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서 사건을 기록하다!
- 2008년 11월 19일(세종캐피탈 압수수색)에서 2009년 5월 30일(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까지 법조 출입기자들이 기록한 180여일의 취재보고서로 사건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음.
- 정치적, 이념적 해석을 배제하고 취재기자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검찰 수사의 착수와 경과,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책임론을 소개
- '박연차 게이트'를 취재한 신문사 법조팀 기자 전원이 참여한 현장의 생생한 기록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적힌 유명한 문구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는 낮에 날지 못한다. 황혼 무렵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역사의 기록이야말로 미네르바 부엉이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념과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기까지 세월이라는 약도 필요하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곳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였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자의 자세와 입장이라는 측면에서 묘한 중의적 암시를 던져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5월 23일)를 앞두고 2009년 상반기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지혜의 부엉이가 이제 우리 사회에 날아오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게이트'를 본격적으로 다룬[노무현은 왜 검찰은 왜](박희준 외 4명, 글로벌콘텐츠)가 출간되었다. '박연차 게이트'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1심) 이후 검찰의 '별건(別件)수사', '표적 수사', '저인망식 수사'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전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박연차 게이트와 법조 출입기자의 188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데서 알 수 있듯 '박연차 게이트'의 단초가 된 2008년 7월~10월 태광실업 세무조사에서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11월 박연차 게이트 1라운드 수사, 2009년 3월 2라운드 수사 재개, 4월 30일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와 5월 30일 국민장까지의 사건을 법조 취재기자들의 시각에서 파노라마처럼 그려내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각 사건들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연결함으로써 취재수첩을 다시 꺼내들어 읽는 것과 같은 현장감과, 딱딱함 없이 쉽게 읽히도록 기록을 풀어나갔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가는 검찰의 압박, 노 전 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의 방어와 해명, 팩트를 하나라도 찾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 열정을 긴박감 있게 따라 갈 수 있다.
- '法 앞에서 잘못을 추궁 받는 데에 전직 대통령이라고 성역이 될 수 없다.' VS '현 정부의 전직 정권 죽이기 차원에서 이뤄진 표적수사로, 정치검찰의 희생양이다.'
'박연차 게이트'를 바라보는 우리사회 시각은 극단적으로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입장에 따라 동일한 사안을 놓고서도 바라보는 프레임은 정반대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 같은 해석을 경계하면서 법조기자로서 검찰 수사를 지켜본 상황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조사 대상자가 세상을 떠나고 검찰 관계자들이 굳게 입을 닫아버린 상황에서 취재기자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정치적 입장과 이념성향에 따라 조망된, 또는 오해와 선입견이 개입된 시각과 기록이 역사의 진실인 것처럼 믿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아래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기자들은 주관적 평가와 의미 부여를 배제한 채 팩트, 즉 사실관계만 쓰도록 훈련받는다. 법조기자들이 사건을 기록하는 의미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욱 크다.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언급은 꼭 바로 이 책을 염두에 둔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그동안 우리는 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 가족이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상황을 몇 차례 경험했다. 수사와 재판의 결과는 공소장과 판결문으로 남아 있다. 국가기록으로 남은 1차 사료다. 당시의 언론보도도 있다. 이를 지켜본 국민과 여론의 동향도 기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수사와 언론, 여론의 움직임을 한 곳으로 모아 기록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특히 법조 외곽을 뛰면서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법조팀의 막내 기자와 수사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해설기사를 쓴 현장반장, 후배기자들의 기사 방향과 문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사건데스크까지, 사건현장 속에 있었던 기자들이 집필에 함께 참여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이 책이 사건의 전말을 온전하게 재구성해 낼 것이라고는 감히 기대하지 않는다. 먹줄을 치고 벽돌을 쌓은 다음에 기둥과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야 멋진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나서서 먹줄을 쳐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작업이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을 정리하는 건 기자들의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