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꿈 없이 살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
미국을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는 400년이 넘었다.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이 있는 미국 역사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역사의 드라마틱한 흥미성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 ‘초초강대국’으로 불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것도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말이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신생국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로 역사를 압축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의 절대다수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사기’라는 게 충분히 밝혀졌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건국 이전부터 주로 성공의 열망에 들뜬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다. 세상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철학은 낡아빠진 유럽이나 하라는 게 미국인들의 태도였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아메리칸 백일몽’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은 더욱더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꿈 없이 살 순 없으며, 현실이 고달플수록 꿈에 매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꿈은 어디로 갔나?
1607년 4월 24일 오늘날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근처의 체사피크만에 남자 144명을 태운 배 3척이 도착했다. 이들은 제임스 강 하구에 첫 번째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3년 후인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만의 플리머스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미국인들에게 플리머스는 ‘추수감사절’을 연상시키지만, 제임스타운은 ‘식인’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제임스타운은 미국과 영국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역사였고, 그런 이유로 포카혼타스 신화는 탄생했는지 모른다.
1620년 11월 11일 남자 41명이 메이플라워호에서 짤막한 자치 정부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것이 북아메리카 최초의 성문헌법으로 간주되는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플리머스라는 항구도시에 정착한 이들은 첫해 겨울에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반이 죽었다. 다음해에는 인디언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는데, 인디언들은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고 옥수수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10월 첫 번째 추수 후 감사절 파티를 열고 이날을 ‘감사의 날’로 선포했다. 이게 바로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은 인디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의 무덤을 파헤지고, 옥수수와 밀과 콩 낱알을 훔치고, 인디언들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추수감사절이 추수강탈절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이주민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던 것이다.
1682년 윌리엄 펜은 펜실베이니아로 건너왔다. 영국 찰스 2세가 그에게 뉴욕과 메릴랜드 사이의 넓은 땅을 하사했는데, 그는 아버지 펜의 이름을 따라서 펜실베이니아라 불렀다. ‘펜의 숲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델라웨어 강과 슈일킬 강 사이에 그리스어로 ‘형제애’라는 뜻을 가진 도시 필라델피아를 설계했다. 그는 투표에 의한 총독 선출, 평등주의 지향, 인디언과의 공존공생 등 진보적 정책을 펼쳤지만, 그의 삶은 험난하고 불행했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반신불수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죽은 후 세월이 흐를수록 이주민과 인디언들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펜의 ‘거룩한 실험’과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혁명은 ‘공포’와 ‘신화’를 먹고사는가? 미국의 독립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8년간 지상전과 해전을 합쳐 1,300번 이상의 전투가 벌어진 미국의 독립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 거기에서 살아남은 영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피신해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캐나다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역사가 크레인 브린턴은 “미국 혁명에는 공포정치의 흔적이 분명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탈출하지 못한 왕당파에 대한 가혹한 보복을 두고 한 말이다. 그후 미국은 전쟁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서 독립전쟁 최초의 영웅인 폴 리비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사실과 많이 다른 역사 왜곡으로 영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서 만들어진 신화라고 말한다.
1786년 여름, 전쟁 영웅이자 독립군 육군 대령인 대니얼 셰이즈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한 정치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700명을 이끌고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로 행진하며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그후 셰이즈는 무장한 병력 1,000명을 이끌고 보스턴으로 진군했고,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주동자 13명이 사형당하고, 셰이즈는 도주했으나 이후 굶주림에 사망했다. 이게 바로 ‘셰이즈의 반란’이다. 이 반란의 파장은 엄청났다. 정부 인사들이 강력한 통제 수단을 만들기 위해 ‘국가 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모든 주의 대표 55명이 ‘미국 헌법’을 만들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물론 이 미국 헌법은 기득권자들의 재산 증식을 위한 경제적 문서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말이다.
미국사에서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를 ‘도금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이른바 ‘날강도 귀족’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주의회와 연방사법부, 상원을 지배한 가운데 겉만 번지르르한 기만과 강탈의 기운이 충만한 때였다.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횡령을 저지르는 일을 밥 먹듯이 했다. 인디언들에게 돌아갈 예산까지 착복해 보호구역 인디언들이 굶주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1880년대 미국의 철도 산업을 지배한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는 대표적 ‘날강도 귀족’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받았다. ‘날강도 귀족’의 전성시대에 미국은 과연 ‘문명시대’를 거치지 않고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뛴 걸까? 이는 미국의 놀라운 압축성장이 초래한 진풍경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사와 미국 정치 이론의 필독서’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토크빌은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사회적 평등이 잘 실현되어 있고 사법권의 독립, 언론 자유, 지방자치 등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만개하고 있는 것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를 미국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이상과 현실을 보는 듯하다.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
미국의 역사가 파란만장과 더불어 우여곡절을 수반한 성공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미국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1956년에 출간된 찰스 라이트 밀스의『파워 엘리트』에 의해 실증적으로 부정되었다. 이 책은 3,0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미국의 대부호 275명 가운데 93퍼센트가 상속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이란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버리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자신의 성취 가능성에 대해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이념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의 사회현상에 이러한 이념을 적용하여 해석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어린이들이 어릴 때 흔히 부르는 동요인, ‘별에 소원을 빌 때, 네가 누구이건 중요치 않아. 너의 꿈은 이루어질 거야’라는 가사는 이 이념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 신화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너무 큰 성공을 했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미국이라는 몸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이라는 회충’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럽적인 정열을 미국적인 열정으로 대체시키’자고 했다는데, “우리의 역사 전체는 인류를 위한 신의 섭리의 마지막 노력과도 같다”는 그 자신의 말을 되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미국만 세계의 최고 선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미국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