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것이다!
철학적 사고의 물꼬를 열어주는 청소년을 위한 책!
영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 책구매 통계를 보면 주로 청소년기 도서 구매력이 제일 저조한 것으로 나온다. 유아기 때 그림책을 많이 사 주던 부모들도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은근히 책보다는 교과서를, 책보다는 참고서를 더 보기를 희망하게 된다. 학원과 과외로 점철된 청소년 인생에서 독서는 사치인지 모른다. 그만큼 청소년 시기에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청소년 인문 분야가 아주 조금씩 폭넓어지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성적에 도움이 되거나 교과 연계가 확실해 보이는 책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제일 멀리하는 장르가 뭘까? 깊이 생각하기에 머리가 아픈 ‘철학’과 이미 시효만료되었다고 여기는 ‘동화’가 아닐까.
10여 년 동안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아이들에게 철학적 사고의 물꼬를 열어주려 노력해온 희망철학연구소 선생님들은 어쩌면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한 건지 모른다. 10대가 질문하고 철학 선생님이 답을 하는 방식으로 꿈, 공부, 존재, 가족, 폭력, 인권, 환경, 국가, 경제 등 세상을 향한 온갖 질문들을 함께 나눈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로 많은 청소년 독자들을 확보한 희망철학연구소 선생님들이 이번엔 철학과 동화를 접목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였다.
동화라는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에 철학적 사고를 자연스레 녹여낸 청소년을 위한 철학 동화가 바로 《쓸모없어도 괜찮아》이다. 제목이 기똥차다. 쓸모없다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건 동화 그 자체를 뜻하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 아이들에게 동화는 성적이나 교우관계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쓸모없어 보이지만 철학적 사고의 문을 쉽게 열게 해주는 의미에서는 아주 큰 쓸모가 있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무용지용’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장자가 산길을 가는데 아주 큰 나무가 있길래 나무꾼에게 이 나무는 왜 안 배냐고 물었다. 나무꾼은 그 나무가 아무 쓸모가 없어 배지 않는 것이라 대답했다. 이에 장자는 그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자기 생을 다 살 수 있듯이 진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반대편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장자의 이야기가 녹여진 동화 〈낙우송 이야기〉도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장자의 이야기는 이 책 전체의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쓸모없다 여기기 쉬운 ‘철학’과 ‘동화’가 한데 어우러져 당장 눈에 띄는 쓸모는 없을지라도 깊이 있는 사고를 돕는 의미에서 큰 쓸모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플라톤에서 장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고를 이야기로 풀어낸 철학 동화
장자의 이야기 중 〈덕충부〉 〈소요유〉에서 따온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에는 플라톤의 예술론, 레싱의 〈현자 나탄〉 이야기, 데리다의 차이와 차별의 이야기, 칸트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장자, 데리다, 플라톤, 칸트 하면 머리부터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모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플라톤과 칸트를 몰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다 읽고 그 이야기가 내포하는 철학적 사고를 돕도록 작품마다 뒤에 ‘생각 꾸러미’로 엮은 질문들과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알려 주는 ‘작가 단상’도 친절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철학적 사고를 강요하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있어도 문제없다. 읽기만 해도 된다. 그 이야기의 씨앗이 머릿속,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발아를 하고 싹을 틔울 수 있으니 지금 당장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과 동화는 지금 이 시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숨가쁘게 바쁜 현대 사회에서 자칫 나를 놓치면 입시 경쟁에 휩쓸리고, 그 파도에 휩쓸려 가다 정말 하고 싶은 공부가 뭔지도 모른 채 주위의 기대와 욕망에 따라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갖게 되기 쉽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없고 누군가의 욕망에 비춰진 나만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와 같은 철학적 사고는 진정한 ‘나’를 찾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 아이들을 오래 상담해 온 선생님들답게 아이들이 생각해 보기 쉽게 명쾌한 키워드로 이야기들이 분류되어 있다. 가치판단, 차이와 차별, 공동체 속의 나, 더불어 사는 삶, 자의식, 공감 능력, 슬픔과 고통 등 십대 때 가장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기 쉬운 키워드들이 이 책 속에 대부분 다 들어 있다.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캐릭터를 ‘두루 미’라 하고 혼자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심 많은 캐릭터를 ‘올 빼미’라 하여 공동체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하는 〈두루 미와 올 빼미〉같은 동화는 작명 센스와 이야기의 깊이가 고루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장자의 〈소요유〉의 곤은 붕새가 되어 여섯 달이 넘도록 천하를 날다 지구 반대편에 가서 날개를 접고 쉰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붕새와 작은 메추라기를 비교하며 아이들에게 자기가 붕새인지, 메추라기인지 질문을 던지는 〈너희는 붕새니, 메추라기니?〉 또한 지금 아이들에게 적확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이다.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나는 친구들 사이에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추남 곱추 애태타의 비밀〉과 〈파랑새〉는 우정과 관계 그리고 더불어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플라톤의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이야기를 풀어쓴 〈그림 그리기는 왜 재미없을까?〉 같은 작품은 그림을 수단, 예술, 모방으로 보는 세 가지 시선을 아이들의 목소리에 담아냈다. 과학자와 예술가와 사업가가 모두 다른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판단을 통해 나만의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철학적 씨앗이 담긴 동화들이 총 15편이 담겨 있다. 온몸에 힘을 쫙 빼고 편안히 읽으면 된다. 철학 그거,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