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했던 이름 없는 선교사들,
그들을 만나러 블랙마운틴으로 떠나다!
1. 마지막 한국 선교사 세대를 찾아서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은퇴한 미국 선교사들의 인터뷰집인 《이름 없는 선교사들의 마을, 블랙마운틴》의 개정판이 나왔다. 이번 개정판은 영어권 독자들에게까지 다가가고자 영문 번역문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한병선의영상만들기’ 대표 한병선은 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은퇴한 미국 선교사들이 노스캐롤라이나 주 블랙마운틴에 모여 산다는 소식을 접한다. 마지막 한국 선교사 세대인 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넉 달간 자료 수집을 한 저자는 인터뷰를 검증하고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해 줄 사람으로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배덕만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전성민 교수를 끌어들여 탐방을 기획한다. 촬영 스태프 2명을 포함하여 총 여섯 사람이 2011년 1월 31일부터 2월 17일까지 5개 도시 17명의 선교사를 만났다.
2. 이름 없는 3세대 선교사들의 마을, 블랙마운틴
한국에 입국한 시기로 선교사 세대를 구분한다면, 1900년 전후 입국하신 분들은 1세대, 1920-1930년대 입국하신 분들은 2세대,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입국하신 분들은 3세대 선교사로 구분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유명한 선교사들은 거의 1세대 선교사이며, 이번 탐방에서 만난 선교사들은 1세대 선교사들의 자녀들이다. 해방 무렵 한국에 와 사역을 하다가 귀국한 이들은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 블랙마운틴이라는 애팔래치아 산맥 끝자락의 조용한 산골마을에 산다. 이곳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의 은퇴 마을이 생긴 연유는 확실치 않다. 이 지역이 남장로교 교단의 본거지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고(故) 루스 그레이엄 여사가 고향인 이곳에 은퇴한 선교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때는 40여 명이 살았던 이곳에 지금은 2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3. 5개 도시, 17명의 선교사
한병선과 5인의 탐방팀은 먼저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40년 동안 대구에서 사역하다 북장로회 은퇴 마을인 웨스트민스터가든에 살고 있는 루이즈 그러브, 한국에서 섬 선교를 하다 귀국해 지금은 아주사퍼시픽 대학 교수로 있는 젊은 선교사 대니엘 뉴먼, 언더우드의 손자인 존 언더우드의 부인으로 40여 년을 한국에서 사역한 진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난다. 텍사스에서 만난 클라크 선교사는 승동교회를 세운 곽안련 선교사의 손자이자 오산학교 교장과 평양신학교 교장을 역임한 나부열 선교사의 외손자다. 그는 한국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초기 역사적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만난 찰스 헌틀리의 부인 마르다 헌틀리 선교사는 한국 초기 선교사에 관한 책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의 저자로, 헌틀리 부부는 광주를 자신의 고향처럼 사랑하며 광주민주화항쟁을 한국인과 함께 겪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블랙마운틴에서는 9명의 선교사들을 만난다. 경주 문화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사역을 했던 부례문 선교사의 부인으로 대구와 경주를 오가며 난민과 고아들을 위해 사역한 마리엘라, 결핵 퇴치에 평생을 바쳐 ‘한국 결핵인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이스 린턴, 로이스 린턴의 며느리로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 사역에 힘을 쏟고 있는 하이디 린턴, 대구 동산병원과 연세대학병원에서 사역했던 케니스 스콧, 감리교 여자 선교사들의 은퇴촌이 있는 내슈빌에서 만난 세브란스병원 선교사 라이스, 광주 기독병원 2대 원장인 우월순 선교사의 아들로 전주 예수병원에서 사역한 윌슨, 남편은 목사로 부인은 간호사로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사역했던 보이어 부부, 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세상을 뜬 것을 계기로 한국에 와, 오랫동안 한국 역사와 언어를 공부하며 한남대에서 사역한 서머빌 선교사가 그들이다.
프린스턴에서는 평양신학교를 세운 마포삼열 선교사의 아들 찰스 모펫과 그의 부인 아일린 모펫 선교사를 만나고 뉴욕에서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모교와 파송 교회인 유니온장로교 신학교와 라파예트 애비뉴 장로교회, 미 장로교의 자료가 한데 모아 있는 장로회 기록보관소, 감리교 선교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류 대학교 기록보관소 등을 방문한 뒤 귀국한다.
4. ‘은퇴하지 않은’ 은퇴 선교사들
‘인생의 황금기를 한국에 바치고 이제 황혼에 접어든 이들은 선교 사역에서 물러난 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이 여행은 시작되었다. 탐방팀이 만난 그들은 여전히 전 세계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었다. 말라위에 보낼 이불을 만들기 위해 마리엘라 선교사는 여전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고, 린턴가의 사람들은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이라는 북한 돕기 단체를 만들어 북한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었다. 그들은 말라위나 북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전의 한국처럼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한국 기독교 역사 자료를 디지털로 보존하려 애쓰고 있었다. 아일린 모펫 선교사는 5,000여 명의 선교사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