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비전이란 말이야!
민주당 신세대 지도자들이 말하는 미국정치의 비전
미국정치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플랜>에서 저자들은 미국의 변화를 위해 미국의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젠다로 정리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는 클린튼 대통령의 영광을 함께 만들고 백악관에서 함께 일했던 클린턴의 최측근으로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들이다. 브루스 리드는 민주당 창조적 정책통의 최고봉으로, 람 에마뉴엘은 하원의원이자 선거캠페인의 최고봉으로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의 미래를 이끌 신세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두 저자는 “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다도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집착하는 것”을 미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즉 두 저자는 미국정치의 현실을 진짜 정치의 결여와 가짜 정치의 과잉으로 진단한다. 그리고 두 저자는 책 제목(The Plan- Big Ideas for America)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잘 정리된 기획서와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플랜은 저자들이 미국정치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적 비전이며, 아울러 오랜 정치경험과 미국과 민주당에 대한 강한 열정, 클린튼 행정부의 성공의 기억을 무기 삼아 마련한 민주당 부활의 전략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미국이 해답을 내놓아야 할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5개의 아젠다로 압축한다. ① 국민과 국가간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 ② 재정신뢰도 회복과 복지제도 개혁 ③ 서민을 위한 세금개혁 ④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새로운 전략 ⑤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안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굵직한 아젠다 각각에 대해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실현가능한 창의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데 책의 3분의 2를 할애한다. 이들의 정책 아이디어의 유용성과 정확성이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현실이 어떠하며 문제는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디부터 풀어야 하는가, 이 대안으로 무엇이 나아질 수 있는가를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열정과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준다.
두 저자가 기획입안한 미국정치와 민주당의 플랜은 정확성과 유용성 여부를 떠나 문제의식에서 대안마련까지 일관된 체계로 자기완결적 청사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다. 더욱이 선거관련 정책 자료집에서는 만날 수 없는 현실 정치에 대한 애정 어린 분노, 확신에 찬 신념, 문제해결의 집중력과 넘치는 창의성, 미국과 민주당에 대한 무한한 열정 등이 곳곳에 스며들어 논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의 설득력은 더욱 배가되고 있다.
부끄러운 한국정치에 대한 아프고 유용한 자극
모든 나라의 정치가 처한 문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것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이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토로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게 된다. 도무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정치의 그 한없는 무능과 이중성, 유권자를 분노케 만드는 그 변화무쌍한 능력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현재의 미국정치를 “광란의 정치꾼”들이 “정치 제일주의”를 기치로 이끌어 가는 당파적 정치라고 규정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당의 정치꾼이 단지 상대당보다 영리하기만 되던 옛날”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를 내놓는 비전 정치의 시작이 그 결별의 이정표라는 것이다. 한국정치에도 적용되어야 할 뼈아픈 충고이다.
아울러 저자들은 매우 전투적으로 민주당의 전략을 논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공화당에 대한 불평이 아닌 민주당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부시에 대한 반대를 넘어 “미래에 이 나라가 따라갈 명확한 대안적 경로”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유권자 커뮤니케이션 기법으로 국내에서도 명성을 얻었던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대한 비판은 신랄함 그 자체다. “공화당이 미국인의 눈을 속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고, 민주당도 똑같은 어둠의 기술을 익히면 곧 이길 수 있다”는 접근법으로는 민주당의 부활은 불가능하다며 “어둠의 기술”로 치부해 버린다.
민주당이 극복해야 할 것은 공화당에 비해 뒤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에서의 무능이 아니라, 21세기 과제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미래 비전에서의 무능이다는 지적이다. 대신에 저자들은 나라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는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자고, “국가적 목표를 갖는 정치”를 통한 진검승부를 하자고 주장한다. 오늘날 오바마 현상 등 민주당의 새로운 부활은 단순한 이미지 정치의 승리가 아니라 이러한 창조적 정책 비전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탄탄한 토대로서 작용하는 결과라 할 것이다
이 책이 선보이는 낡은 정치에 대한 정곡을 찌르면서도 점잖게 분노가 묻어나는 세련된 정치비평은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물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플랜의 완성을 향한 저자들의 열정과 그 성취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어 부러움과 허탈감을 동시에 선물하고 있다.
이 책은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의 자기완결성을 갖춘 모범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어, 마치 집짓는 사람들이 또 다른 설계도에서 얻게 되는 영감 같은 유용한 자극을 한국정치에 제공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정치적 성향이 무엇이든지, 이 책에 실린 생각들이 우리들 앞에 놓인 큰 도전에 대해 여러분들의 생각을 자극하길 바란다. 여러분이 우리 계획의 세부사항에 대해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그 뒤에 놓인 정신을 가슴에 품기를 촉구한다.”며 미국인들에게 했던 저자들의 호소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미국의 정치인이 고민하고 있는 정책대안을 통해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사회에 대한 이해라는 또 하나의 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