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은 어떤 곳인가
-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보물창고
규장각에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등 국가의 공식 연대기를 비롯하여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의궤, 국토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회화적으로 그린 지도, 《해동제국기》《열하일기》 같은 기행문, 개인의 일기와 문집, 생활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각종 고문서 등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역사학뿐 아니라 한문학, 지리학, 언어학, 민속학, 군사학, 미술사, 복식사 등 각 분야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줄 매력적인 자료들이 가득하다. 이 자료들에는 선조의 삶과 생각의 자취가 담겨 있고 그 시대인들의 문화역량이 함축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명품이라 부를 만하다.
이 책은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제목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품들은 그야말로 맛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만큼 규장각은 조선시대를 알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료들의 보물창고다.
규장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개혁을 펼치기 위해 만든 정조의 야심작
규장각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창덕궁에 세운 학문연구기관이자 개혁의 산실이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의 전당이자 유교 정치이념을 전파하는 중심기관으로 만든 것처럼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숙종 때 처음 ‘규장각’이라 쓴 숙종의 친필 현판을 걸고 역대 왕들의 글씨와 글을 보관하던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왕을 뒷받침할 정치 및 문화정책의 추진기관으로서, 역대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중심기관이자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정치 기관으로서 거듭 태어났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젊고 참신하며 능력 있는 인재들을 규장각으로 속속 불러 모았다. 정약용을 비롯하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규장각에 나와 연구하면서 정조 개혁정치의 파트너가 되었다. 규장각은 바야흐로 문화중흥을 이끌어 가는 두뇌집단의 산실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전통을 본받아 새 것을 창출한다)’은 규장각의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정신이다.
규장각, 그 수난의 역사와 현재
규장각은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간행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했다. 규장각의 분소라 할 강화도의 외규장각은 그 중에서도 더욱 가치 있는 자료들을 국방상 안전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외규장각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의궤 297책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반환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외규장각의 수난과 약탈당한 의궤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던 조선왕조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창덕궁의 규장각 또한 수난의 길을 걸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규장각은 폐지되고 소장 도서들은 1908년 제실도서帝室圖書로 명명되었다가 잠시 이왕직李王職(일제시대 궁내부) 소관으로 있었으나 1911년 11월 조선총독부 취조국으로 옮겨졌다. 일제의 관리하에 들어가는 불운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규장각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학에서 관리하게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규장각 도서는 1946년 경성제국대학을 승계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오늘날 규장각이 서울대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과정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오랫동안 도서관 소속으로 있던 규장각 도서는 1992년 독립 건물을 지어 지금의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6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의 한국학 기능을 합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출범했다.
규장각에서 찾은 보물들
이 책은 규장각에 소장된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적이라 할 작품들을 골라 그 내용과 저자, 탄생배경 등을 소개하고 그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새겨본다. 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어필御筆, 왕실 요양소였던 온양온천의 행궁 모습을 전해주는 온양별궁전도,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서인 <노걸대><박통사><첩해신어>, 조선시대의 베스트셀러 박지원의 여행기 <열하일기>, 실록제작의 전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실록청의궤>와 <실록형지안>,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의 지성을 대표하는 백과사전 <지봉유설><성호사설><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의 마이너리티 중인들의 기록인 <규사><호산외기><이향견문록>, 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없는 1872년의 지방지도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15년간 규장각 연구원으로 활동해온 필자가 제공하는 풍부한 시각자료와 흥미로운 일화들은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그 생생함과 구체성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규장각에 직접 들어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진귀한 보물과 만나는 것 같은 색다른 체험을 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