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네덜란드 덴하흐(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세 명의 특사를 파견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팩션. 시공간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1907년 덴하흐. 대한제국 황제의 비밀특사로 덴하흐에 온 세 명의 특사 가운데 한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2007년 서울. 열 살 된 어린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뇌질환에 걸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베일에 싸인 인물인 Q신부가 바티칸에 보내는 편지글과 그의 활동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연결된다. 100년 전 한일 강제병합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 작품은 묻는다.
1907년 네덜란드 덴하흐,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1905년에 일제는 강압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고종은 서울에 있는 각국 공사들을 상대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국권회복 의지를 전달하며 후원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에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덴하흐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극비리에 3명의 특사를 파견한다. 평리원 검사를 지낸 이준, 의정부 참찬을 지낸 이상설,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로 러시아 주재 한국공사관의 참사관을 지낸 이위종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침략행위를 폭로하고 국권회복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특사들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한다. 사실 만국평화회의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연 국제회의였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이미 식민지나 다름없다고 판단되는 약소국의 호소가 달가울 리 없었다. 열강들의 냉담한 태도에 실망한 특사들은 대신 만국평화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온 세계 각국의 신문기자들에게 눈길을 돌리고, 국제기자클럽에서 ‘한국인을 위한 호소’라는 연설을 하기로 한다.
연설을 맡은 이는 이위종이었다. 그는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해외에 살며 교육을 받은 덕택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그의 연설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대한제국의 억울한 상황에 국제적 여론이 모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7월 14일 특사 가운데 한 사람인 이준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이후 이상설과 이위종은 영국과 미국 등 해외를 돌며 국권회복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친다.
뒤늦게 특사파견 사실을 알게 된 일제는 고종을 강제 폐위시키고, 궐석재판을 열어 이상설과 이위종에게 각각 사형과 종신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이상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혁명당을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 병사한다. 황실 근위대 장교였던 이위종은 붉은 군대에 가담해 러시아혁명에 참여하고, 한인 부대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준의 죽음에 대해서는 병사설, 독살설, 자살설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이는 이준이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는 가운데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설은 독살설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전혀 새로운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2007년 대한민국 서울, 의문의 아동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나’는 바티칸 성좌에서 파견한 신부다. ‘나’의 임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뇌질환에 걸린 한 아이의 병에 대해 역학조사를 하는 것이지만, 실은 은밀한 임무를 하나 더 띠고 있다. ‘나’가 수행수녀 한 명과 함께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죽음을 맞는다. ‘나’는 한국 정부가 설치한 특별수사팀 소속 여검사 ‘지호’와 파트너가 되어 아이의 죽음에 대해 수사한다. 수사 도중 또 한 명의 어린아이가 숨진 채 국도 변에서 발견된다.
수사팀은 숨진 아이들의 몸에서 일본의 ‘도리이 문양’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도리이 문양은 100년 전 고종의 특사로 덴하흐에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준이 남긴 달걀에 새겨져 있던 문양과 똑같은 것이다. 이에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수사팀은 100년 전에 덴하흐 특사들이 거쳐 간 발자취를 되밟아가면서 두 아이의 죽음과 관련된 의문을 하나씩 풀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 잠들어 있던 역사의 일면과, 과거와 현재가 뒤얽힌 거대한 음모가 그 실체를 드러낸다.
작은 멋쟁이 나비들에 대한 기억
2007년 가을. 저자 김호수는 한 시립도서관 서고의 수북이 쌓인 먼지더미 속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만난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는 덴하흐의 세 남자. 몇 센티밖에 안 되는 작고 가냘픈 날개로 아프리카 북부에서 북유럽까지 날아간다는 작은 멋쟁이 나비들처럼 그들은 이름 없는 약소국의 특사로서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거기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다시 러시아로 돌아다니며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힌 조국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저자는 객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결코 조국의 현실을 잊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때마침 고종이 덴하흐에 특사를 파견한 지 딱 100년째 되는 해였다. 저자는 이들과 이들의 뜻이 영원히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