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는 20세기 초의 스마트폰
100년 전 들어온 근대 장치들의 이상과 현실은?
1923년 12월 22일자 신문에 실린 양화점(洋靴店) 광고를 보자. “시대의 요구에 적합한 이상적 실용품은 청년양화점”이란 홍보문구의 배경 이미지로 벌판을 질주하는 기차가 그려져 있다. 당시 기차는 바로 ‘시대의 요구’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기차가 조선 땅에서 처음 달리기 시작한 건 1899년이었다. 기차가 처음부터 이 땅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 정부 관리들조차도 기차의 정해진 발차시간에 불만을 터뜨리며 ‘어서 출발하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기차를 도입한 이들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시간을 지키지 않는 조선인’은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기차는 적절하고 강력한 계몽 수단이었다. 개통 후 30여 년 뒤, ‘청년양화점’ 광고에서 의미하는 기차의 이미지를 보면, 계몽은 그 전에 이미 충분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기차역 시간표는 이 땅에 처음으로 시계라는 ‘장치’를 선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100년 전 사람들과 달리 기계적인 시간을 지키는 삶이 옳고 당연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며 시간에 맞춰 생활한다. 하지만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시계의 리듬에 몸을 맞추어 살던 이들이 아니다. 이 땅에 시계는 처음에는 기차역 시간표의 모습으로 들어와 여성의 장신구, 과시적 문명의 기계로, 그리고 사이렌 소리, 새마을운동 노래 등으로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계몽은 무자비한 것이었다.
“어떤 소년이 몽둥이를 가지고 철도 위에서 놀다가 철도 위에 몽둥이를 하나 남겨 두었다. 일본인들은 소년을 붙들어서 총살시켰다. 이 범죄자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다.”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이 같은 증언은 근대가 우리에게 가한 폭력의 한 단면이다.
투시법이 서당을 몰아냈다!
양주삼 가족이 흰옷을 입지 않는 까닭은?
100년 전 세상의 사람, 사건, 사실을 하나로 엮어 읽는 흥미로운 인문학적 성찰
1919년에 조선으로 온 영국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서당 풍경(The School-old Style)」을 보자. 김홍도의 것보다 더 생동감 있어 보이는 당시 서당 풍경은 옹기종기 자유롭게 앉아 책 읽는 아이들의 소리로 들썩이는 듯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근대 학교, 공장, 도시를 표현한 사진이나 그림은 이와 다르다. 일정한 방향으로 도열한 학생, 노동자, 건물과 가로수는 소위 투시법(원근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총독부는 시정 2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엽서에 근대 학교와 전통 서당 사진을 한 장에 담아 보여준다. 총독부의 엽서에는 ‘질서’와 ‘무질서’를 대비시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한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근대의 장치가 일제의 강요를 통해서만 이 땅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소위 개화된 지식인들은 ‘문화주택’으로 지칭된 서양식 주택 속에 피아노가 있는 서양식 스위트 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1930년에 감리교의 초대 총리사 지위에 오른 양주삼은 흰옷을 입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경제적이지 못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시 미국 유학파로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은 1921년에 「오락은 화평의 근본」이라는 칼럼에서 행복한 가정의 취미생활로 피아노, 화단, 풍경화 등을 꼽았다.
“어느 가정에든지 때로 피아노 소리가 울려 나오거나 미릿따운 풍경화가 한 장이 걸려 있다 하면 그 가정의 단란하고 평화로운 소식은 반드시 그 한 곡조 울림과 한 폭 그림에서 얻어듣고 볼 수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김활란과 같은 인식은 신문 만화에서도 발견된다. 1931년 동아일보 ‘작금의 사회상’이라는 만화에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부자계급’의 문화주택과 부부의 고성과 아이 우는 소리가 뒤엉킨 ‘프롤레타리아’의 오두막집이 대조를 이룬다. 전자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후자는 싸늘히 식어 있다. 심지어 문화주택에서 버린 하수는 배수관을 타고 오두막 앞에서 배출되고 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문화주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멀었다. 당시 신문에는 토막집 강제 이전과 철거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토막 소제(掃除) 선풍”이란 표현도 보인다. “경성부에서는 계획대로 신당리 내에 산재한 토막 200여 호를 모조리 십일 내에 동소문 밖 정릉리로 철거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기사 내용은 1980년대를 전후한 서울 재개발과 수도권 신도시 열풍으로 반복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진보보다는 반복을 속성으로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같은 반성적 물음을 예기치 않게 던지며 근대라는 텍스트의 현재성을 환기시키곤 한다.
『근대의 역습』은 잘 알려진 역사보다는 신문 사회면에 스치듯 등장한 사람, 사건, 사실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우리 근대 풍경 이면의 진실을 읽어 낸다.책은 주제별로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시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현대의 감수성, 다시 말해 근대적 시간 제국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2장은 전통적 주체가 근대적 시각체제라고 할 수 있는 투시법적 지각방식을 어떻게 내면화하였는지, 그러한 지각방식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었고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장은 몸에 대한 지각방식의 변화를 토대로, 아름다운 몸에 대한 오늘날의 기준이 형성된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4장은 어린이의 발견이 삶의 공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5장의 주제는 문화주택이다. 여기서는 현대인이 꿈꾸는 스위트 홈의 이미지와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루었다. 6장은 백화점을 통해 자본주의의 논리에 길들여져 갔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7장은 근대의 비정함을 다루고 있다. 근대가 어떻게 일상 삶의 주체들을 길들였는지, 더 나아가 근대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차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이 깜짝 놀랄 만큼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우리를 디자인하는 오늘의 장치들’을 주목하게 한다. 스마트폰, 신용카드, 선거제도, 아파트, 고용 시스템 등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장치들을 보자. 흔히 우리는 편리한 삶을 위해 그러한 장치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과연 우리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로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런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장치들의 욕망에 따라 우리가 변해 가는 것은 아닐까?
『근대의 역습』은 현재의 삶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초로 우리를 안내한 후 “온갖 디지털 장치들이 감시에 대한 욕망, 통제에 대한 욕망, 자본에 대한 욕망을 편리한 삶, 안전한 삶, 스마트한 삶이라는 구호로 가린” 오늘의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100년간의 시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