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RICH)에서 내셔널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사유를 탈학제적 시각으로 추구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총서를 기획하였다.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이론적 과제들을 정리한 ‘RICH 트랜스내셔널인문학총서’ ≪고아, 족보 없는 자-근대, 국민국가, 개인≫, ≪이중언어 작가-근현대문학의 트랜스내셔널한 기원을 찾아서≫를 출간하였고, 이어서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길을 묻다≫, ≪‘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을 출간할 예정이다.
‘고아’는 가족 내러티브(family narrative) 밖에 놓여 있는 존재로,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자아와의 대조를 이루는 정체성이다. 가족 내러티브 안에 자리 잡은 규범적인 자아가 바람직한 ‘시민/국민’의 이상적인 모델로 기능하면서 근대국민국가의 사회적, 역사적, 정치윤리적 비전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범주를 정의하는 지표가 되어온 데 반해, ‘고아’는 그렇게 구성된 규범적 자아의 바깥(외연)을 구성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고아’는 또한 역사, 가문, 전통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족적인 존재로서 근대적 의미에서의 ‘인간’의 원형이기도 하며, 거침없이 떠돌고 방랑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이산과 디아스포라의 가장 강력한 상징(메타포)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아’는 가족 내러티브 밖에 존재하지만 ‘돌아온 탕아(prodigal son)’, ‘입양아(foster child)’, ‘상속자’ 등의 형태로 가족 내러티브로 다시 돌아오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이 내러티브의 규범성을 균열내기도, 강화하기도, 혹은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아’ 혹은 ‘족보 없는 자’는 경계적인 개념으로, ‘자아(self)’와 ‘반자아(self-to-be)’, ‘시민’과 ‘무국적자’, ‘인간’과 ‘비인간’ 등의 범주를 문제화하고 그 범주들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다양한 방식을 조명하는 데 유용한 지점이 될 수 있다.
≪고아, 족보 없는 자≫는 ‘고아’가 역사적 사실로서, 혹은 추상적인 메타포로서, 가족 내러티브, 규범적 자아(시민, 국민, 인간), 근대국민국가의 인식적, 정치적 체제 등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들을 탐구한 책이다.
≪이중언어 작가≫는 다중적 언어정체성을 지닌 이중언어 작가들을 국가별로 검토하여 근현대문학의 ‘트랜스내셔널한 기원’을 추적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근대문학’은 흔히 자국어로 쓰인 ‘민족문학’으로 자리매김되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 작가들이 쓴 일본어 문학을 위시하여 국적을 넘어 모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작업해온 이중언어 작가들은 민족문학의 그늘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근대문학 속에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접경지에서 이중언어로 작업한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한자리에 모아 그 속에서 이들의 위치를 점검하고 근대문학 자체가 민족문학이기보다는 일종의 트랜스내셔널한 과정에서 형성된 것임을 재고하고자 하였다. 앞서 이중언어 작가에 대한 개별적 연구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여러 국제적 이중언어 작가의 상황을 한자리에 모아서 일별하고 그 역사적 기원에서 현재까지를 검토해서 책으로 묶는 기획은 이 책이 처음이다. 향후 더욱 진척된 상호비교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고아, 족보 없는 자≫, ≪이중언어 작가≫에 이어 출간된 세 번째 책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길을 묻다≫는,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시상제도 제정을 기념하여 2013년 3월 29일에 개최한 심포지엄의 성과를 모은 책이다.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들을 비롯하여 상의 제정 취지 및 수상 대상 선정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분야는 그동안 동화 중심의 문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역사학의 오랜 편향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이 상의 제정과 시상, 그리고 이 책의 출판을 통해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분야에 활력을 부여하고 학계와 여론의 관심을 촉발해 나갈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민국가(nation-state)의 관점을 넘어 ‘초국적(transnational)/전 지구적(global) 시각’에서 한반도,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며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공존의 윤리’를 구현하는 작품들이 생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길을 묻다≫
고구려사 논쟁이 한창일 무렵부터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국민국가의 정치권력과 같은 텍스트로 짜인 ‘국사’들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폭로하고, 국사 패러다임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주장과 시각의 사회적 확산을 위하여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시상제도를 제정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각 급 학교에서의 제도화된 역사 교육과 사회 곳곳에 구축한 강고한 ‘진지’들을 통해 헤게모니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국사’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다. 즉 이 사회의 미래 시민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관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에서 ‘역전’ 혹은 ‘전복’의 단서를 찾은 것이다. 물론 입시제도에 영합하여 움직이는 어린이 및 청소년 역사책 시장 또한 ‘국사’의 ‘진지’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시상제도가 이 ‘진지’의 참호 벽 작은 틈에 내려앉아 뿌리내릴 ‘씨앗’이 될 것이다. 이 시상제도의 제정을 기념하여 개최한 심포지엄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길을 묻다》에서 초등 교육과정과 역사 교과서의 전반적 문제 고찰, 역사책에 실린 ‘지도’ 분석, ‘과학 영웅’ 서사 분석에 관한 글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초콜릿’을 소재로 실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진 ‘지구적 관계 맺기’에 관한 수업 과정을 분석한 글을 추가하여 이 책을 엮었다.
제1회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어린이 부문 대상은 ≪우리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해와나무), 장려상은 ≪제술관 따라 하루하루 펼쳐보는 조선통신사 여행길≫(그린북)이 선정되었으며, 청소년 부문은 대상 수상작 없이 장려상으로 ≪십대를 위한 동아시아 교과서≫(뜨인돌)가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