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쪽 끝 국경지대,
잃어버린 땅에 펼쳐져 있는 우리역사로의 기행
<백두산을 오르며 만나는 우리역사>는 21명의 ‘백두산역사탐방단’이 8박9일 동안 압록강 하구 단동에서 동해가 보이는 두만강 하구 방천까지, 한반도 북쪽 끝 조·중·러 국경지대를 돌며 우리역사 현장을 기록하고 감흥을 정리한 책이다. 백두산역사탐방단은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필두로 민족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 우리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이 책에는 우리민족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중국대륙에 남겨진 우리역사를 뜨겁게 만나는 1,396km 대장정의 기록이다. 먼 고대사 유적에서 현대사의 모순과 갈등의 역사가 현장감 있게 망라되고, 근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간절한 희망들이 깊이 있게 더해진다.
꼭 한번 올라야 할 산, 백두산
사무치는 민족애이여도 좋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그리움이여도 좋다.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열망이어도 좋다. 백두산은 우리가 꼭 한번, 발을 딛어야 하는 산이다. 이 책은 그곳에 오른 사람들이 가슴으로 그리고 발로 쓴 책이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의 장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어찌 자연의 신비로움만이 일렁이겠는가? 민족의 비극과 이념의 장막에 가려진, 그래서 누구나 가보고 싶지만 누구도 쉽게 가기 힘든 땅, 한민족의 역사적 자부심과 비극적 애환의 중심에 우뚝 백두산이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쓴 일행은 모임 이름을 ‘백두산역사탐방단’이라 붙였을 것이다.
중국인에게 백두산은 창바이산(長白山)이다. 우리가 민족의 영산이라 부르던 백두산은 이제 이름에서부터 완전히 탈바꿈되고 있다. 중국은 백두산을 중국 10대 명산으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백두산 관광개발에 나서고 있다. 2009년 백두산을 찾은 관광객은 100만명을 넘었다. 그 중 한국인의 비중은 점점 줄어 20% 남짓으로 역전되고 있다 한다.
백두산역사탐방단은 백두산에 중국 쪽 등산로를 따라 각각 세 갈래(남파, 북파, 서파) 길로 3번을 올라 백두산의 기상을 체험했다. 백두산 정상의 철사줄 국경선이 가로질러진 또 다른 분단의 현장에서 민족의 시원으로서의 백두산이 품고 있는 길고 오래된 우리 민족사의 이야기 산맥을 고스란히 풀어내 전해준다. 백두산 중국화가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백두산이 품고 있는 숨결은 온전히 우리의 것임을 우리역사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매년 6월 말부터 9월까지는 백두산에 오르는 최적의 여행시즌이다. 이 책은 충만한 역사의식으로 천지에 다가가기 위한 사전 지식과 우리가 천지에 오르면서 무엇을 골똘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웅변하는 길잡이다.
잃어버린 땅에 남아있는 우리역사의 숨결을 찾아
백두산역사탐방단은 굽이굽이 민족사의 아픔이 깃든 국경지대를 달리며 역사의 의미를 글과 사진과 그림에 담았다. 저 멀리 고대 단군의 이야기에서부터 항일 빨치산의 자취와 분단의 비극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역사 이야기다.
이 책은 우리역사 체험공간을 공간적으로 한반도와 맞대어 있는 중국과 러시아 대륙의 접경까지 확장한다. 시간적으로 분단으로 함몰되듯 비어버린 근현대사의 단절과 망각의 시간대를 복원해낸다. 뒷전에 밀려있던 한반도 북쪽 끝 국경지대에 펼쳐진 우리역사의 현장을 샅샅이 소개하는 역사기행의 모범답안이다.
역사탐방단이 대장정을 통해 누빈 단동, 집안, 장백현, 이도백하, 백두산, 용정, 연길, 도문, 훈춘, 장춘, 심양의 중국 땅들은 모두 우리역사의 한 시대를 뜨겁게 증언하고 품고 있는 땅들이다. 그곳에 가면 고구려와 발해를 만나고, 동북아 외교사에서의 조선의 길항의 흔적을 만나고, 조선 끝자락의 비운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을 만나고, 식민지배의 처절함을 만나고, 항일투쟁의 기상을 만나고, 분단의 아픔과 가슴 먹먹한 북한의 실상을 만날 수 있다.
역사적 인물들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안중근을 만나고, 윤동주와 문익환을 만나고, 독립투쟁의 큰 별들인 이회영, 이청천, 양세봉, 김좌진, 홍범도를 만날 수 있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의 흔적들도 만나고, 눈물로 두만강을 건너 간도를 개척했던 이민자들의 개척의 삶도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 뿐이랴, 멀리 소현세자와 더 멀리 대조영과 광개토대왕과 주몽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역사현장에서의 유적과 유물에 남은 숨결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묻고 찾아 발로 만나는 생동하는 역사적 조우이다.
또한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이 만들어 내는 역사왜곡에 대한 비판적 답사의 모범도 보여준다. 만리장성의 기점으로 고구려의 호산산성을 꾸며대는 것에서 집안박물관의 왜곡전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일사양용(一史兩用)이론과 고구려의 중국 지방정권론, 지금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요하문명권과 새로운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우리역사의 중국예속화 작업에 대한 비판들이 곳곳에서 날카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의 현대사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 반성과 성찰, 미래에 대한 새로운 다짐들을 자극한다. 그곳의 역사현장에서 느끼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역사체험의 이중성은 우리역사 읽기의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역사의 위대함을 읽는 뿌듯함, 민족사의 비극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절절함, 우리역사에 대한 왜곡과 이를 어쩌지 못하는 현실의 답답함, 이 책은 이러한 모순적이면서도 너무도 현실적인 우리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이 책의 진짜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