인으로 한결같이 살아온 작가 김용택의 신작 산문집 《사람》이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시인 김용택의 좌충우돌 학창시절부터 대책 없이 암담하던 청년시절,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글을 써내던 문학청년기를 거쳐, 평생의 업으로 알고 섬진강의 물빛만큼이나 맑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담은 《사람》은, 오늘의 김용택을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한 휴머니즘의 절창이다.
늘 아이들과 함께 뛰노느라 나이를 먹지 않을 것만 같던 그도 어느덧 예순 고개를 넘겼다. ‘들으면 곧 이해한다’는 이순(耳順)의 문턱을 갓 넘긴 시인 김용택은, 바람처럼 흘러가버린 인생의 뒤안길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삶에 무늬처럼 찍힌 사람들을 추억하며 웃고 울고 그리워한다. 김용택은 《사람》에서 인생의 지표가 되고 때로는 삶 그 자체였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소박한 문체로 풀어놓는다.
《사람》 속에는 김용택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리 방목사업을 하다 망하고 동생들의 자취방에서 폐인처럼 지내던 그가 어떻게 선생의 길로 들어섰는지, 문학의 ‘문’ 자도 모르던 그가 우연히 문학에 눈을 뜨게 된 사연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가슴 뭉클하다.
또한 《사람》 속에는 잊혀져가는 1960~1970년대의 정서와 낭만이 가득하다. 시골 읍의 중심이었던 ‘차부’에서 벌어지는 동네 젊은이들의 패싸움과 마음에 담은 여인을 위해 버스정류소를 겸한 상점에서 하늘색 스카프를 사던 일, 논두렁에 불을 지펴 고기를 삶으며 천렵을 하고 토끼 사냥, 꿩 사냥을 하며 숲을 뛰어다니던 일화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향수를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군부에 짓밟힌 패기와 밤을 새워 시와 정치와 사랑에 대해 결코 끝나지 않을 토론을 벌이던 열정의 밤 또한 《사람》 속에 있다.
김용택의 눈을 열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귀를 열어 사람에 대한 너그러움을 알게 하고 코를 열어 자연의 냄새를 맡게 해준 사람들, 그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향기로운 이야기가 바로 《사람》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집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향해 그의 가슴으로 쓴 고백이다. 그의 인생에 진하게 남고, 앞으로도 오래 남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읽는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또한 본문 사이사이에 삽입된 김용택의 시와, 김용택이 사는 시골 마을과 그곳 사람들을 찍은 정겨운 흑백사진이 그의 글과 어우러져 오랜 여운을 남긴다.
김용택, 그를 키운 건 팔할이 ‘사람’
시인 김용택, 그는 ‘사람’ 속에서 ‘사람’으로 컸다. 집집마다 식구가 많았던 그 옛날 시골 동네에서도 특히 그의 집에는 사람이 끊일 날이 없었다. 온갖 장수들이 짐을 맡기고 때때로 들러 끼니까지 해결하는 ‘동네 사랑방’이 바로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집 앞을 지나는 거지도 상으로 ‘모셔다’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사람’ 속에서 ‘사람’을 보며 자란 그의 글 속에서 늘 사람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배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시를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 이름 모를 풀꽃에게도 정성을 쏟으며 살았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그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곧 자연이라며, 고운 꽃나무를 보듯 사람을 보는 그의 《사람》에는 진심과 진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중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은 가르침이 있다.
마음을 치유하는 글쓰기
김용택, 그의 글에는 고향이 있다. 메마른 도시적 삶에 찌든 사람들이 그의 글을 찾는 것은, 그의 글에 바로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흙냄새 물씬 나는 질박한 그의 글에는 시골과 시골 생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에게는 사람이 자연이고 고향이다. 무너져가는 농촌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정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매한가지다. 사람 사이에 있으면 그에겐 어디든 고향이다. 푸른 하늘과 개운한 솔잎향과 단 황토의 냄새가 그의 글에서 피어오른다. ‘고향을 가진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그의 글은, 각박한 삶에 지쳐 고향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바로 포근한 고향이나 다름없다. 사람다운 것을 되새기게 하는 힘이 그의 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