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한 줄로 세상을 뒤흔든
대한민국 여기자들의 대담무쌍 취재기
문장 한 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한민국 대표 여기자들의 취재기와 기사를 엮은 [세상은 바꾸고 역사는 기록하라]가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여자이기 이전에 기자이고 동시에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살아가야 하는 여기자들의 치열한 삶을 ‘최은희여기자상’ 수상자 스물한 명의 기록을 통해 되짚어보았다. ‘최은희여기자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여성기자였던 추계 최은희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으로 한국 여기자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상은 바꾸고 역사는 기록하라]는 크게 여기자 고군분투기와 성차별을 넘어 전문기자로 우뚝선 여기자들의 맹활약기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여성 차별이 심하던 1960년대부터 여기자로서 현장을 누빈 신동식 기자의 활약상을 비롯, 취재원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추적하여 특종을 일군 조수진 기자, 포탄이 날아다니는 이라크 사막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상을 알린 강인선 기자 등 여기자들의 각양각색 취재기는 무협지를 방불케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기자들이 쏟아내는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방대한 주제를 다양한 형식과 깊은 지성으로 녹여낸 그들의 기사는 훌륭한 글쓰기 교본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기자 특유의 자부심과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고픈 열정으로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여기자들의 삶은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는 우리 인생의 멘토로 삼기에도 충분하다.
기자라서 행복한 이유
기자생활 내내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밥을 먹다가도 돌발 사안이 발생하면 기자실로 돌진하고, 출산 예정일 바로 전날까지 취재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전쟁터 한복판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등 여기자들의 삶은 다사다난하다. 하지만 오직 기자이기 때문에 못 만날 사람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못 갈 데 없이 곳곳의 사건과 사고 현장을 누빌 수 있기에 그들은 행복하다.
예리한 분석력으로 사회의 흐름을 잡아낸 여기자들의 기사는 세상과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눈과 귀가 되고,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씨앗이 되었다. 좌절하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끈질기게 부딪혀 이룬 그들의 특종은 그래서 더 보람되고 값지다.
좋은 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
기사거리로 삼을 수 있는 소재는 사회 곳곳에 널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것을 포착해내는 눈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좋은 기자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잣대가 된다. 여기자들은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어떤 장애물에도 물러나지 않는 끈기,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반복되는 일도 신선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힘, 여성 특유의 ‘감感’을 꼽는다. ‘여성 특유의 감’은 남성기자가 큰 줄기와 덩치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여성기자는 세밀한 가지들과 강의 지류들까지 놓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 무자비하고 가혹한 비난 일변도를 지양하고, 대상인물의 현실과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초한, 진정으로 개선을 희망하는, 명철하되 따뜻한 마음의 비판을 가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자정신” 또한 중요하다. 감수성 깊은 여성기자들이 빛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여기자가 아니라 기자다!
[세상은 바꾸고 역사는 기록하라] 속에서 흐르는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여기자의 역사는 여권 신장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자들은 변변한 숙직실이 없어서 편집국장의 책상 위에서 새우잠을 자다 굴러 떨어지고, 기사 마감에 쫓겨 취재원의 무례한 행동을 마음으로 삭이고, 팔자가 드세서 기자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기자는 기사로서 말한다”는 원칙 아래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전문기자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여기자들은 기자 사회 내부의 성차별 외에도 대한민국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적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힘썼다.
여성의 결혼퇴직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사회를 질타하고, 맞벌이 부부의 자녀양육 문제를 조명하여 자녀 양육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밝히고,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광고를 비판함으로써 이슈화하는 등 여기자들의 활약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확립하는 데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